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윤의 작심한달] “가을엔 독서 삼매경”… 뜨거운 술 대신 차가운 물을

이채윤 2024. 10. 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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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차가움을 찾기 위해 도전한 독서
사랑·시간·희망·사유했던 독서 경험
자신의 시간 찾는다면 추천…어렵다면 짧은 책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올해는 무언가 큰일을 이루겠다고 마음먹지만, 연말이 되면 어떤 다짐을 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지곤 합니다.

‘작심삼일’의 사전적 의미는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결심이 굳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삼일’에 그치는 ‘작심’을 자꾸만 계속해 작심 일주일, 작심 한 달, 작심 일 년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굳지 못한 결심’은 느슨한 채로 이어져 목적지에 이를 수 있을 겁니다.

작심삼일을 밥 먹듯이 일삼는 이채윤 기자가 여러 취미를 찾아 한 달 동안 체험해 봅니다.

일터가 아닌 곳에서 삶의 재미를 찾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생생한 경험담을 작심삼일을 반복해 작심한달을 한다면 ‘내 일’이 ‘내일’이 될 거란 기대로 말입니다.
 

▲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앞에서 시민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등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 작가가 지난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최근 서점가에 따르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에서 한강 도서 판매량은 종이·전자책 합쳐 총 100만부를 돌파했다. 15일 오후 기준 종이책은 예스24 40만9000부, 교보문고는 33만3000부, 알라딘 23만부로 총 97만2000부를 기록했다. 전자책은 3사 합계가 7만부를 넘었다. 그간 침체됐던 서점가도 모처럼 활기가 돌고 있다.

올해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가운데 일반 도서를 단 한 권이라도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은 43.0%에 불과해 사상 최저 기록을 달성한 가운데, 100만부의 판매량은 고무적인 기록이다. 나 역시도 해가 갈수록 책을 읽는 게 줄어들었다. ‘바빠서’, ‘일 때문에’이라는 핑계를 달면서 퇴근하면 늘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책은 멀리했다. 다시 책을 찾게 된 이유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의 말 때문이었다. 그는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책을 ‘물’, 영화를 ‘술’이라고 비유했다. 그의 주력 분야인 영화는, 사람을 뜨겁게 하는 ‘술’이다. 반면 책이 ‘물’인 이유는 인간을 “좋은 의미로 차갑게” 만들고, “이성은 기본적으로 차가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 평론가는 책(독서)를 빗대어 사람을 차갑게 하는 이성의 속성이 물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책 읽기에 소홀해 반성을 거듭하던 나는 이 말에 홀려 다시 책을 찾기 시작했다. 9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여 간 10권의 책을 읽었지만, 주마다 함께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책들을 공유하며 ‘취미는 독서’라는 작심한달을 돌아본다.
 

▲ 사진첩에서 유일하게 찾은 독서하는 사진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 이채윤

■‘인생의 역사’를 통해 “사랑에 대해 읽기”

‘인생의 역사’는 신형철 평론가가 선보이는 첫 번째 시화(詩話)다. 5부에 걸쳐 동서양의 시 스물다섯 편에 저자의 산문이 합쳐졌다. 릴케의 시를 다루며 신형철은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 어렵다”면서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정, 그리고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그가 시를 읽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신형철이 삶에서 경험한 시들이 차곡차곡 글로 쌓였다. 그래서인지 필사를 해 애정 있는 이와 함께 읽고 싶은 대목이 많았다.

특히 이영광의 시 ‘사랑의 발명’은 내가 곁에만 있으면 죽지 않을 사람을 위해 사랑을 발명해야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형철은 사랑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Amo: Volo ut sis.’(아모 볼로 우트 시스·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을 전한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원형을 보여주는 시를 통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 낼 책임이 있다고 그는 믿는다고 했다. 그 문장에서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세상이 다 아프게만 느껴져도 함께 살아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을 믿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순간을 영원히

