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맥의 나라’에서 외치다… 닭을 해방하라!

한겨레21 2024. 9. 1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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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역대급 폭염에 밀폐형 농장에서 폐사하는 닭 늘어… 미국 로스앤젤레스, 영국 노퍽처럼 해방할 방안 없을까
야생에서 생활하는 닭들의 모습. 게티이미지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올여름에만 폭염으로 닭이 100만 마리 이상 죽었습니다. 폭염이 극심했던 2018년에는 800만 마리가 죽었고요. 공장식 축산을 이렇게 놔둬도 될까요? 닭이 죽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 제보자 ‘비건 버거’

‘꼬끼오.’

고급 호텔이 바닷가에 모여 있는 미국령 괌의 투몬비치.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이 한 호텔로 여름휴가를 왔어요.

“금방 들으셨어요? 수탉 우는 소리 같은데요?”

둘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닭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바닷가에 내려가 보니, 붉은 수탉 한 마리가 모래밭을 뛰어가고 있었어요! 그 뒤로 검은 뿔테 안경에 하얀 수염을 하고 하얀 신사복을 입은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닭을 쫓아가고 있었고요. 수탉이 호텔 정원의 풀숲으로 사라지자 하얀 노인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죠.

“흥. 프라이드치킨 한 마리도 안 나오겠네.”

홈스와 왓슨은 하얀 노인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사라지더군요.

신기하게도 괌에는 정말 닭이 많았습니다. 길거리에선 암탉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호텔 주차장에서는 대여섯 마리로 이뤄진 무리가 초보 운전자들을 괴롭혔어요. 왓슨이 혀를 내둘렀습니다.

“한국에는 길고양이가, 괌에는 길닭이 사네요.”

미국령 괌의 수도인 하갓냐의 골목을 길닭들이 가로지르고 있다. 적색야계 등 야생 닭과 마찬가지로 무리를 이뤄 생활한다. 남종영

괌을 비롯한 태평양 서부 미크로네시아의 섬들, 하와이와 동부의 폴리네시아 섬들에는 길닭(Feral Chicken)이 있어요. 고양이가 외출했다가 길고양이가 된 것처럼, 원래 가축이었던 집닭이 집 밖에서 놀다가 야생 닭이 된 거죠. 우선 길닭은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행동이 빨라요. 농장 밖으로 나가 열심히 돌아다니며 야생의 삶을 살았기 때문인데요. 보통 길닭의 몸무게는 공장식 축산 농장에 사는 육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아요.

생태와 행동 면에서도 야생 닭과 비슷해요. 수탉을 정점으로 여러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풀숲과 덤불에 알을 낳아 번식해요. 괌에서는 뜨거운 낮에는 풀숲에 들어가 쉬고, 이른 아침과 해 질 녘에 나와 벌레를 잡아먹거나 쓰레기통 주변을 어슬렁거려요.

왓슨이 말했어요.

“길닭을 보니까 공장에서 사는 닭이 더 불쌍해지네요. 올해도 폭염으로 많은 닭이 좁은 케이지에서 죽었대요.

괌에는 ‘길닭’이 산다

‘꼬끼오.’

또 하루가 밝았어요. 둘은 호텔에 사는 닭을 직접 만나고 싶어서 호텔 재활용 센터로 향했어요. 길닭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러 자주 들르는 곳이죠. 그런데 재활용 센터 오른쪽 벽에 지팡이가 그려져 있었어요. 뱀이 지팡이를 타고 오르고 있었죠.

골똘히 바라보던 홈스가 손뼉을 치며 말했어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학과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야.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에 가서 닭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던데…, 그렇다면?”

홈스가 지팡이 그림을 똑똑 두드렸더니, 갑자기 ‘윙’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먼지가 일며 숨겨진 문이 열렸어요. 비밀의 방이었죠.

갑자기 퍼드덕 소리가 났어요. 수십 마리의 닭이 날아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홈스와 왓슨의 얼굴을 가격했죠. 둘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요.

“당신들, 치느님과 한패지? 지팡이를 들고 우리를 쫓아다니던 노인 말이오.”

홈스와 왓슨이 정신을 차려보니 십여 마리의 닭이 모여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었죠. 왓슨은 억울했어요.

“우리와는 관계없어요. 우리는 한국에서 온 엉망진창행성조사반입니다. 지구 환경 문제를 조사하고 있어요. 자유로운 길닭을 보고 반가워 찾아왔는데, 손님 대접을 참 극진하게 해주시는군요.”

왓슨이 쏘아붙이자 닭들은 의심을 거두는 듯했어요. 리더로 보이는 닭이 와서 이야기했어요. ‘조너선’이라는 이름의 장닭이었죠.

“한국에서 왔다고? 그럼, 우리에게 협력해줄 수 있겠습니까?”

“도대체 뭔데요?”

“우리는 ‘치킨해방전선’이라는 비밀조직이오. 전세계 좁은 케이지와 울타리에 갇힌 닭들을 해방해 우리 같은 길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전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영국의 노퍽 등에서 적지 않은 닭이 공장식 축산에서 해방돼 길닭으로 살아가고 있소. 하지만 아직 ‘치맥의 모국’ 한국을 해방하지 못했소. 한국에서 폭염 때문에 올해 죽은 닭이 벌써 100만 마리가 넘었소. 기후위기가 심해지는 미래에 닭의 사체는 산처럼 쌓일 것이오. 우리는 한국으로 갑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손이 없어서 농장 문을 열지 못해요.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요.”

