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한강의 언어들, 어디서 헤엄쳐 왔나
한국문학이 단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펼쳐진다. 언젠간 걷게 되리라 다들 열망하긴 했다. ‘변방의 언어’였던 한글의 공표 기념일 이튿날인 10일 밤(한국시각) 작가 한강(54)이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려왔다. “한국 문학작품과 함께 자랐다”고 스웨덴 한림원에 공표한 한강이 막을 올린 세계는 일단 이런 것이다.
국내 최초 노벨 문학상, 아시아 최초 여성 노벨 문학상, 121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운데 다섯번째로 젊은 작가….
그건 일부의 결과일 뿐, 한강이 독보적으로 열어 보인 문학의 길은 집요한 ‘시적 언어’요, 지독한 ‘겨울의 언어’다. 한림원의 “인간 삶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란 평가와 닿아 있지만 부족하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까지 한강의 문학적 발원을 좇다 보면 마주치는 ‘시린 겨울’이 평가에선 적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의 언어
작가 한강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시와 소설로 아울러 등단(1993·1994년)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한 때가 불과 스물다섯 나이인 1995년이었다. 첫 책에 수록된 단편들 대개가 어둡다.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한 작가는 ‘젊은 작가가 왜 그리 슬픈 이야기만 쓰냐’는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슬픈 게 좋지 않아요?” 시로 등단한 지 20년 만인 2013년 내놓은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속 12편의 연작시 ‘거울 저편의 겨울’의 지배적 정서다. 인간 사회, 인류 보편의 ‘추위’에 휩싸인 곡진한 공감.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특히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어떤 소설도 아래 시들의 감성을 지울 수 없다.
“추운 곳/ 오래 추운 곳// 너무 추워/ 눈동자들은 흔들리지 못해/ 눈꺼풀들은/ (함께) 감기는 법을 모르고// 거울 속에서/ 겨울이 기다리고// 거울 속에서/ 네 눈을 나는 피하지 못하고// 너는 손을 내미는 걸 싫어하지”(‘거울 저편의 겨울’ 부분)
그로부터 20년 전인 대학 4학년(연세대 국어국문과) 때 학보에 쓴 시를 외어본다.
“그동안 아픈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편지’ 부분)
아버지와 세계의 한
천성의 시적 공감은 작가의 음악성과도 결부될 것이다. 소싯적부터 한강은 노래를 좋아했다. 부모에게 뭔가 요구해본 적 없다던 그가 단 한번 매달린 것이 피아노 교습 기회였다. 가정 형편에 학원을 보낼 수 없던 어머니가, 10원짜리 종이 건반을 사 두드리는 초등생 한강을 볼 때가 “그 시절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회고한다고 한다. 학원을 허락한 건 중3 때다. 한강이 다닌 피아노 교습소에서 강사 제안으로 문득 음표를 그려보게 됐다. 말하자면 첫 작곡인데, 강사가 감탄했다. “이런 불협화음은 무척 세련된 거야. 보통 네 나이 땐 이 느낌을 알기 어려운데.”
조금이라도 더 건반을 만지고자 늘 5분 전 학원에 도착했던 열다섯살 그 시절을 한강은 소중히 기억한다. 사실 처음에는 학원을 마다했다. 중3이 되어서야 학원을? 늦은 거 아닌가? 고교 입시도 준비해야 했다. “괜찮다”고 답한 딸을 보고 어머니는 울었고, 아버지 한승원(85)은 말했다. “네가 배우기 싫어도, 엄마 아빠를 위해서라도 1년만 다녀줘라. 안 그러면 한이 돼서.”
그 아버지 한승원을 빼고 한강을 말하긴 어렵다. 한때 낮 교사 밤 작가로,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자명종도 없이 깨어 글을 쓰던 이다. ‘늘 피곤하시다’는 인상으로 딸에게 각인될 만큼 성실했음에도, 초등생 한강은 한 반 정원 60명 중 급식비를 내지 못해 도시락을 싸간 3명 중 하나였다. 전남 장흥 출신 한승원은 동학농민전쟁을 다룬 대하소설 ‘동학제’, 비구니를 주인공 삼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구도 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으로도 알려졌지만, 다수의 작품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민초들의 한과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
그가 광주에서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한 때가 1980년이다. 5·18 군홧발은 피했으나, 1982∼83년께 교사 신분으로 광주에서 가져온 사진집과 비디오테이프가 결국 한강을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려는 “증언 문학”(노벨 문학상 심사위원회 평가)으로까지 떠밀 것을 아버지는 예상하지 못했겠다.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도록 뒤집어 꽂아둔 사진집을 13살 즈음의 한강은 밤 몰래 꺼내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에는 그 장면이 이렇게 쓰여 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소년이 온다’가 쓰이기 전인 2011년 한강은 “꼭 그 영향만은 아닐 테지만 그후 오랫동안 ―어쩌면 지금까지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지울 수 없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한강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 작품이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것이라며,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첫 소설집에서부터 보였던 회색빛의 서사 기조는,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거치며 한국 현대사를 할퀸 공동체의 상처에 적극 응답하는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나아가 폭력과 학살의 지역 역사는 보편의 주제로서 전세계 독자들과 공감하고 있다. ‘나’의 겨울로 ‘당신’의 겨울을 감각하고, 당신이 겨울이기에 나 또한 겨울인 셈이다. 제주 4·3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해 말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기자들에게 작가가 말한 대로다. “프랑스 독자들에게 제주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감각을 통해 끝끝내 작별하지 않는 마음에 닿게 하고 싶었다.”
