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Inside The Park] 라젤 작가

그녀가 전하는 야구의 맛

TV를 켠 순간 혹은 야구장에 들어간 순간 우리는 굳게 다짐한다. 오늘 경기도 단지 144경기 중 하나일 뿐이니 그저 즐기자고. 하지만 어느샌가 사소한 플레이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온 감정을 쏟아 내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이런 야구팬의 마음을 누구보다 글로 잘 풀어낸 작가가 있으니. ‘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의 작가 라젤이 그 주인공이다. 아무도 봐 주지 않던 시절에도 묵묵히 자신의 기록을 남겨 온 그. 끝내기 홈런의 짜릿한 열기와 패배의 씁쓸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따듯한 일상을 하나하나 모아 써 내려간 문장들은 결국 한 권의 책이 됐다. 야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이 한 명의 작가를 탄생시킨 순간이다. 오늘도 그렇게, 라젤은 자신만의 경기와 글을 이어 가고 있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Ilwoo Kim Location Dugout Magazine Studio

#나의 첫사랑

만나서 반가워요. 독자들에게 자기소개하고 인터뷰를 시작할게요. (10월 13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라젤’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유튜버이자 이번에 ‘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이라는 도서를 집필한 남아라입니다.

‘라젤’이라는 닉네임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한때 젤리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먹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 이름 ‘아라’와 ‘젤리’를 합쳐 ‘라젤’이라고 지었어요.

평소 <더그아웃 매거진>을 접해 본 적이 있었나요?
친구들이 응원하는 선수가 표지 모델로 나오면 꼭 사더라고요. 김도영, 조병현 선수처럼 인기 있는 선수가 등장하면 아예 잡지를 모으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옆에서 본 적이 있었어요. 평소에도 가끔 찾아보는데, 얼마 전에는 송승기 선수 인터뷰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이라는 제목을 처음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출판사에서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정해 주신 거예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 문구가 예전에 블로그를 하던 시절과도 맞닿아 있더라고요. 대학생 때는 야구 직관을 다녀오면, 아무도 안 봐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곤 했어요. 좋아하는 게 생기면 꼭 글로 남기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때 운영하던 블로그의 폴더 이름이 ‘공놀이의 일희일비’였어요. 예전부터 야구 속 일희일비의 감정을 글로 담아 왔던 거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제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LG 트윈스 팬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얼마 전 SSG 랜더스 이율예 선수가 9회 말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LG가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이 있었잖아요. 그때 “야구는 정말 9회 말까지 모르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제목은 저와 찰떡이라고 느껴요.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마음에 들거나 신경 썼던 문구가 있다면요?
책을 쓰면서 제가 왜 야구를 사랑하게 됐을까, 어떻게 이렇게 깊이 빠져들게 됐을까를 계속 곱씹어 봤어요.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엔 그 출발점은 엄마더라고요. 책 속에서 독자분들이 특히 자주 인용해 주신 문장이 하나 있어요. “엄마가 사랑했던 것들이 나의 첫사랑 되는 일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라는 문구인데 돌이켜 보면 정말 그렇더라고요. 야구도,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만들어 준 음식의 맛이 평생 남듯이, 제가 야구를 사랑하게 된 마음에도 엄마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어요.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는데, 독자 후기 중 인상 깊은 게 있었나요?
작품을 만들 때는 LG 팬의 시선으로 썼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트윈스 팬분들이 많이 읽어 주시겠구나 했죠. 근데 막상 독자분들이 남겨 주신 후기를 보니 타팀 팬들도 정말 많이 읽어 주셨더라고요. 예를 들어 “저는 두산 베어스 팬인데, 고우석 선수의 이야기를 읽으며 김택연 선수가 떠올랐다”라거나 “신고 선수 얘기를 보며 우리 팀의 선수가 떠올렸다”라는 식의 반응이 있었어요. 각자 자기 팀의 선수를 바라볼 때와 같은 마음으로 책을 봐 주셨다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LG뿐만이 아니라 10개 구단 모든 팬이 비슷한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걸 느꼈죠. 어느 팀이든 응원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선수가 있고, 모두가 잘되길 바란다는 사실이 재밌고 신기했어요.

야구라는 소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단순해요. 야구는 최고로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제 삶에서 제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분야라 자연스럽게 글의 소재로 이어졌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취향인 것이 생기면 꼭 글로 남기는 습관이 있어요. 감정이 벅차오를 때마다 글로 풀어내는 편이거든요. 조회 수가 20 정도밖에 안 될 때도 꼭 글을 올렸죠. 시간과 돈을 쓰는 게 결국 가장 사랑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야구는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에요. 그래서 ‘언젠가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소재는 야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늘 해 왔었고 이렇게 첫 책으로 쓰게 됐어요.

