천재 과학자들은 엡스타인의 '검은 유혹'에 어떻게 무너졌나?

[김우재의 2밀리미터 렌즈]

[핵심 요약]

지적 카르텔의 타락: 엡스타인의 자본은 존 브로크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도킨스, 핑커, 악셀 등 현대 과학의 거물들을 자신의 우생학적 망상을 정당화하는 '지적 장식품'으로 전락시켰다.

환원주의의 우생학적 변질: 철학적 성찰이 결여된 《이기적 유전자》식 과학 담론은 백인 남성 중심의 폐쇄적 권력 구조와 결합하여, 천민자본의 기괴한 번식 욕구를 세탁해 주는 도구로 쓰였다.

윤리적 분별력의 실체: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악셀의 몰락과 도킨스의 변명은 지능이 도덕적 면역력을 보장하지 않음을 증명하며, 션 캐롤의 거절만이 지식인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양심의 밀도를 보여주었다.
미성년 여성을 성매매한 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왼쪽)과 그의 옛 여자친구이자 성매매를 도운 기슬레인 맥도웰.

현대 과학은 오랫동안 객관성과 합리성의 최후 보루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19년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의 체포와 죽음, 그리고 2026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공개되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은 이 거룩한 신화가 얼마나 참혹한 기만인지를 폭로한다.(주-Connections of Jeffrey Epstein - Wikipedia, accessed March 5, 2026, https://en.wikipedia.org/wiki/Connections_of_Jeffrey_Epstein)

엡스타인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왜곡된 우생학적 욕망을 첨단 과학으로 포장하려 했던 '지적 포식자'였다.

초파리의 행동 이면에 숨겨진 단일한 유전적 기전을 추적하듯 이 거대한 스캔들을 해부해 보면, 백인 남성 중심의 엘리트 과학계가 내포한 구조적 모순과 철학적 빈곤이라는 일관된 결함을 발견할 수 있다.(주- 칼럼: 서학의 좌절, 과학기술 근대화의 '기회 상실' - 더칼럼니스트, accessed March 5, 2026, )

지적 포주와 이기적 유전자의 오독

'과학 출판계의 제왕'으로 불린 존 브로크먼은 에지(Edge) 재단을 설립해 대중 과학 저술가들을 관리하며, 이들을 엡스타인과 연결해 주는 '지적 포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주- John Brockman (literary agent) - Wikipedia, accessed March 5, 2026, https://en.wikipedia.org/wiki/John_Brockman_(literary_agent))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등 당대를 호령하는 거물급 지식인들이 이 철저한 '백인 남성 클럽'의 핵심 멤버였다.(주- What We Believe but Cannot Prove - Wikipedia, accessed March 5, 2026, https://en.wikipedia.org/wiki/What_We_Believe_but_Cannot_Prove)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

엡스타인이 유독 진화심리학자와 생물학자들에게 광적으로 집착한 이유는 그의 기괴한 사상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우월한 DNA'를 전 세계에 퍼뜨리겠다는 현대판 '아기 농장'을 꿈꿨다. 2 이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유포한 환원주의가 철학적 빈곤 속에서 천민자본가의 손에 들어갈 때, 어떻게 폭력적인 우생학의 도구로 전락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킨스는 사태 이후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했고,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대중의 정당한 비판을 "하버드 망상 증후군"이라 매도하며 자신들의 지적 카르텔을 방어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주- Steven Pinker - Wikipedia, accessed March 5, 2026, https://en.wikipedia.org/wiki/Steven_Pinker)

뇌인지과학자 스티브 핑커 교수.

냄새의 달인, 도덕적 악취를 놓치다

2026년 2월, 또 다른 충격이 미국 최고 권위의 과학계를 덮쳤다. 후각 수용체의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20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쥔 컬럼비아 대학교의 상징, 리처드 악셀 교수가 엡스타인과의 유착 사실이 폭로되자 전격 사임한 것이다.(주- Two resignations and an apology: Inside University Professor and Nobel laureate Richard Axel's decades-long relationship with Epstein - Columbia Spectator, accessed March 5, 2026, https://www.columbiaspectator.com/news/2026/03/04/two-resignations-and-an-apology-inside-university-professor-and-nobel-laureate-richard-axels-decades-long-relationship-with-epstein/)

노벨상까지 수상했던 리처드 악셀 교수(오른쪽). 엡스타인 스캔들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엡스타인이 이미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전자발찌를 찬 신분이 되었음에도 교류를 끊지 않았다. 2011년에는 아동 성착취의 본거지인 사유 섬 방문을 위해 헬기 탑승용 항공권을 수락했고, 노벨상 수상자의 권위를 남용해 엡스타인 지인들의 대학 입학을 위한 부당한 로비까지 행사했다.

