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따라하게 될까? 진짜 ‘나’를 찾는 열쇠였다

"왜 나도 모르게 저런 행동을 따라했지?"

회의 중 누군가가 머리를 넘기면 자신도 같은 동작을 하고 있고, 친구가 웃으며 고개를 갸웃하면 따라 고개를 기울이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쯤 그런 경험, 있으시죠?

어쩌면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자주, 훨씬 더 깊게 타인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모방 행동이, 사실은 ‘진짜 나’를 알아가기 위한 뇌의 전략일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모방은 ‘나’를 잃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읽는 방법

최근 3월 21일 메디칼프레스가 소개한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짐 코언(Jim Coan) 심리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게 되는 현상은 뇌에서 발생하는 ‘미러링 활동(mirroring activity)’ 때문입니다.

이는 1992년 원숭이 실험에서 발견된 ‘거울 뉴런(mirror neuron)’ 개념에서 유래합니다. 인간에게서도 비슷한 활동이 뇌의 운동 피질에서 일어나며, 이 활동은 사회적 유대 형성과 생존을 위한 핵심 기능으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1977년, 워싱턴대학교의 앤드루 멜초프 교수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생후 42분밖에 안 된 신생아조차도 어른의 표정을 흉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타인을 따라 하는 행동은 후천적인 학습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장착한 일종의 생존 프로그램인 셈입니다.

영국 억양 따라 한 적 있나요? 뇌는 '소속감'을 위해 움직입니다

짐 코언 교수는 여행 중 겪었던 흥미로운 경험을 공유합니다. 영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영국식 억양을 따라 하게 되었던 일. 처음엔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이는 결코 ‘흉내’가 아니었습니다.

코언 교수는 “뇌가 그 사회에 적응하고, 이해하고, 또 이해받기 위해 환경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타인을 따라 하는 행동은 뇌가 관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내는 일종의 ‘언어 없는 소통’입니다.

우리가 어릴 적 친구가 웃을 때 같이 웃고, 친구가 흥분할 때 덩달아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타인을 따라 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공감하고, 연결되고, 협력하는 능력을 키워온 존재입니다.

진심 없는 모방은 관계의 ‘적신호’가 될 수도

하지만 모든 모방이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진정성’입니다.

코언 교수는 “타인의 행동을 일부러 흉내 내는 사람에 대해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경고합니다. 억지스럽고 계산된 모방은 오히려 반감을 사고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한국 사회에서도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예의를 중요시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는 데 민감한 문화를 갖고 있죠. 그래서 억지스러운 따라 하기나 과도한 모방은 '진심 없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인, 공감에 기반한 모방입니다. 나도 모르게 닮아가는 그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연결의 순간입니다.

자아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타인을 따라 하다 보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내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짐 코언 교수는 이에 대해 “뇌에는 ‘자아’를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자아란 단일한 개체가 아니라, 경험과 관계 속에서 계속 만들어지고 조정되는 유동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모, 연인, 친구와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말투나 습관을 어느 정도 닮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을 따라 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고유한 능력과 성격을 유지하면서, 서로 다름 속에서 협력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이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진화적으로 특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벌이나 개미처럼 유전적으로 동일한 존재들이 협업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인간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고도의 협업이 가능한 생명체는 거의 없습니다.

결국, 모방은 나를 잃는 행위가 아니라, 더 넓은 나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따라 하기’는 나를 위한 또 하나의 언어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누군가의 말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친구의 표정을 흉내 내거나, 가족의 몸짓을 닮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남을 흉내 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증거입니다.

자연스럽게, 진심으로 따라 한 행동 속에 당신만의 감정과 해석이 더해지면서 ‘진짜 나’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진짜 ‘나’를 위한 모방 활용 팁

✅ 따라 하고 싶은 행동을 인식하고, 그 이유를 되짚어보세요.

✅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공감 속 모방을 지향하세요.

✅ 모방을 통해 생긴 행동의 변화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재발견해보세요.

무의식적 모방, 그것은 단순한 흉내가 아니라, ‘나’를 사회와 연결하는 뇌의 가장 정교한 언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누구를 따라 하며, 어떤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나요?


밤마다 큰 소리로 코 고는 것이 조용한 살인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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