‘일희일비’라는 단어가 작품의 정서를 정확히 표현하고 있는 듯해요. 본인은 평소에 감정의 기복이나 순간의 희로애락을 어떻게 바라보는 편인가요?
야구를 제외하고는 감정 기복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친구들이 저를 ‘글쿤충’이라고 부를 정도로 뭘 해도 차분하고 큰 리액션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대부분의 일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야구를 볼 때만은 완전히 달라져요. 경기 중엔 화도 쉽게 나고, 흥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마음도 훨씬 커져요. 그래서 야구가 제 삶에서 감정에 제일 큰 기복을 주는 존재인 듯해요. 만약 야구가 없었다면 비교적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요. 원래 안정 추구형이라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야구를 볼 때만큼은 그런 성향이 사라져요. 그래서 야구를 통해 ‘조금 다른 나’를 마주하는 느낌이에요.

#야구 한 스푼

작품을 구상하고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출판사에서 제안을 주신 건 작년 5~6월쯤이었어요. 유튜브에서 보여 주는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훨씬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작업이라 처음엔 부끄럽고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긴 설득 끝에 6월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죠. 출판사에서 여러 기획안을 제시해 주셨고, ‘야구와 요리를 엮은 이야기’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본격적인 집필은 작년 11월부터였어요. 예전에 출판사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잘 아는데, 마감이 다가와야 글이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천천히 쓰다가, 올해 4~5월쯤부터는 거의 매일 두 편씩 썼어요. 그렇게 진짜 집중해서 쓴 기간은 두세 달 정도였어요.

쓰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이나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요리와 야구를 엮는 게 예상보다 쉽지 않았어요. 두 가지 다 좋아하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레 연결하는 게 고민이었어요. 쓰다 보니 흐름이 생겨서 수월하게 이어 갈 수 있었지만요. 특히 즐거웠던 순간은 지난 경기들을 복기하면서 글을 쓸 때였어요. 예를 들어 오지환 선수가 202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홈런을 쳤던 장면을 쓰기 위해 그 경기를 다시 봤거든요. 처음엔 9회 말만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경기 전체를 다 보고 있더라고요. 그때 ‘아, 나는 정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요. 글을 쓰기 위해 영상을 틀었는데, 어느새 팬의 마음으로 빠져든 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거죠.

평소 글을 쓸 때 루틴이나 습관 같은 게 있나요?
딱히 없지만, 이를테면 마감 직전에 닥쳐서 쓰는 거요? (웃음) 이런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창작자로서 작품을 통해 자신이 변화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과거에 등단을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출판사에 입사했어요. 에디터로 근무하면서 보도자료나 저자 소개 글, 인터뷰 원고 등을 주로 썼어요. 회사 이름으로 글이 나가니까, 실수해도 덜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물론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까지나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쓰는 일이었죠. 근데 제 작품을 만들면서 ‘남아라’라는 이름 석 자가 찍히고 이 글이 온전히 제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되는 거니까 더 조심스러워지고, 책임감도 커졌어요.

본인에게 글쓰기는 ‘해소’에 가까운 행위인가요, 아니면 ‘기록’인가요?
기록에 가깝긴 해요. 본래 이 세상에 남기려는 목적으로 쓰기 시작했지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소의 과정이 따라오더라고요. ‘글을 잘 쓴다’라는 게 아니라 글을 시작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 마음을 글로 남기려 했고, 그게 저한테는 적합한 수단이라고 느꼈어요.

작가로서 정의하는 ‘좋은 문장’이란 어떤 문장인가요?
인상 깊었던 후기가 하나 있었어요. 어떤 분이 LG와 야구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이 책을 보고 난 후 ‘뭔가를 좋아하는 방법을 눈에 보이게끔 만들어 줬다’라고 남겨 주셨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을 포함해서 희로애락이라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고, 우리 삶과 아주 가까이 있죠. 특히 야구를 즐겨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더 밀접하게 스며 있잖아요.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을 문장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인 형태로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썼는데, 독자분이 그걸 느끼셨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고, 제 마음이 잘 전해졌구나 싶더라고요.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나 철학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윌리엄) 서머셋 모옴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소설은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말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실제로 이 작가의 작품은 다 재밌거든요. 웃겨서 깔깔 웃는 재미가 아니라더라도 글을 봤을 때 흥미롭게 잘 읽힌다는 느낌으로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글쓰기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궁금해요.
초등학생 때부터 글짓기 대회에 나가면 늘 상을 받을 정도로 글쓰기를 즐겼어요. 잘 쓴다기보다는 쓰는 데 주저하지 않았죠.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신 엄마를 따라 미대를 꿈꿨는데, 하루는 엄마가 제 그림을 보시고 “이건 아닌 것 같다” 하시면서 바로 학원에서 끌고 나오셨죠. (웃음) 그리고 예고에 진학한 이유도 야간자율학습을 피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러다 예고에 문예창작과가 있다는 걸 알고, 엄마의 권유로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기 시작했죠. 이전엔 단순히 일기나 학교 글짓기 대회 정도였다면, 그때부터는 ‘창작’이라는 걸 처음 접하게 됐어요. 그렇게 예고와 대학에서 문예창작과를 전공하면서 글쓰기가 제 삶의 한 부분이 됐고,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요.