독자와 슬럼프
제아무리 ‘한강’이라도 슬럼프가 없을 리 없다. 고백한 일화가 있다. ‘이젠 정말 글을 못 쓰려는가’ 회의하며 오래 글을 쓰지 못하던 때, 서울 광화문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수천권 소설들이 쌓아 올려진 서고를 본다. 마음속에 작은 소요가 일었던 모양이다. “집에서 유일하게 풍족했던 것은 책”이었다는 유년의 기억을 소환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핍을 채워주는 양식의 장정들.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는 말과도 상통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의 문학과 자라왔다. 노벨 문학상 쪽에서 주요하게 언급한 작품만 보더라도, ‘채식주의자’(2007)가 110만부, ‘소년이 온다’(2014)가 60만부, ‘작별하지 않는다’(2021)가 20만부 가까이 독자와 만났다. 페이스북엔 “읽은 책이 노벨상을 타다니, 보통은 노벨상 수상작이라 읽는데… 감격”과 같은 글이 적잖다. 광주 출신 30대 이승우씨는 한겨레에 “한강 작가의 수상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그의 글이 주목받는 게 고맙다. 5·18은 광주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모두의 이야기이고, 또한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전세계 모든 시민의 이야기이다. 그것이 인정받을 수 있어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한다. 5·18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그가, ‘소년이 온다’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억해주는 것, 잊지 않는 것, 몇년이 흘렀지만 같이 분노해주고 슬퍼해주는 것, 이것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저는 다른 사람인 것 같습니다”와 같은 독후감과 다를 게 없다.
정여울 문학평론가는 한겨레에 “나도 아픈 사람인데, 죽음과 삶이 그토록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것, 그런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며 “단지 국제 문학상이 쌓여 인지도가 올라갔다기보다는 작품 자체가 훌륭하다”고 한강과 독자의 접점을 설명한다.
당시 광화문 대형 서점 내 소설이 켜켜이 쌓인 벽면을 마주한 한강은 눈물을 흘렸다고 말한다. 하나같이 독자를 기다리는 책들 앞에서 말이다.
번역과 세계 독자
통상의 노벨 문학상 수상 결과가 신선할망정, 감동적이진 않았다. 대중은 작가보다 더 감격하고, 더 감동하는 모양새다. 국외에서도 그러하다. 이 과정에 번역의 내공이 작동한다. 한강은 한국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을 국외에 소개하고 있다. 한강 작가가 작품에 내재시킨 문학성, 대중성이 기본값이겠으나, 공공 영역에서의 번역 지원과 성장세가 더해지지 않았다면 노벨상은 조금 더 늦어졌을지 모른다.
한국문학번역원을 통해 국외 번역된 작품이 프랑스 번역본 ‘작별하지 않는다’(메디치상 등 수상) 등 28개 언어권 76종, 대산문화재단을 통해 소개된 작품이 영어본 ‘채식주의자’(부커상 등 수상) 등 4개 언어권, 6종이다. 한림원의 평가대로, 한강을 국제 무대에 본격 알린 ‘채식주의자’(2016)의 경우, “한강의 소설을 번역한 일은 내 인생에서 일어난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라고 말했던 영어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의 존재는 거듭 기록될 만하다. 2010년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히기 시작했고, 런던대에서 한국학 박사 과정을 전공한 재원이다. “내가 번역한 책이 영국 독자가 처음 접하는 한국 문화가 될 수 있다”는 태세로 작품을 옮겼다지만, 사후 국내에서 거칠게 일었던 번역 오류 논란을 감당해야 했다. 나라 밖은 달랐다. 원작에 대한 ‘충실성’보다 창의적인 현지화 번역을 방향 삼아 서구 독자와 감응했고,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탁월한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소년이 온다’ 등 한강의 소설을 접한 60대 미국인은 한겨레에 “우리 뉴스들도 정말 신난다는 듯이 소식을 알리고 있다. 내가 아는 작가라서 정말 흐뭇하고 반갑다”고 말했다. 독서 블로그 렉투라필라를 운영하는 스페인 독자 안토니오 가모네다는 2017년 ‘채식주의자’를 서점 매대에서 보고 꼼짝없이 붙들려 읽었다고 했다. “채식주의자는 용감한 책이다. 우리를 가두고 개인주의를 막는 자본주의 사회, 이 전체 시스템을 비판한다”고 말한다.
일본에는 한강의 거의 전 작품이 번역되어 있다. 2011년 일본에서 한국 문학을 알리는 시리즈 ‘새로운 한국 문학’의 1권이 ‘채식주의자’였다. 시리즈를 기획한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한겨레에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을 뺏길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첫 책으로 골랐다고 했다. 쿠온은 한강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등 한국에서 절판된 책들도 일본에서 부활시켰다.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이제 일본어판만 구매할 수 있다. 번역의 차이를 뛰어넘는 보편의 공감 사례가 그렇게 널려 있다.
두번째 계절의 한강
그럼에도 이번 노벨 문학상은 실상 ‘1기 한강’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한 계절의 한강이 상을 받은 것이다. 이제 작가는 겨울에서 여름, 나아가 봄으로 자신을 전개시키고자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 이후 “이젠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 역사적 소설은 그만 쓰겠다”며 “좀 더 개인적인, 생명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말한 대로다.
한강이 열어젖힌 진짜 길은 그것이리라. “나이를 먹을수록 더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른다”고 작가가 되어 말한 한강이 대학 4학년 때 학보에 발표한 시 ‘편지’의 말미는 이랬다.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이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두번째 계절의 한강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그 길에서 독자와 만날 것이다.
임인택 구둘래 기자, 최재봉 선임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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