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어 깨달은 인간 관계에 필요한 '거리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누군가에게는 열 보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반보가 필요하다. 그보다 더하거나 덜하면 둘 사이를 잇고 있는 다리가 붕괴된다. 인간관계란 그 거리감을 셈하는 일이다. 이 거리감에 대해 생각하면 나는 늘 전자기력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인력과 강력, 약력 그리고 전자기력 이렇게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내 손이 키보드를 그냥 통과하지 않고 누를 수 있는 건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은‘나’를 ‘나’라는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이를테면 고슴도치의 가시 길이나 〈 에반게리온 〉의 ‘AT 필드’처럼 내가나라는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인 것이다. 너무 외롭다고 해서 아예 걷어버리면 나라는 형태가 허물어진다. 반대로 타인이 너무 두려워 보호막으로 두텁게 에워싸면 속절없이 너무 멀어져버린다. 요컨대 타인과의 거리라는 것은 바로 나의 보호막과 너의 보호막의 두께를 어림잡아 더하는 일이다.

삶에 있어 큰 사고라고 할 만한 최근의 일을 통과하면서, 나는 나의 가시와 보호막이 터무니없이 길고 두터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길이와 두께는 혼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오랫동안 비대해져왔다. 그래서는 애초 타인과의 정확한 거리를 셈하는 게 무의미하다.어떻게 해도 서로의 말이 닿기에는 너무 멀기 때문이다. 나의 셈은 틀렸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은 나와 너의 거리감이라는 게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 친구들은 단지 ‘때가 되어서’ 결혼을 한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유와 확신을 가지고 결혼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 완벽해 보였던 셈이 이제 와서는 틀어져버린 것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매번셈하는 건 고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익숙하고 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면, 고된 셈 따위에는 흥미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혼자서 살아남기 위한 몸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의 내 상황에선 맞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버틴다는 것이 혼자서 영영 해낼 수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은 조금도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동지가 필요하다.

허지웅 책 <살고 싶다는 농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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