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이어 그룹 경영까지 ‘휘청’…정몽규 HDC 회장 수난기
HDC현산 ‘사망 사고’ 2위 오명, 오너 리스크 번질까 촉각
(시사저널=김경수 기자)
2월11일 막을 내린 아시안컵 후폭풍이 거세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PSG) 등 '역대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한국 축구는 기대 이하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줬다. 지도력 공백, 전략 부재, 특히 핵심 선수들 간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하면서 자질 논란을 빚은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59·독일)은 닷새 후 결국 경질됐다.
축구 논란에 그룹 이미지까지 '악화일로'
전 국민을 실망과 좌절에 빠뜨린 한국 축구. 전면 쇄신을 위해서라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업무방해' 등 혐의로 정 회장을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비슷한 시기, 정 회장이 이끄는 HDC그룹도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계열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시공하는 공사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2월1일 경기 평택시 장당동 고덕2차 아이파크 신축 공사현장 지하 2층에서 콘크리트 지탱용 건설자재인 H빔(2.5m)이 노동자 2명을 덮쳤다.
1명(50대)이 사망하고, 1명(30대)은 중상을 입었다. HDC현산은 4개월 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냈다. 경북 경산시 공동주택 신축공사장에서 외벽 방수 작업을 하던 A씨(50)가 30m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HDC현산에서 넉 달 만에 사망 사고가 2건이나 발생한 것이다.
경찰은 두 사고 모두 HDC 및 공사현장 관계자들을 소환해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될 경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된다. 책임자뿐 아니라 경영진도 입건됨에 따라 정 회장에게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김학용 국회의원(국민의힘·경기 안성)이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건설 현장 안전사고 기업별 현황'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2023년 6월말까지 HDC현산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 희생자는 총 16명이다. '중대재해 사망 사고 기업별 순위'에서 2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여러 차례 큰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이 같은 수치가 나타난 것은 (HDC현산이) ESG 안전경영을 외면한 결과"라며 "정몽규 회장의 '안전불감증'이 그룹 내 오너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잇단 판단 미스에 자질 부족 논란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 회장의 자질 논란까지 불거지고 있다. 다시 축구로 눈을 돌려보자. 최근 경질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만 봐도 그렇다. 당시 클린스만은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 1, 2순위의 후보가 아니었다. 그런데 정 회장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적극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나아가 100억원에 달하는 위약금도 대한축구협회가 떠안게 했다. 독단적으로 강행한 결정이 실속 없는 '헛방'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은 2월16일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 선임에 대한 오해가 있다"며 "벤투 감독 때와 같은 절차였다. 61명의 후보군이 23명으로 좁혀졌다. 이후 마이클 뮐러 위원장이 5명을 인터뷰해 최종 2명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클린스만 감독이 최종적으로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축구만의 일은 아니다. 회사 오너로서 정 회장의 판단력을 의심케 하는 사례도 있다. 2019년 12월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가 대표적이다. 당시 아시아나의 부채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다른 대기업들은 인수를 모두 꺼렸는데, 정 회장은 달랐다. 정 회장은 금호건설로부터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키로 했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에 2177억원, 금호건설에 323억원 등 모두 250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다음 해 9월11일,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금호건설 측은 "HDC현산이 계약 체결 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변심해 인수 약속을 파기했다"면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두 달 후 금호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계약금 2500억원에 설정된 HDC현산의 '질권'(채권자가 채권의 담보로서 채무자 또는 제3자(물상보증인)로부터 받은 담보물권)을 해지하고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HDC현산을 상대로 낸 '계약금반환채무부존재 확인 및 질권소멸통지' 소송에서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건설 측의 인수 계약 해지가 적법하다. 계약금 반환 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HDC현산 측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고, 4년 넘게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투자업계는 HDC현산이 계약금을 돌려받기 힘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재실사가 거절된 만큼, 계약금 반환 근거가 빈약할 수 있어서다. 결국 정 회장의 판단으로 인해 HDC현산은 계약금 2500억원을 날릴 수 있는 우를 범했다.
2021년 6월 발생한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철거 건물 붕괴 사고'(9명 사망, 8명 부상)와 5개월 후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6명 사망, 1명 부상) 때도 그랬다. 정 회장은 아이파크 붕괴 사고 7일 만에 나타나 "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HDC현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수행해야 할 긴급한 상황에서 "정 회장이 무책임하게 사퇴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더 나아가 정 회장은 HDC그룹 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분 매입 등의 행위가 이어지자 '도피성 사퇴'라는 여론의 뭇매까지 두 배로 맞았다.
HDC 측 "새롭게 제자리로 되돌릴 것"
공은 이제 정 회장에게 넘어갔다. 대한축구협회와 HDC그룹의 악화가 지속되면, 정 회장의 입지와 영향력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 회장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해 경영을 모두 정상화할 경우엔 경영능력을 다시 인정받아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 회장은 현대가 분란 속에서 HDC현산 회장에 취임해 회사를 키워냈다. 1999년 현대그룹에서 HDC현산을 분리해 HDC그룹을 세운 후 20년 만에 자산 10조원이 넘는 기업집단으로 만들었다. 건설업 경험은 없었지만, HDC현산을 국내 굴지의 종합건설사로 키워냈다. 2003년부터는 HDC현산이 짓는 주거, 주상복합, 상업용 등 모든 건물의 이름을 '아이파크'로 통합했다. 건물 브랜드의 다양화로 혼란스러워하는 소비자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정 회장의 전략은 주효했다. 브랜드 통합 전략이 성공을 거두자 HDC현산은 2006년 시공능력평가에서 4위까지 올랐다. 2019년부터 4년 동안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9위를 유지했다.
HDC현산은 안전한 노동환경과 노동자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잠실진주 재건축현장 안전교육장에서 외국인 근로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협력회사 현장지원 안전교육을 진행했다. 특히 모든 현장에 근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명예 통역관을 지정하고 있다. 작업 전, 아침 미팅 및 신규·정기·특별교육 시 동시통역이 진행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가별 더빙·번역 교재를 배포하는 등 외국인 노동자들의 의사소통 미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최근 발생한 두 건의 HDC현산 사망 사고로 인해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건설 기반 성장과 M&A 등 계열 다각화를 통해 재계 순위 상승의 꿈을 키웠지만, 축구와 경영능력 부족 등으로 구설에 오른 정 회장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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