분자 단위의 미세한 냄새 입자가 어떻게 뇌에서 지각되는지를 규명한 '후각의 달인'이, 정작 자신의 곁에서 진동하는 거대한 자본의 도덕적 악취는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파멸했다는 사실. 이는 현대 과학계의 맹목성과 윤리적 마비를 상징하는 촌철살인의 메타포다.

나아가 '악셀 학파'로 대변되는 견고한 엘리트 계보도 속에서, 비백인 연구자들은 늘 알 수 없는 인종차별적 징후와 배타성을 감내해야 했다. 투명해 보이는 과학적 합리성의 신화는, 실상 연구실 내부의 권력 역학과 백인 주류 사회의 구조화된 편견을 세탁하는 가장 교묘한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독사과를 거부한 과학자들

모두가 자본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있을 때, 도덕적 후각이 마비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저명한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는 지난 2019년 엡스타인의 막대한 후원금과 초대를 단호히 거절한 세 명의 과학자를 조명했다.

거대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조심스레 거리를 둔 암 연구자 데이비드 아구스(David Agus)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중의 이목을 끈 것은 이론물리학자이자 탁월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션 캐롤(Sean Carroll)의 선택이었다.

엡스타인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션 캐롤 교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물리학자 션 캐롤의 엇갈린 행보는 현대 대중 지식인의 두 가지 초상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도킨스는 자신의 '이기적 유전자' 담론이 엡스타인의 천박한 우생학적 망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방조하며 그의 전용기 '롤리타 익스프레스'에 기꺼이 몸을 실었다. 그는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번지르르한 방패 뒤에 숨어, 엘리트 권력이 제공하는 특권을 누린 맹목적인 불나방에 불과했다.

반면 션 캐롤은 달랐다. 그는 양자역학과 다원우주론을 논하며 대중과 적극적으로 호흡하면서도, 지적 허영과 더러운 자본이 결탁한 '플랫폼 감옥'에 갇히기를 철저히 거부했다. 그의 단호한 거절 사실이 알려지자 과학계 대중은 "그가 엡스타인 명단에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열광했다.

객관적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자에게 철학적 성찰과 윤리적 분별력이 얼마나 필수적인 균형추인지 캐롤은 행동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상아탑의 엘리트들이 엡스타인의 연구비 수표 앞에서 알량한 지식의 무게를 헐값에 팔아넘길 때, 캐롤은 진짜 지식인이 지녀야 할 양심의 밀도를 보여주었다.

'이기적 유전자'의 플랫폼 감옥을 부수며

리처드 악셀의 참담한 몰락과 엘리트 지식인들의 방어적 위선은 탁월한 지능과 연구 성과가 윤리적 타락의 백신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자본은 결코 순수하지 않다. 엡스타인의 피 묻은 검은돈은 마치 꿀벌이 달콤한 꿀을 찾아 꽃가루를 나르듯, 은밀하고도 치명적으로 미국 최고 과학자들의 연구실을 오염시켰다.

과학은 세상의 일에, 자본의 욕망에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주- Epstein Used Cash to Wield His Influence at Columbia and NYU - GV Wire, accessed March 5, 2026, https://gvwire.com/2026/02/10/epstein-used-cash-to-wield-his-influence-at-columbia-and-nyu/)

'이기적 유전자'라는 번지르르한 과학적 상징 뒤에 숨은 우생학적 망상을 철저히 경계하고, 백인 남성 엘리트 중심주의가 만들어낸 견고한 지적 플랫폼 감옥을 산산조각 내야 할 때다. 우리는 더 이상 알량한 지식인들의 변명에 속아 넘어갈 여유가 없다. 그것이 바로 이 참혹한 스캔들이 현대 과학계의 썩은 뿌리를 향해 내리치는 가장 짧고도 강렬한 마지막 교훈이다.


※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 하얼빈공대에서 초파리와 함께 꿀벌의 행동을 신경회로와 유전자 관점에서 연구한다. 본업인 연구에 매진하고 싶으나, 가끔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글을 쓰는 취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