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과 VR 기술은 지루한 화상회의를 대체할 수 있을까
핀란드 헬싱키에 본사를 둔 ‘글루 콜라보레이션(글루)’의 유시 하부 CEO는 매주 월요일마다 직원 30명과 VR(가상현실) 회의실에서 만나며 하루를 시작한다.
글루는 지식 기반 산업 관련 사무 공간에 VR을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하부 CEO는 VR 오피스에 대해 낙관적이다.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0년, 칸막이 회사 사무실에서 집 소파로 강제로 업무 환경을 바꿔야만 했던 직장인 수백만 명에게 화상회의는 매일 같이 이어지는 힘들고 단조로운 존재가 돼버렸다.
일부 직원들은 팀으로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연속으로 몰아닥치는 회의에 피곤함을 느꼈다. 반면 상사들은 화상 회의를 통해 자율성이 부여되며 기업 생산성이 위협받는다는 걱정을 늘어놨다.
그리고 뒤이어 이러한 화상 회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XR(확장현실)이 등장했다. XR은 디지털 환경을 보는 여러 가지 방식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용어다.
예를 들어 반투명 렌즈를 착용한 참가자들은 가상의 사물이나 정보(예를 들어 화이트보드)를 실제 세계와 합성해 볼 수 있다. AR(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된 형태다. 한편 VR 기술이 적용된 고글과 헤드셋 등을 착용하면 사용자는 차단된 공간에서 시뮬레이션 환경에 몰입할 수 있다.
앞서 주요 IT 기업들과 기업 컨설팅 기업들은 XR이 지식 기반 산업 오피스에 혁명을 일으키며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경험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리라 전망한 바 있다.
다국적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2022년 연구에서도 미국 기업 500여 곳이 비즈니스에 VR을 적용했거나, 혹은 적용하는 중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광범위한 업무 환경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근로자들은 온종일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진 않다.
그런데도 글루와 같은 몇몇 XR 기술 기업들은 온, 오프라인이 결합한 하이브리드 업무가 표준화된 현 세상에서 AR과 VR이 여전히 유용하며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장인들과 기업 모두 사무실과 집에서의 경험을 매끄럽게 혼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의미 있는’ 회의
현재 XR이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분야는 교육과 훈련이다.
PwC에 따르면 VR을 통한 근로자 교육은 기존의 강의실 내 교육 및 온라인 교육에 비해 각각 4분의 1, 2분의 1의 시간만 소요됐다. 또한 PwC의 조사에 따르면 VR로 학습한 직원들은 헤드셋을 끼고 온라인 강의만 들은 직원들에 비해 자신이 배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하는 데 더 큰 자신감을 드러냈다. XR 기술을 통해 사실상 기술을 연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VR을 통한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은 개인에게 마치 의미 있는 경험을 한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결론이다.
이렇듯 교육과 훈련은 이미 XR이 성과를 보이는 분야이지만, 일부 다른 기업들은 XR 기술을 적용하면 회의 경험도 향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소수이지만 모든 참가자들이 절대 방해되지 않을 환경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실제로 연구를 통해서도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관련 국제 학술지인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휴먼-컴퓨터 스터디’에 올라온 연구에 따르면 ‘메타’사의 가상 오피스 플랫폼인 ‘호라이즌 워크룸’을 사용한 실험군은 VR이 비공식적이지만 구조적인 회의에 유용하다고 응답했다.
노르웨이 소재 AR 기업인 ‘Naer(노르웨이어로 ‘근처’를 뜻함)’는 메타가 제작한 헤드셋 ‘퀘스트’를 착용한 사용자들이 동료들과 다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참가자들이 실제로는 같은 사무실에 있든, 혹은 서로 다른 대륙에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Naer의 기술을 사용하면 모두가 물리적으로 동일한 화이트보드에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또 다른 AR 오피스 기술 기업 ‘아서 테크놀로지스’의 창립자이자 CEO인 크리스토프 플레이슈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영상 통화를 통해 BBC에 VR과 AR의 핵심은 사람 간의 상호작용 모방에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주요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에선 아서 테크놀로지스사의 플랫폼을 통해 자사 직원과 고객에 애니메이션화된 상체를 부여한다. 이들은 화려하게 꾸며진 가상 오피스에서 엄청난 크기의 발표 자료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소시에테 제너럴의 상무이사이자 독일 및 오스트리아 시장 세일즈 책임자인 프랭크 부르크하르트는 해당 기술에 대해 자사 내 연구진들이 좋은 평가를 줬다고 말했다. “복잡한 콘텐츠를 고객에게 안내할 때 정말 유연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XR이 원격 회의 환경에서 이렇게 효과를 발휘하는 가장 단순한 이유 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거의 반강제적으로 동일한 것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메신저 알림, 이메일 등 온라인 환경엔 여러 방해 요소가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함께 생각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줌’ 회의에서 직원들은 쉽게 주의 집중하지 못할 수 있다.