홈스와 왓슨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어요.

“고국의 치킨 해방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9월에 괌에서 태풍이 만들어지면 바람을 타고 갈 거요. 당신들도 같이 가지 않겠소?”

미국령 괌의 수도인 하갓냐의 도심의 건물 주변에서 길닭들이 걷고 있다. 길닭은 야생 닭과 마찬가지로 무리를 이뤄 살며 자신이 사는 구역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다. 남종영

치킨해방전선 비밀요원들의 임무

드디어 9월이 되어 괌 동쪽 해상에 태풍이 만들어졌고, 홈스와 왓슨 그리고 닭 비밀요원 815마리가 한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닭들은 날개를 뻗어서, 홈스와 왓슨은 행글라이더에 몸을 실어 바람을 탔지요. 단 이틀 만에 한국 영해에 진입했어요.

“저기 한라산이 보인다!”

왓슨이 소리쳤어요. 하지만 ‘인스타에 올려야지’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려다가 그만 태풍의 바람길에서 이탈해 호수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뒤따라온 홈스도 스마트폰 들고 풍덩! 닭들과 헤어지고 말았어요.

홈스와 왓슨은 기진맥진해 한라산에서 내려갔어요. 작은 읍내에 도착하니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보였죠. 둘은 기어서 가게에 들어갔어요.

“불…고…기버거 세트 주세요.”

직원이 방긋 웃으며 말했어요.

“고객님, 환경에 나쁜 불고기버거를 왜 드시려고요? 치킨버거를 드시는 게 어떨까요? 기후변화대응기금 지원을 받아 80% 할인 행사 중입니다.”

직원 뒤편 엘이디(LED) 화면에서 광고가 나오고 있었어요. 하얀 옷을 입은 노신사가 지팡이를 들고 ‘불고기버거 대신 치킨버거 드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죠. 홈스가 말했어요.

“저 하얀 노인, 어디서 많이 봤는데….”

왓슨이 무릎을 치며 말했어요.

“괌의 길닭들을 쫓던 치느님이잖아요!”

햄버거 가게 직원이 놀라 물었습니다.

“저 할아버지 아세요? 미국 타임이 ‘환경영웅 50인’으로 선정한 신개념 환경운동가잖아요. 저도 저분의 말을 듣고 소고기를 끊고 닭고기만 먹는 치킨테리언이 됐어요. 우리 햄버거 체인과 공동으로 ‘저탄소 치킨버거’를 개발하셨고요.”

소는 1t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499t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 환산량)가 발생합니다. 풀을 소화하면서 온실가스인 메탄이 나오기 때문이죠. 소가 ‘기후악당’ 취급을 받는 이유예요. 반면 닭고기는 온실가스가 57t밖에 나오지 않아요. 작은 공간에 많은 개체를 사육할 수 있는데다(농장을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적게 들겠죠?) 1~3개월에 도살하기 때문에 사료 급여량이 적고(적게 드는 사료, 적게 드는 에너지!) 배설물량도 적을 테니까요.(온실가스의 일종인 아산화질소가 적게 발생!) 햄버거 가게 직원이 말했어요.

“닭고기는 기후위기 시대에 축복받은 단백질이에요. 소고기를 닭고기로 바꾸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 줄일 수 있어요. 미래에도 고기를 계속 먹을 수 있다는 거예요!”

치킨버거를 우걱우걱 쑤셔넣으며, 홈스와 왓슨은 긴 여행을 마쳤죠.

닭 800만 마리 폐사한 잔인한 여름

어느덧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어요. 그해 여름은 악랄했어요. 서울은 관측 사상 최고기온인 39.6도를 찍었고, 닭 812만 마리가 폭염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한 양계장. 한겨레 자료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어떤 거 말입니까, 반장님?”

“요즘 유행한다는 ‘치킨테리언’ 말일세. 닭고기가 소고기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분의 1이라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고. 닭 한 마리에는 고기 1.7㎏이 들어 있어. 반면 소 한 마리에는 고기가 360㎏이나 들어 있고.”

“그래서요?”

“즉 우리가 소고기를 닭고기로 바꿀 경우, 같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소보다 200배 넘는 닭을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야.”

왓슨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왠지 기후와 환경에 좋으면 동물에게도 좋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기후위기와 동물복지의 역설이군요.”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 낯익은 뉴스가 흘러나왔어요. 한강변 서울숲에 기자가 나가 있었죠.

“이곳 서울숲은 물론 부산, 대전, 전주 등 도심 길거리와 공원에서 닭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찰이 길거리 닭을 포획하려 하자 일부 주민은 ‘자유를 빼앗지 말라’며 저지하기도 했는데요. 이들은 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며 신기한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자신의 집 주변에 모이를 놔두는 사람들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기후위기와 동물복지의 역설

그런데 기자 옆에 환경운동가 치느님이 서 있는 거예요. 기자가 마이크를 넘기자 그가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했어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길닭들을 고기로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자연에서 큰 유기농 닭이라서 영양가도 높고 동물복지에도 좋습니다. 제가 이미 길닭이 다수 서식하는 괌에서 수백 마리를 포획해 시식한 결과….”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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