작가라는 직업의 만족도는 어떤가요?
좋았던 점은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거예요. 사실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하거나 함께 일하는 걸 조금 어려워하는 편이거든요. 국문과와 문예창작과를 나왔는데, 그 두 학과 모두 팀플이 거의 없어요. 각자 글을 쓰고 결과로 이야기하는 곳이죠. 그래서 누군가와 억지로 친해지거나 협업해야 하는 상황이 늘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점에서 이 일은 저랑 잘 맞았죠. 혼자 고민하고, 써 내려가며 완성해 가는 과정이 온전히 나만의 싸움 같아서 만족감이 컸어요.

독자들에게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책을 추천해 주자면요?
서머셋 모옴의 ‘달과 6펜스’와 한국 작가 양귀자의 ‘모순’이요. ‘모순’이 현실의 삶과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그린 작품이라면, ‘달과 6펜스’는 이상을 좇는 인물의 이야기거든요. 안정적인 삶을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모든 걸 내려놓고 미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마치 달을 좇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두 작품이 지향하는 세계는 다르지만, 현실과 이상이라는 양극의 삶을 동시에 보여 준다는 점에서 둘 다 제게 깊은 울림을 준 책이에요.

#새벽에 완성된 자막 한 줄

쉬는 날은 주로 어떻게 보내요?
자는 걸 정말 좋아해서 잠만 자요. 유튜브 채널이 커지면서 어느 순간 일의 연장선이 되기도 했거든요. 야구라는 종목 특성상 시의성이 중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특정 선수가 큰 활약을 펼쳤는데 해당 영상을 며칠 뒤에 올리면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경기를 보고 오면 다음 날 아침에 올릴 수 있게 밤새 편집해요. 업로드하고 댓글을 확인한 후에 다시 자는 게 쉬는 날 루틴입니다.

평소 여행을 즐기는 듯한데 추천해 줄 만한 여행지가 있을까요?
야구만큼이나 여행을 좋아해서 매년 꼭 장거리 여행을 가요. 이번엔 마드리드에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왔어요. 흔히 마드리드는 ‘노잼 도시’라고 하지만, 저는 정말 반했어요. 사람들도 따뜻하고, 도시 분위기도 여유롭고요. 무엇보다 스페인은 축구의 나라잖아요. 도착하자마자 편하게 입고 다닐 겸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하나 샀는데, 그걸 입고 다니면 사람들이 계속 말을 걸어요. “레알 팬이냐”, “오늘 경기 봤냐” 이런 식으로요. 그게 참 즐거웠어요. 언어는 달라도, 스포츠가 사람을 연결해 준다는 걸 그때 다시 느꼈어요.

해외여행 중에도 LG 컬래버 의류를 입는 모습이 보이는데 본인의 최애 굿즈가 있다면요?
항상 입고 다니는 ‘1993 스튜디오’ 검은색 티셔츠가 있는데 건조기를 돌려도 안 줄어들어요. 가볍고 통기성이 괜찮아서 많이 입고, 투수들이 입는 아이싱 티도 편해서 자주 입는 편이에요.

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는데 편집, 기획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요?
야구장 브이로그를 찍을 때는 그 순간마다 느껴지는 감정들을 메모장에 바로 적어 둬요. 그리고 집에 와서 바로 편집을 시작해요. 그날 느낀 일희일비의 감정이 아직 생생할 때 편집을 해야 그 분위기가 그대로 영상에 담기거든요. 제 영상이 화려한 편은 아니에요. 컷 편집하고 자막 정도만 넣는 단순한 구성인데, 그걸 좋아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게 늘 신기해요. 특별한 기획보다는, 그냥 ‘그날의 진짜 감정’을 담는 게 제 영상의 전부예요.

