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축하한다는 구청 직원 말에 눈물…정치인들은 ‘때가 아니라’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플랫]
결혼 2년차인 황윤하(30), 박이영글(34) 부부가 서로를 휴대전화에 저장한 별명은 ‘마실티’다. 황씨가 ‘마이 스위티’라고 부른 것을 박씨가 잘못 알아들으면서 이 장난스러운 애칭이 생겼다. 때로 언니 같기도, 동생 같기도, 또 친구 같으면서도 한없이 다정한 연인의 눈빛을 한 그들은 여느 신혼부부와 다를 바 없는 알콩달콩한 모습이다.
10일 국내 동성 부부 11쌍이 헌법상 혼인의 권리를 성소수자에게도 보장하라며 동성혼 법제화 소송에 나섰고 이들은 이 소송에 참여하는 원고 중 하나다. 동성 부부라는 이유로 혼인 신고를 수리하지 않는 행정 처분에 대해 이렇게 대규모 인원이 한꺼번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3일 황윤하·박이영글 부부와 정규환(34)·김찬영(38) 부부를 각각 만나 소송에 참여하는 소감과 다짐을 물었다. 동성 부부 권리 보장을 위해 관련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할 입법 기관이나 정치인들은 여전히 “때가 아니”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들은 “제도만 없을 뿐, 이미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연인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는 동성 부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씨는 “원래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하를 만난 뒤 ‘내가 가족을 꾸리고 싶고 결혼하고 싶었구나, 동성이라 지레 포기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황씨는 박씨를 만나면서 어머니에게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파트너를 소개했다. ‘진지한 관계’라고 말했더니, 어머니가 “그럼 결혼은 언제, 어떻게 할 거냐”며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박씨는 “당연히 결혼식을 준비할 때는 두려웠는데, ‘신부가 2명이라 오히려 좋다’는 웨딩 업체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는 걸 보면서 안전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웃의 축하 역시 결혼식을 빛냈다. 반려견을 산책시킬 때 종종 만나는 한 모녀가 우연히 이들 부부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됐고 당연하다는 듯 ‘초대해달라’고 했다. 황씨는 “어쩌면 생판 모르는 남인데, 식에 와서 축하한다면서 우리를 꼭 안아줄 때 너무 감사해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정규환, 김찬영 부부 역시 둘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과거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들은 지난 8월 연애 10주년을 기념하며 처음으로 커플링을 맞추고, 자주 가던 동네 카페에서 프러포즈도 하고,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했다. 남편의 이름을 먼저 쓰고, 그 옆에 아내의 이름을 적는 혼인신고서 양식 때문에 각자 한 장씩 써서 따로 제출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애써 접수한 혼인신고는 10분 만에 ‘불수리 통지서’로 되돌아왔다. ‘동성 간 혼인신고로 불수리 처리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예상한 좌절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이어졌다. 통지서를 건네주던 담당 직원이 “결혼 축하드립니다”라고 인사한 것이었다. 구청 1층에 마련된 ‘혼인신고 포토존’에선 “남들 다 하는 것 우리도 하고 싶어” 대놓고 뽀뽀까지 했는데도, 지나가던 직원이 예삿일처럼 사진을 찍어주더니 “구청을 태그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정씨는 “혼인신고는 불수리 처리됐으니 결과적으로 바뀐 건 없지만, 타인의 축복 한마디에 눈물이 찔끔 났다”라며 “예의상이었대도 혐오가 아닌 축하로 답해준 게 감동적이었고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바뀌고 있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변화하고 있지만 이들의 관계는 법과 제도 안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둘의 관계도, 반반 부담한 전세금도, 자잘한 살림살이와 집안 대소사도, 심지어 함께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도 오로지 서로의 ‘신뢰’로만 유지된다. 김씨는 “좋을 땐 흰밥에 간장만 있어도 좋지만, 어려운 순간이 찾아올 때가 문제”라며 “내가 상대방의 보호자,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상만 해도 힘들다”고 말했다.
황씨는 “동성혼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니 단순히 부부 관계를 넘어 이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서 인정받는다는 감각이 들지 않는 게 아쉽다”며 “소송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겠지만 목소리가 하나둘 더해지다 보면 더 많은 힘과 용기를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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