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스틱이지” 이게 아직 통하는 유럽

여름 휴가철 유럽에서 직접 차를 몰고 자유여행을 하다보면 렌탈 차량을 알아보다가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제 찾아보기도 힘든 수동변속 자동차가 유럽에선 자동변속과 별도 선택지로 구분되어 있는데다가, 같은 차종인데도 수동이냐 자동이냐에 따라 렌트비가 1.5배 넘게 차이가 난다. 요즘 한국에선 버스나 트럭을 몰아봤거나 군대에서 운전병을 하지 않는 이상 수동변속기 차량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은데 유튜브 댓글로 “유럽에서는 왜 스틱 차량을 더 많이 타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유럽 사람들이 수동변속 차량을 많이 타는 건 사실이다. 자동차전문매체 기어스 매거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유럽에서 주행 중인 차량의 약 56%가 수동변속 차량이다. 영국의 경우 더 심한데, 지난해 기준 주행 중인 3170만대 차량 중 약 70%가 수동변속 차량이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이에 맞춰 차량을 수출한다.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수동변속 승용차 대부분을 유럽으로 보낸다고 했다.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 관계자
“(수출 차량) 전체의 한 20% 정도가 수동 모델로 나가고 있고요. (수동변속 차량은) 콜롬비아 페루 쪽, 칠레 쪽에 이제 중남미 쪽에 (그나마) 좀 나가고 있고, 가장 많은 데가 유럽이고요.”

현재 국내 판매하는 수동변속 승용차는 거의 멸종된 상태다. 수요 자체가 드물어서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인데 주요 자동차 판매시장인 북미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 관계자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금 국내에서 저희가 현대·기아차 포함해서 승용차 기준으로 수동 변속기가 있는 모델은 아반떼 N 하나밖에 없어요.”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 관계자
“간간히 한두 명씩 이렇게 신청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들한테 바로 생산해서 드리지 못하고, 좀 길게 좀 모아 모아서 생산을 해야 되니까 한 번에 한 대씩 생산하면 되게 손실이나 여러가지로 운영 자체가 안 되잖아요.”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유럽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다. 첫번째는 시장 특성이다. 유럽 자동차 소비자들 자체가 편의성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

김철호 서울과학기술대 기계자동차공학과 교수
“그 나라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그 지역에서 요구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자동차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유럽 쪽 소비자들에게) 차는 그냥 굴러가면 되는 거고, 거기에 제일 중요시하는 게 안전입니다.”

자동차 회사에서도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KG모빌리티(구 쌍용자동차) 관계자
“우리나라 (소비자)는 자동차 옵션도 경차에도 많은 옵션을 원하는데 유럽은 자동차 문화가 좀 다르긴 하지만 거기 있는 고객들은, 소비자들은 그런 조그마한 차에까지 그런 걸 넣어서 과다 스펙으로 넣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유럽에서는 소형차가 대다수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경우 차량을 단순하게 이동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특히나 강하다고 한다. 수동이 더 싼데 굳이 편리하다는 점 하나 때문에 자동으로 바꾸려 하진 않는다는 것.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과거엔 자동변속 차량을 몰면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1997년 기사에 따르면, 당시 제너럴모터스 프랑스 지사 관계자는 “이곳 사람들은 자동변속 차량을 운전능력을 향한 모독으로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째 원인으로 꼽힌 건 주행환경이다. 유럽 도로 자체가 효율을 따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

전보다 기술이 발전해 격차가 좁혀지긴 했지만, 자동변속 차량은 근본적으로 수동보다 연비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을 갈 때 어떻게 변속할지 결정하는 건 시각적으로 먼저 환경을 보고 판단하는 인간이 더 빠르기 때문.

김철호 서울과학기술대 기계자동차공학과 교수
“차가 지금 부하가 많이 걸리고 있다, 그럼 부하가 걸린다 해서 정속으로 갈 건지 고속으로 갈 건지 판단하는 건 아무래도 인간이 판단하는 게 빠르죠”

달리는 길의 변화가 심할수록 효율 격차는 벌어진다. 김 교수는 유럽에선 특히 갑작스럽게 변속을 해야 하는 환경이 많기 때문에 수동을 더 선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철호 서울과학기술대 기계자동차공학과 교수
“지형도 영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겠죠. 왜냐하면 아시는 것처럼 특히 스위스나 이런 데 가면 산지들이 많잖아요. 산지도 많고 기울기가 심하다보니까 그런 데서는 당연히 연비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죠.”

자동차를 고를 때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은 유럽 시민들이 가난했던 2차 세계대전 직후 승용차가 보급된 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히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선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고 하는데 영국에서는 2020~2021년 면허시험 응시자 중 42%가 자동 면허 시험을 봤다. 어린 연령대일수록 이 비중은 더 높다. 또 2021년 영국에서 팔린 새 차량 중 54%가 자동변속 차량이었다. 약 10년 전만 해도 20% 수준이었던 데 비하면 두 배 넘게 올랐다. 향후 10년 이내 유럽도 오토매틱이 대세가 된다는 전망이 현지에서도 나오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바뀌고, 자율주행의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는 시대에 스틱이 주는 낭만은 여전히 아련한 추억처럼 남아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손으로 조작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시대적 변화를 거스르기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