‘만루는 칠 사람들이 다 출루해 있어서 만루다’라는 짤 등 커뮤니티에서 본인이 쓴 자막이 유명해져서 돌아다닐 때 기분이 어때요?
정말 신기했어요. 야구를 안 보던 친구들까지도 “야, 이거 너 영상 아니야?” 하면서 그 짤을 캡처해 보내 주더라고요. 자기 타임라인에도 계속 떠서 놀랐다고 하기도 하고요. 트위터에서도 그 영상이 돌아다녔는데, 재밌게도 LG 팬뿐 아니라 타 팀 팬도 자기 팀 이야기처럼 공감해 주셨어요. 어떤 분은 “이 자막 쓴 사람 100% 롯데 팬일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런 반응을 보면서, ‘모두가 자기 팀의 감정으로 받아들였구나’ 싶어 인상 깊었어요. 자막도 하나의 글이라고 보거든요. ‘보관하고 싶을 정도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그런 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어요.

그렇다면 자막을 쓸 때 특히 시간을 들인다거나, 오래 고민하는 편인가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바로 써요. 야구장 다녀와서 편집을 시작하면 보통 새벽 3~4시쯤 되거든요. 그때쯤이면 거의 뇌를 비운 상태라서 오히려 잡념 없이 감정이 이끄는 대로 쓰게 돼요.

글을 쓸 때와 자막을 쓸 때 차이가 있다면요?
문예창작과, 국문과를 전공하면서 늘 정제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잖아요.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다듬어야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자막은 그런 필터링을 전혀 거치지 않아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바로 적는 거라, 오히려 저한테는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이기도 하고요.

다른 야구 직관 유튜버와 달리 어떤 차별성을 두고 싶나요?
바로바로 올린다는 점이 좀 특별하고, 엘튜브 덕아웃 직캠처럼 업로드 시간이 빨라요. LG가 지면 엘튜브 덕직은 안 올라오잖아요. 전 이기든 지든 올려서 팬들이 ‘진 날의 덕직’이라고 댓글을 달아 주면서 좋아하더라고요. 그리고 야구는 시의성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날의 분위기와 감정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게 제 콘텐츠의 가장 큰 차별점이에요.

앞으로 해 보고 싶거나 구상 중인 콘텐츠가 있을까요?
변화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 아직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건 없어요. 그래서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는 지금 하는 걸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앞으로 더 사랑하기

이번 작품이 커리어에서 어떤 전환점이 됐다고 느끼나요?
제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온 이야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에서 오는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이제는 어떤 글을 쓸 때도 ‘이건 내 이름으로 나가는 거다’라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쓰게 되더라고요. 다행히 독자분들이 정말 좋아해 주시고, 스스로도 이번 책은 잘 썼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상에서 공감해 주셨던 부분들을 글로도 느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사실 ‘내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그걸 이루게 돼서 정말 뿌듯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 작품을 쓰며 스스로 던졌던 질문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나 왜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돌이켜 보면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야구에 쏟았더라고요. 좋아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지가 진짜 애정도를 나타내는 기준이잖아요. 그래서 ‘아, 나는 정말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앞으로 새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소재가 있다면요?
야구만큼이나 좋아하는 게 여행이라 여행 에세이를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야구가 인생이라면, 지금 라젤 작가의 인생은 몇 회이고, 어떤 상황인가요?
6회에 3점을 이미 준 상태인 것 같아요. 여기서 잘 막으면 퀄리티 스타트가 되는 거고, 무너지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느껴요. 제가 100점짜리, 무실점의 인생을 살아온 건 아니라서 3점은 이미 줬다고 표현할래요. 하지만 여기서 잘 막으면 퀄리티 스타트예요. 승리 투수가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는 상황이죠. 지금 제 인생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본인에게 LG 트윈스란 어떤 존재인가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존재예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도전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도전하지 않으니까 실패할 일도 거의 없었고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어도 먼저 고백을 잘 안 하고, 학교를 선택할 때도 내가 원했던 것보다 조금 낮은 곳을 택하는 편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항상 실패를 피하려고 했죠. 도전을 안 하면 삶이 평탄해질 수 있잖아요. 그런 도전을 피하다 보니 인생이 조금은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근데 LG 트윈스는 제게 그런 의미에서 ‘용기’가 돼 줬어요. 그 팀을 응원하면서 실패도, 기대도, 희망도 함께 겪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면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이 책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을 더 사랑하기 위해 쓴 책이에요. 야구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만나게 된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야구를 사랑하고, 저와 함께 이 사랑의 감정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5년 175호 (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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