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 홍길동, 제 첫 명함입니다

황지윤 기자 2022. 10.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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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만명 역대 최다… 시간제 일자리 청년도 85만 사상 최다

서울의 4년제 사립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5)씨는 26일 “대기업 공채가 워낙 바늘구멍이다 보니 요즘은 공채에서 몇 번 고배를 마시면 계약직부터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면접 때 ‘취업 공백기’에 대한 질문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어디라도 취업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씨는 “문과 중에서도 상경 계열이 아니어서 취업이 쉽지 않은 친구들은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경기 안산의 2년제 전문대 국제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이모(24)씨는 “영어 점수, 자격증을 아무리 만들어도 취업이 안 된다고들 하니 계약직이라도 일단 시작할 생각”이라고 했다.

청년 고용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는 가운데, 계약직으로 생애 첫 일자리를 구한 청년이 141만명에 육박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14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성장률 하락, 고용 위축 등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계약직으로 첫 일자리를 구한 청년이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던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26일 서울 광진구청에서 열린 일자리박람회 모습. /연합뉴스

◇“계약직이라도 일단 취업하자”

26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체 15~29세 청년 임금 근로자(401만8000명) 중 생애 첫 일자리가 계약직인 경우는 올해 5월 기준 140만7000명으로 35%를 차지했다. 계약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청년 수나 비율 모두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8년 이래 가장 많다. 2012년에는 91만7000명이었는데 10년 새 53%나 늘었다.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은 일시적인 일자리를 생애 첫 일자리로 가진 청년은 올해 38만4000명이었다. 청년 임금 근로자 중 첫 직장이 계약직이거나 일시적인 일자리인 경우가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절반 가까운 청년이 정규직이 아닌 일자리에서 첫 직장을 시작한 셈이다. 계약직으로 시작할 경우 업무 능력 개발 등에서 뒤떨어져 생애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 등은 일자리 문턱이 높아졌다. 계약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근무가 가능한 일자리에서 첫 직장을 구한 청년은 올해 222만7000명이었다.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214만7000명)보다 약간 늘었지만, 10년 전인 2012년(252만7000명)보다 12%나 줄었다.

◇10명 중 7명이 첫 월급 200만원 미만

근로 형태별로 봐도 청년 일자리의 질(質)은 악화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시간제 근로(주당 36시간 미만 근무)로 첫 일자리를 구한 청년은 올해 85만2000명으로 이 역시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고다. 차지하는 비율(21.2%)도 가장 높았다.

전일제 근로(주당 36시간 이상 근무)로 첫 일자리를 구한 청년은 올해 316만6000명을 기록했다. 전체 청년 임금 근로자의 79%를 차지하지만,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경력이 없으면 단기 일자리부터 구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해 충남 천안의 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신모(24)씨는 “1년 6개월간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하고 다시 취업 시장으로 나왔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며 “요즘은 경력직 위주로 뽑다 보니 원서를 내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신씨는 사무직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을 알아보면서 회계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계약직과 단기 일자리가 첫 직장인 청년이 늘어나면서 10명 중 7명(67.9%)은 첫 월급으로 200만원 미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월 150만~200만원 미만(36.6%)을 받은 경우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월 200만~300만원 미만(28.4%), 월 100만~150만원 미만(16.1%) 순이었다. 첫 직장에서 월 300만원 이상을 번 경우는 3.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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