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이 문제라면, 경기 결과도 문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스코어는 3-0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선 선수가 직전 시즌 PBA 대상 수상자를 완파한 날, 가면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해커(본명 안광준)가 PBA 투어에 등장할 때마다 가면은 경기만큼 화제가 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테이블에 서는 그의 모습은, 유튜브 채널에서 출발한 트레이드마크다. 문제는 이 마스크가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 실질적인 심리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해커는 그 논란에 직접 입장을 밝혔다.
발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가면을 벗었을 때 자신의 경기 컨디션이 더 낫다는 것. 둘째, 가면이 상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본인도 인정한다는 것. 이 두 문장을 나란히 놓으면 논쟁의 구조가 선명해진다. 자신에게 불리하고 상대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는 장치를 왜 계속 쓰는가.

해커가 제시한 답은 브랜드였다. 본명 안광준보다 '해커'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 있고, 그 이름으로 PBA 와일드카드 출전 기회를 얻었다는 현실 인식이다. 이 지점은 중요하다. 와일드카드는 실력만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흥행 가치, 화제성, 대중 인지도가 전제된다. 해커가 PBA 무대에 서는 조건 자체가 '해커'라는 캐릭터에 묶여 있다. 가면은 그 캐릭터의 외피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정성의 문제인가. 현행 PBA 규정은 특정 복장이나 소품에 대한 명문 규제를 두고 있지 않다. 가면 착용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다는 뜻이다. 규정 위반이 아닌 이상, 논란은 결국 심리적 영역에서의 형평성 문제로 좁혀진다. 상대가 가면을 보고 위압감을 느낀다면, 그 책임은 규정 밖 장치를 허용한 리그에 있는가, 아니면 그것에 흔들리는 선수 개인의 멘탈 관리에 있는가.

당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심리전의 비중이 높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두 선수는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야에 담는다. 표정, 자세, 루틴, 심지어 미세한 호흡의 변화도 경기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면은 그 정보 교환의 채널 하나를 완전히 차단한다. 상대는 해커의 표정을 읽을 수 없다. 해커는 상대의 표정을 읽는다. 비대칭이다.
그러나 이 비대칭이 이번 경기 결과를 설명하는 핵심 변수였는지는 다른 문제다. 다니엘 산체스는 UMB 세계선수권 4회 우승, 월드컵 15회 우승을 가진 선수다. 수십 년간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심리전을 반복해온 커리어다. 직전 시즌 PBA 대상을 받은 그가 3-0으로 무너진 이유를 가면 하나로 귀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산체스의 경기가 풀리지 않은 측면도 있었지만, 3세트 동점 상황에서 해커가 흔들리지 않고 마무리한 장면은 실력의 언어였다.

논란이 해소되는 조건은 해커 스스로 제시했다. "언젠가 본명으로 불리는 날이 오면 가면을 벗겠다"는 발언은, 역설적으로 현재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면을 벗기 위해서는 해커라는 이름 없이도 PBA 무대에 설 수 있는 실력 증명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 증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64강에서 안토니오 몬테스와의 경기가 남아 있다.
가면 논란은 그가 이기는 한 계속될 것이다. 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이 논쟁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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