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국영수 공부만 하면 굶어 죽습니다” 안재현 교육컨설턴트

조지윤 기자 2024. 9. 2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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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시대의 교육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AI로 대체됩니다’의 저자 안재현 교육 컨설턴트에게 미래 인재를 키우는 교육법에 대해 들었다. 

안재현 교육 컨설턴트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다. SF영화 속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당장 평범한 직장인들도 업무에서 챗GPT 등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식당에서도 AI 기반 서빙로봇을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 법률, 의료 등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진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법률 플랫폼 '로톡’을 운영하는 로앤컴퍼니는 지난 7월 법률 검색, 서면 초안 작성, 문서 요약 등을 해주는 AI 법률 비서 '슈퍼로이어’를 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법률 직무의 44%가 AI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의료계 역시 대형 병원에서 AI 진단 솔루션, 수술 로봇 등을 도입해 의료진을 보조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AI 헬스케어 시장은 지난해 158억300만 달러(약 21조5100억 원)에서 2030년 1817억9000만 달러(약 247조4700억 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교육계에서도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고, 초중등 교육과정에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교육 패러다임의 혁명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대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 하지만 기존의 국영수 위주의 입시 교육에 익숙해져 있던 학부모들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당장 자녀 교육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더욱이 부모 역시 아직 살아본 적 없는 AI 시대에 적격한 인재로 아이를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2003년부터 미국 SAT(수학능력평가시험) 아카데미 디렉터로서 교육업계에 뛰어든 안재현 교육 컨설턴트는 "이제 국영수만 공부하면 굶어 죽는 시대"라고 말한다. 미국 뉴욕 명문 보딩스쿨인 스토니브룩스쿨에서 디렉터로 일하며 교육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AI 기술을 익히는 공부보다도 중요한 건 기술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적’에 대해 고찰하는 것"이라며 "패러다임 전환기에 부모는 아이와 함께 배워가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컨설턴트에게 AI 시대 속 아이를 미래 인재로 키우는 법에 대해 들었다.

국영수만 하면 굶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요. 저를 포함한 학부모님들이 입시를 치르던 20~30년 전의 성공 기준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취업해서 오래 일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평생 직업’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추세고, AI로 인해 사라지고 또 새로 생기는 직업도 많아졌습니다. 예전의 성공 기준과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직업은 앞으로 없어질 직업 위주로 집중돼 있어요.


없어질 직업은 구체적으로 뭔가요.
엄밀히 말하면 없어진다기보다는 필요한 인원이 대폭 줄어들 직업입니다. 기존에 10명을 뽑았다면 1명만 필요해지는 것이죠. 의사가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몸살 기운이 있어 병원을 찾으면 진단받기 전에 혈압, 맥박 등 바이탈 체크를 먼저 합니다. 이전 진료 기록을 살피고, 복용 중인 약이 있는지도 확인하죠. 사실상 모두 AI로 더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물며 지금 초등학생이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끝내는 10년, 20년 뒤를 생각해보면 AI 기술은 지금보다 더 고도화될 것입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이라도 AI 없이 단독으로 일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됩니다. 교육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죠.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어떤 일이 필요할까요.
인간과 기계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일입니다. AI를 필두로 데이터, 알고리즘 등 기술을 이해하고 다룰 줄 아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설득하고 소통할 수 있는 소프트 스킬도 중요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별개의 역량인가요.
그렇죠.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과제를 잘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답을 찾는 것은 굉장히 쉬워졌어요. 당장 검색만 해도 모든 것이 나오고, 직접 코드를 못 짜더라도 생성형 AI한테 자연어(사람의 말)로 요청하면 코딩도 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좋은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게 달라집니다. 주어진 것을 잘 학습하는 능력과는 별개죠.


