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끝나고 반짝 흥행하더니… 이젠 흉물되어버렸죠”
지역 드라마세트장 근황
간절곶·무의도·섭지코지
부실 행정 예산 낭비 정석
지난 9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미 현지 매체 블룸버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의 할리우드와 같은 영화·콘텐츠 제작 지원 공간을 새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4일 블룸버그는 방탄소년단(BTS)과 ‘오징어 게임’, 블랙핑크의 세계적인 인기에도 한국에 할리우드 같은 엔터테인먼트 메카가 없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나서 관련 인프라를 조성하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이에 한국 정부가 오는 2035년까지 영화와 TV 프로그램, 음악, 기타 예술 제작을 지원하는 새로운 공간 개발을 추진하며 전체 3.3㎢(99만 8,000평) 규모 공간에 엔터테인먼트 전문학교와 콘텐츠 제작 시설을 조성하고, 조선시대 궁궐을 그대로 재현해 영화·드라마 제작을 지원하는 한편 관광객들에게도 개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런 정부의 행보를 두고 ‘전시행정으로 전락할 드라마세트장을 또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냐’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 조성한 일부 세트장이 막대한 혈세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흉물로 전락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 반짝 인기를 끌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인기가 식어 흉물로 전락한 드라마 세트장은 어디가 있을까?
당초 지자체들은 드라마 세트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지역 경제 활성화 견인 방안을 모색했다. 다만, 지속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관광객 감소로 인해 지자체의 ‘골칫거리’로 전락하는 경우도 꽤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에 있는 드라마세트장의 경우 지난 2010년 방영된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 촬영을 앞두고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원자력발전 지원금 30억 원이 투입된 간절곶 드라마세트장은 이후 드라마 ‘메이퀸’과 영화 ‘한반도’ 등의 촬영지로 명성을 누리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간절곶 세트장을 두고 건물 내구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자 울주군은 지난 2011년 10억 원을 골조와 외벽을 보완하는 공사를 진행하고 수익사업시설로 전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결혼사진 스튜디오와 갤러리, 프랜차이즈 카페 등이 들어섰지만 모두 경영 악화로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떠나며 폐허로 전락했다.
실제로 지난해 간절곶 세트장을 방문한 이들의 후기에는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고, 건물 앞에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건물이 노후화된 탓에 곳곳에 녹이 슨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일부 외벽이 뜯겨 나가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간절곶 세트장이 2012~2019년 사이 세금으로 치른 유지보수 비용만 8억 7,600만 원이 들은 것으로 확인됐다.
여기에 사용수익금 6억 2,000여만 원을 제외해도 약 2억 5,000만 원의 손해가 발생한 것이다. 또한, 노후화된 시설에 대한 전진단 비용도 2016년과 2019년 2차례 총 1,700여만 원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울주군은 지난 2021년 해당 시설의 철거를 결정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철거 기간 폐기물 처리비, 감리비 등으로 나간 돈만 4억 원이 조금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간절곶 세트장이 운영된 15년간 들어간 혈세만 약 43억 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이어 제주 서귀포시 섭지코지에 설치된 ‘올인하우스’라고 불리는 드라마 올인 세트장 역시 흉물로 전락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올인은 지난 2003년 방영된 최고 시청률 49.1%를 기록한 드라마로, 이 세트장을 찾는 관광객은 한때 연간 100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다만,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어 지난 2015년 운영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주시는 경매를 통해 올인하우스 건물을 다른 사업자에게 넘기고, 부지는 성산읍 신양리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로운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면서 철거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건물을 철거하려는 주민과 철거하지 않으려는 사업자 사이의 갈등을 겪으면서 난항을 겪었다.
제주시는 설립 당시 올인하우스 운영을 위해 5억 원을 출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해당 시설의 철거 비용에만 약 2억 원 수준의 자금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천국의 계단’과 지난 2007년 ‘칼잡이 오수정’을 촬영했던 인천 중구 무의도의 드라마 세트장 역시 흉물로 전락했다. 해당 세트장은 지난 2017년 정밀안전진단에서는 건물 2개 동이 각각 B등급(건물 보수 필요), E등급(건물 사용 금지)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지난해 인천시는 무의도 세트장 해체 공사에 돌입했다. 해당 세트장에 세금 9억 원 정도가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러한 지자체의 상황을 두고 일각에서는 전형적인 부실 행정이 낳은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우후죽순 세트장을 짓는 관행을 두고 향후 운영 상황까지 고려한 뒤 신중하게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평가했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여러 지자체가 국민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향후 조성되는 ‘엔터 도시’가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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