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무인기, 러 전투기와 흑해 상공서 ‘아찔한 충돌’

미 “국제공역에서 작전 중 진로 방해, 수면에 불시착”
러 “접촉 없었다…미 무인기가 조종력 잃고 급강하”

MQ-9 ‘리퍼’

러시아 전투기가 흑해 상공에서 미군 무인기와 충돌을 일으켜 미 무인기가 불시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군과 미군 전력이 공중에서 직접 충돌한 것은 처음으로, 미·러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군 유럽사령부는 14일(현지시간) 러시아 공군 주력 전투기인 SU-27기 2대가 흑해 상공 국제공역에서 운항 중이던 미 공군의 정보감시정찰(ISR) 무인기 MQ-9 ‘리퍼’와 충돌했다고 밝혔다. MQ-9 리퍼는 날개 폭만 20ｍ에 이르는 대형 무인기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수시로 작전을 수행했고, 헬파이어 미사일 등 정밀 타격 무기 장착도 가능하다.

SU-27

미군은 러시아 SU-27기가 충돌 전 MQ-9 리퍼 앞에서 연료를 뿌리면서 “난폭하고 환경적으로 부적절하며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무인기 진로를 차단하며 비행했다고 밝혔다. 결국 SU-27기에 무인기 프로펠러가 부딪히자 미군은 무인기를 국제해역에 불시착하게 했다고 밝혔다.

미 군사당국은 자국 무인기가 국제공역에서 일상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면서 러시아의 행동을 비난했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무인기가 “우크라이나의 그 어떤 영토와도 확실한 거리가 있었다”며 “흑해는 중요하고 분주한 국제 수로라 우리가 흑해 국제공역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사건 직후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국무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군의 행동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으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화상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방해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는 위험하고 어설프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경우”라며 “미국은 흑해 상공에서 비행을 계속할 것이며, 우리가 비행하는 걸 러시아에 알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국 측 주장을 반박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미군 무인기가 크름반도 인근 흑해 상공에서 러시아 국경 쪽으로 비행하는 것을 포착했다고 밝혔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러시아는 자국 항공기가 미군 무인기와 접촉하지 않았으며, 미 무인기가 자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임시 설정한 공역의 경계를 침범한 뒤 조종력을 상실하고 강하하다 수면에 충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미·러 군용기가 충돌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한층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P통신은 미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자국 상공 인근에서 비행하는 상대국 군용기를 차단하는 것을 넘어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져 미군기가 추락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다만 러시아 전투기가 의도적으로 미 무인기를 공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미 정부의 판단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복수의 미 정부 관리들은 NYT에 이번 사건이 러시아가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찰기를 상대로 공격을 시작하려는 광범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볼 만한 정보는 없다고 말했다.

흑해 주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선박 봉쇄,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해군 함정 격침 등으로 사실상 전투 지역이 돼버린 상황이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