좋은 질문을 하는 능력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부모와의 대화가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자주 이야기해도 하루 동안 배운 것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것을 주제로 가정에서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재활용에 대해 공부하고 왔다면 가정에서도 나눌 이야기가 많아요. 분리배출을 해야 하는 이유부터 재활용되는 과정, 다른 나라에서 재활용하는 방법, 분리배출 방법 등 무궁무진하죠. 혹은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옷은 어떻게 활용되는지, 해외로 수출된다면 어느 나라로 가는지, 그 나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헌 옷을 나누고 파는지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죠. 나아가 재활용 처리장을 방문해보거나 업사이클링 체험을 하는 등 가정에서 일종의 프로젝트를 해볼 수도 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자연스럽게 궁금한 점을 찾을 수 있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미래 인재의 출발은 '대화’로부터

미국 소재 상위권 보딩스쿨은 교사가 교단에서 일방향으로 수업하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타원 형태의 ‘하크니스 테이블’에 앉아 수업한다. 모든 참여자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 안 컨설턴트는 가정에서도 이 같은 테이블을 사용하면 가족 간 대화를 늘릴 수 있다고 권한다.
부모가 답을 알려줘야 하나요.
답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답은 휴대폰으로 검색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죠. 이 과정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더 많은 질문을 유도해야 해요. 예컨대 드라이브를 하다가 풍력발전기를 본다면 과연 정말 친환경일지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전기가 만들어지는지, 부작용은 없을지, 새가 부딪히면 어떻게 될지 등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꾸준히 호기심을 갖고 질문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죠.


질문하는 능력 말고 또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요.
공감 능력입니다. AI가 대체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AI는 결국 기술일 뿐이고, 이를 사람이 필요한 영역에서 어떻게 편리하게 사용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결국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죠. AI 시대에 다시 인문학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가정에서 공감 능력은 어떻게 교육할 수 있나요.
쉽게 말하면 부모가 '덜’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아이들끼리 싸우면 대개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해요. 그런데 이는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부모가 뺏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보고,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좌절도 겪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도 키울 수 있고요. 저도 부모로서 아이에게 뭐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만, 가끔은 아이가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믿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 같아요.

안 컨설턴트는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해외에서 인기를 끈 K-콘텐츠의 공통점으로도 '공감’을 꼽았다. 그는 "결국 스토리텔링 능력이 중요하다"면서 "나만이 가진 콘텐츠를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어 실력이 좋은 학생 가운데 영어 토론을 할 때 미리 준비한 주제가 아니면 말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언어의 장벽이 허물어져 글로벌로의 진출이 가능해진 시대에는 결국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목적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는 "이제 1인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기업)도 나올 수 있는 시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혼자서 회사를 운영해도 생성형 AI를 통해 10명의 사무직을 고용한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 웬만한 대학교 학부생이 할 수 있는 업무는 이제 생성형 AI가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제 중요한 것은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를 통해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코딩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코딩으로 개발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소용이 없기 마련입니다. 좋은 대학, 대기업이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해야 하죠. 예전부터 나왔던 말들이지만 이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습니다.

부모도 아이와 함께 배워가야 할 시대

글로벌 검색 엔진 구글은 메인 화면에 ‘검색 탭’만 둔 것과 달리 토종 검색 엔진 네이버는 검색 없이도 콘텐츠를 제공한다. 초점을 질문에 맞추는지 정보에 맞추는지의 차이다.
AI 시대에도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유효한가요.
의미가 있지만 그 이유는 오직 '동문’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비리그와 국내 대학교에서 배우는 경제학 전공의 이론적인 내용은 다를 바 없습니다. 차이는 수업할 때 옆자리에 누가 앉아 있는지에서 오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메타 대표도 하버드대학교를 중퇴했지만 다니는 동안 공동 창업자인 룸메이트를 만났죠. 좋은 대학에서 양질의 네트워킹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도 국내 의대 열풍처럼 특정 전공이 인기를 끌고 있나요.
미국에도 의대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렇다고 엘리트들이 무작정 의대로 쏠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창업을 노리는 인재들이 더 많습니다. 실제로 글로벌 최고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의 AI 엔지니어들도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창업하기 위해 퇴사합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를 퇴사하고 창업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이 훨씬 높은 거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해도 긍정적으로 보는 문화가 깔려 있어요.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는 점을 높게 치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사업 실패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국내 내수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지금 글로벌을 타깃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AI 시대는 아직 부모도 살아본 적이 없는 만큼 교육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 아이한테 가게끔 하려는 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사실 부모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부모가 다 알지 못하더라도 괜찮아요. 엄마, 아빠도 AI를 배운 적이 없지만 용기 내서 배우려고 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좋은 교육입니다. 중요한 건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배워가는 것이죠. 그 과정이 완벽하지도 않고 틀릴 수도 있지만 아이와 함께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미래교육 #AI교육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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