Naer의 창립자이자 CEO인 손드레 크밤은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이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XR 기술을 통하면 화상 회의와 달리 사용자들은 손짓, 표정, 자세 등 실제 대화 환경에서 쉽게 보이는 서로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아서 테크놀로지스의 플랫폼에선 사용자가 고개만 돌려도 메인 대화에서 분리돼 옆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플레이슈만 CEO는 “이렇게 작은 요소 수천 개가 모여 직원 간 협력의 질을 높이고 원활하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남겨진 과제
이러한 전문가들은 XR 기술이 화상 회의나 기존의 원격 회의 기술보다 실제 사람이 만나 나누는 상호작용에 더 가까운 경험을 제공하기에 더 익히기 쉽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응 기간이 그렇게 길고 험난하지 않다고는 해도, XR이 두루두루 적용되기엔 몇 가지 장애물이 있다. XR 기술이 초기에 도입됐을 때부터 지적된 부분들이다.
우선 여전히 가격이 문제다. 아서 테크놀로지스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소시에테 제네랄, 유엔(UN), PwC 등 예산이 풍부하고 복잡한 사내 위계가 존재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 및 조직 위주다.
이러한 조직들은 직원들을 위해 500달러(약 66만원)짜리 헤드셋을 구매할 여유가 될 뿐만 아니라, 생산성 향상 및 출장비 절감을 위해서라면 투자에 나설 수도 있다.
플레이슈만 CEO는 “우리는 규모가 큰 기업이 이러한 기술을 도입해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둘 수 있게끔 우선 로드맵을 구축에서 앞서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착용감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다. 헬멧처럼 보이는(게다가 무게도 헬멧과 유사한) 1995년 ‘포르테 VFX1’ 헤드셋과 비교하면 오늘날 ‘오큘러스’ 몰입형 헤드셋 라인은 놀랍도록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1~2시간이 넘어가면 착용하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즉 적당히 긴 세미나나 회의 참석엔 괜찮을지라도, 그 이상 넘어가는 장기간 회의에선 불편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XR 사용자들은 메스꺼움, 방향감각 상실 등 일명 ‘사이버 멀미’를 겪는다고도 말한다.
한편 일부 AR 도구는 몰입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컴퓨터공학 대학원 소속 야스라 찬디오 연구원은 눈에 보이는 화면이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을 경우 AR에도 ‘불쾌한 골짜기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사과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 보일지라도 현실 세계에서와는 달리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테이블 끝에서도 균형을 잡고 있는 모습이면, 그 이유를 딱히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뇌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낀다고 한다.
그 결과 사용자의 주의가 흐트러지고, 결국 AR의 이점이 사라지게 된다. 찬디오 연구원은 “(주의가 산만해지면) 사용자의 속도도 느려지고,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생리적으로도 기분이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VR과 AR 기술을 자세히 연구해온 전문가들 또한 이미 현장과 밀접하고, 전문화된 다른 응용 프로그램들에 비교해 VR가 AR 기술이 얼마나 일상 업무에서 유용할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학자들은 여전히 AR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및 해당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다.
파티마 안와르 매사추세츠대학 전자 및 컴퓨터 공학 조교수는 “(VR, AR 기술이) 잠재력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면서 “그러나 현재로선 이 기술을 더 잘 이해해야만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업들 또한 이러한 XR 기술이 현재 원격 통신의 핵심인 화상 회의 및 메신저 플랫폼을 완전히 대체하기엔 이르다는 점을 알고 있다. 현재로선 적어도 이러한 현 기술에 대한 보조제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XR 기술이 미래에 이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는 2월, 애플사는 새로운 AVR 헤드셋인 ‘애플 비전 프로’를 출시할 예정이다. 플레이슈만 CEO는 거대 IT 기업인 애플엔 XR의 잠재력을 주류 시장으로 끌어올 절호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디자인은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애플은 신기술에 열광하는 IT 마니아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도 구매 호소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한편 하부 CEO는 향후 몇 년 안에 XR 기술은 부피 큰 헤드셋 없이도 사용자들에게 몰입감 있는 회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뛰어오르길 궁극적으로 바란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하드웨어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그저 켜고 끄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심지어 XR 분야의 기업들조차 이토록 미래지향적이며 혁신적인 최신 기술에 더불어 전통적인 화상 회의 소프트웨어 및 협업 도구들을 병행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XR 상품들 또한 하이브리드 업무 공간에서 더 큰 역할을 하리라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