둘째 주엔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었다. 그가 프랑스에서 만난 공연과 사람들에 대한 에세이다. 가보지도 않았던 프랑스의 거리를 그와 함께 같이 걷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공연예술의 가장 큰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고 정의했다.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시간에 깃들어 발생했다가 그 흐름이 끝나면 끝이 나고, 작품은 오로지 그것이 발생하고 있는 시간에만 존재한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은 이미 희미하게 사라진 기억에만 의존해 연극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목정원은 “시간예술의 근본엔 슬픔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슬픔을 아는 사람의 글이라서 그랬을까. 목정원의 글들은 기억 속에 남은 흔적을 따라가는 작업처럼 느껴졌다. 공연이라는 시간예술이 우리를 지나쳐가지만 어떤 흔적을 남기듯이, 목정원이 프랑스에서 통과한 시간도 언젠가 희미해지겠지만 그에겐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글들이 위로됐다. 그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빌려 “생은 고통이고 죽음만이 안식일지라도 생을 향해 걸어 나가는 일. 그 걸음을 흉내 내자 문득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라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라고 썼다. 오르페우스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는 나도 어디로든 나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의 강원 춘천 소재 달아실 출판사 코너에서 시민들이 시집을 읽고 있다. 이채윤

■‘푸르른 틈새’로 비치는 희망

소설가 권여선의 글을 좋아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인물들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집 안녕 주정뱅이의 ‘봄밤’에서 알코올 중독자인 연인이 술을 마시면 안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끝내 술을 마시도록 보내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결과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인물의 선택에 마음을 뺏겼다. ‘푸르른 틈새’는 1996년 출간된 권여선의 등단작이다. 대학 신입생 미옥은 운동권에 뛰어들고 다섯명의 친구들을 만난다. 그는 여성적 욕망과 중성적으로 남겠다는 욕망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도 한다. 술만 마시며 휴학 기간에 직장을 잃은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보내기도 한다. 휴학을 마친 미옥은 복학 후 친구 한영과 연애를 한다. 그러나 미옥은 두 번의 실패를 겪는다. 미옥이 투신한 운동의 경험은 ‘전경의 곤봉 폭력’ 앞에서 실패로 돌아가고, 연애 역시 실패로 돌아간다. 또 유대감이 있었던 아버지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다. 미옥은 자해를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한다. 하지만 미옥은 무력하게 모든 것이 한층 더 나빠진다고 하더라도 말을 믿고, 기억을 믿고, 그 밖의 다른 것을 믿어보기로 한다. 불완전한 균열인 ‘푸르른 틈새’로 닫히지 않은 시간을 ‘희망’을 품으며 기꺼이 살아가 보기로 한다. 과거로부터 쏟아진 기억의 빛이 결국엔 현재의 나를 비추며, 닫히지 않은 시간을 견디게 해주리라는 아름다운 믿음에 나 역시도 벅찬 희망을 느꼈다.

■ 이렇게 살아도 될까요…고민의 연속

4주 차엔 병렬독서를 하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출판사 편집자에게 추천받아 산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장애성과 동물성을 다루고 있다. 계속 머뭇머뭇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들이 많다. 침팬지가 사람과 수화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소통이 가능한 침팬지만 살려도 되는가. 비장애 중심주의로 장애인을 억압해도 되는가.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의 교차성을 치열하게 탐구하는 책을 만나며 내제했던 시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함께 읽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하는 일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랑하기 위한 실천의 기술을 어떻게 생활에 옮길지 고민한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더 많은 대상과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일주일 내내 온탕과 냉탕을 오가듯이 두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있다. 카프카의 말처럼 책은 도끼다. 갇혀있던 나를 깨고, 사유하게 만든다.

이쯤에서 권여선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그의 소설집 각각의 계절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 라는 단편은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권여선 작가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제가 살다 보니까 사람마다 어떤 시절들을 겪는데, 그 시절이 계절처럼, 각각의 시절을 나는 각각의 힘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20대 때 겨우 갈고 닦은 힘이 있으면 그걸로 30대를 넘길 수가 없어요. 다른 힘이 필요하고. 우리가 계절을 날 때 여름을 나는 힘과 겨울을 나는 힘이 다르듯이 그렇게 다르고. 그래서 각각의 시절에 맞는 힘을 스스로 길러내야 되죠. 자기 속에서”라고 했다. 이번 가을, 또 각각의 계절을 겪을 때 필요한 힘을 독서를 통해 찾아보는 건 어떨까.

▶▶▶자신의 시간 찾는다면 추천…어렵다면 짧은 책부터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다면 ‘독서’를 강력히 추천한다. 인물에 집중하면서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시각을 경험할 수 있다. 아울러 독서를 하면 어휘력이 향상되고 사고력이 넓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독서를 처음 시작하거나 책을 오랜만에 읽게 되면 두꺼운 책을 읽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한다. 그럴 땐 만화책이나 그림책부터 시작해 점차 분량이 긴 책으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독서에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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