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입만 살았다는 선생님 되고 싶지 않아"

이듬해 세계 최고 클래식 축제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쌍벽을 이루는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우리나라 아티스트 최초로 독주회 무대를 갖고, 국내외 주요 오케스트라 및 저명 연주자들과 협연하는 등 자신의 음악 색깔을 맘껏 펼쳐 온 김다미(34)가 털어 놓은 소회다. 그와 지난 9일 대면 인터뷰를 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다음날 전화로 나눴다.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32살 때인 2020년부터 서울대 음대 관현악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 중인 김다미는 최근 두 번째 앨범 ‘타임패스(Timepass)’를 발매했다. 2015년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 동양인 최초 우승 등을 거쳐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문지영(27)과 함께 차이콥스키(1840∼1893, 러시아)·거슈윈(1898∼1937, 미국)·슈만(1810∼1856, 독일), 비탈리(1663∼1745, 이탈리아)의 낭만적 소품을 녹음한 음반이다.

녹음을 앞두고선 두 가지 목표가 떠올랐다고 한다. 20대 초반부터 10년이 흐르는 시간 동안 사랑했던 작곡가의 낭만적 소품을 연주하면서 무대 위에 섰던 추억을 길어 올리는 것. 또 하나는 코로나19로 심신이 지치거나 무료한 사람들이 대중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하자는 것. 그래서 제목을 ‘타임패스’로 달았다. “들으시는 분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라도 편하게 들으셨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웃음)
앨범에는 차이콥스키 ‘소중한 곳에 대한 추억’,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주제에 의한 콘서트 판타지’(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이고르 프롤로프 편곡), 슈만 ‘환상 소곡집’·‘3개의 로망스’, 그리고 비탈리 ‘샤콘느’ 다섯 곡이 수록됐다.
김다미는 “기획부터 선곡까지 제 의지를 전적으로 반영한 음반”이라며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원전 악보를 철저히 연구하고 다시 연습을 시작하면서 의욕을 되찾고 큰 위안도 얻었다”고 말했다.

특히, 처음 만난 스승인 양 전 교수와의 인연은 각별했다고. “7살 때 대전이 한 대학 음대생에게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는데, 당시 주기적으로 대전에 있는 음대생들 레슨하러 내려 온 양 교수님을 소개 받아 가르침을 받게 됐어요. 한 할아버지 같으셨는데 초등 6학년 때인가 어느날 레슨 도중 제가 활이 부족한 걸 아시고 ‘이 활로 한번 해봐라’라고 ‘사토리’(프랑스의 바이올린 활 명품 브랜드) 활을 빌려주셨어요. 이후 그 활만 20년 가까이 썼어요. 평생 쓸 줄 알았는데 지난해 선생님께서 안타깝게 돌아가셔서 유족들에게 돌려드렸습니다. 그전에 현대 활 제작자에게 새 활을 주문하면서 그 사토리 활을 가져가 무게 등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요. 내 팔과 같은 활이었기 때문에…”
김다미는 이후 유서 깊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여성 바이올린 거장 미리암 프리드(76) 지도 아래 학사·석사과정을 마쳤다. “두 분 할아버지 선생님께 정말 감사함에도 어린 나이에 엄한 교육을 받다 보니 제 스스로 위축되고 연주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었어요. 그러다 (성인이 돼 만난) 프리드 선생님은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고 섬세한 지도로 제 음악적 연구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죠. 2018년 첫 번째 앨범을 들으시곤 ‘뭔가 한 명의 성숙한 음악인으로 발전한 것 같다’고 칭찬해주셨고, 교수 임용 관련 말씀을 드렸을 때도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한다’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지금의 김다미를 있게 한 이들 세 스승 중 교육자로서 롤모델 역시 프리드 교수라고. 이제 후학을 양성하게 된 그는 “학생마다 다른 발전 속도를 기다려주면서 학생 특성에 따라 맞춤식 교육을 했던 프리드 선생님처럼 가르치려 한다”고 말했다.
김다미가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경력 중 아주 큰 성과로 뽑는 건 2016년에 한국인 최초 루체른 페스티벌 초청 연주 경험인데 그 무대에 서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2011년 일본에서 우승한 콩쿠르(나고야 무네츠쿠 바이올린 국제콩쿠르)가 있는데 (우승 부상이) 50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2년간 대여해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콩쿠르 개최 시기가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시점이라 불안했던 외국 참가자들이 저 빼고 다 자국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명색이 국제 콩쿠르인데 일본인 참가자만 있을 뻔한 상황에서 외국인 참가자로 제가 남아서 우승까지 하니 콩쿠르 주최 측에서 고맙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50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아스 2년 대여에 추가로 100억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를 3년 더 사용하도록 파격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 명기들 가지고 다른 국제 콩쿠르 참가해 우승도 하고 그랬죠. 다만 악기 대여 조건으로 일본의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해 연주해주는 게 있었습니다. 계약대로 연주 일정 마치고 한국으로 가려는데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다음날 공연 예정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펑크냈는데 대신 공연 좀 해달라. 다만 전날과 다른 레퍼토리로 공연해줘야 한다’고 요청했어요.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다음날 다른 레퍼토리로 연주했지요. 마침 그날 공연장을 찾았던 루체른 페스티벌 디렉터가 그 공연을 봤고 끝난 뒤 초청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루체른 페스티벌 무대에 선 건 저에게 굉장한 영광이었죠.”
그렇게 20년가량 자신 소유의 바이올린 하나 없이 각종 기관에서 대여해준 명기로 연주생활을 하던 김다미는 지난해 비로소 자신 만의 바이올린 2대를 장만했다. 옛 명품 악기는 아니고 현대 바이올린 제작자에게서 직접 구입한 것으로, 이번 ‘타임패스’ 앨범에 실린 선율도 이들 바이올린으로 뽑아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다니니 바이올린 등 엄청난 가격의 옛 명품 악기들을 대여받아 연주할 때보다 결과물이 아쉽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타임패스’ 발매를 기념해 최근 끝낸 피아니스트 김규연과의 듀오 리사이틀 투어에 이어 오는 12월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가 모이는 8중주 공연, 내년 3월 기타·플루트·피아노와 함께 하는 ‘특이한 4중주’ 공연을 기획한 김다미는 “언젠가 슈만과 브람스(1833∼1897, 독일) 바이올린 소나타와 브루흐(1838∼1920, 독일) 바이올린 협주곡 전곡 앨범도 내고 싶다”며 교육·연주활동 모두 열심히 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교수 임용 당시 실제 주변에서 ‘너무 빨리 정착해서(학교로 가서) 연주력이 떨어지면 어떡할거냐’는 우려를 많이 하셨어요. 제가 스스로 기획해서 연습하고 연주한 (결과물인) 이번 ‘타임패스’ 앨범이나 리사이틀 투어 모두 연주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본인 지도교수의 연주를 보면서 (교수의 실력을) 평가할 거라 생각하는데, (제자들로부터) ‘김다미 선생님은 입만 살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요.”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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