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광 번역가]
음악을 좋아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존중받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렇지만 금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멸의 음악가'로 평가받는 그지만, 애정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 약속을 한 적도 있고, 심지어 사생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히 사후 그의 비밀 서랍에서 발견된, 익명의 여인을 향해 썼으나 발송하지 않고 숨겨두었던 편지의 주인공, 일명 ‘불멸의 연인’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수신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200년이 흐른 지금도 논란이 분분하다.

베토벤의 많은 연인들은 대부분 피아노 제자였는데,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눈이 맞는 경우가 허다했다. 베토벤의 음악만큼이나 그의 사랑도 열정적이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비극으로 끝났다. 애달픈 연애사는 그의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아름다운 작품 상당수가 그의 연인들에게 헌정되었다.
베토벤이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한마디로 '눈이 엄청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깊이 사귄 여자들 대부분은 자신과 신분이 다른 귀족이거나 결혼한 여자였거나, 또는 자기보다 열 몇 살 이상 어린 여자였다.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던 베토벤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교양 없는 여자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래서 여염집 여자들과는 진지하게 사귀지 않았다. 여성들도 처음에는 그의 천재성과 순수함에 끌렸으나 혼담이 오가는 중 신분 차이로 인한 가문의 반대, 나이 차와 경제력, 성격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결혼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불멸의 연인’은 누구인가?
베토벤은 1812년 7월 6/7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연인에게 뜨겁고 절절한 사랑을 담은 편지 세 통을 남겼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건 몰입이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난 오직 당신과만 온전히 살 수 있을 뿐, 당신 없이는 결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 이런 깊은 슬픔이 우리 사이에 있어야만 하나요?...아, 우리의 마음은 서로를 그리워하는데 — 운명도 우리 사랑을 이루어 줄 수 없을까요?”
이 열정적인 편지는 발견된 후에도 수취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많은 학자들이 여러 후보를 추측해 왔다.
베토벤은 사랑을 운명과 맞서는 힘으로 여겼지만 실현 불가능한 상황 때문에 고통받았다. “영원히 그대의, 영원히 나의, 영원히 우리의”라는 구절은 베토벤의 사랑관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에게 사랑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상호 융합이다.
사랑의 좌절은 오히려 베토벤의 음악 속에서 보편적 형식(교향곡·소나타·합창)으로 승화되어, 개인적 체험이 인류의 공명을 얻게 된다. “오!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나요? 그대의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하면서도 가장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었소. 오늘도 어제도 얼마나 뜨거운 열망 속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나요?”
‘불멸의 연인’과의 사랑 역시 현실적 제약 때문에 실현 불가능했다. 사랑의 좌절은 음악 속에서만 영속성을 얻었을 뿐이었다.


가까운 친구 겸 지지자, 안토니 브렌타노
‘불멸의 연인’의 유력한 후보 중 한 사람은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 1780∼1869)라는 여성이다. 1798년 그녀는 부유한 상인 프란츠 브렌타노(1765∼1878)와 결혼했다. 그녀는 낭만주의 작가 클레멘스 브렌타노와 베티나 폰 아르님의 배다른 남매였다.
안토니 브렌타노는 비교적 어린 나이인 18세에 아버지의 주선으로 15세 연상의 부유한 상인 프란츠 브렌타노와 결혼해 프랑크푸르트에 정착했다. 그녀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지만, 베토벤과 깊은 감정을 나눴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음악학자 메이너드 솔로몬은 1977년에 나온 베토벤 전기에서 안토니 브렌타노를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편지의 수신자라고 추정했다. 그는 수많은 논거를 제시하면서 브렌타노와 베토벤이 1812년 여름에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1812년에 베토벤의 가까운 친구이자 정신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베토벤의 삶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여러 편지와 그 당시의 여러 기록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에 강한 유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은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고, 그녀도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제약과 그녀의 결혼 등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은 공개적으로 사랑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안토니 브렌타노는 베토벤의 작품 ‘디아벨리 변주곡’을 헌정받은 이로도 유명하다. 이 변주곡은 베토벤이 1819년에 작곡한 피아노 작품으로, 당시 베토벤이 브렌타노에게 느꼈던 감정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브렌타노 부부의 딸에게는 피아노 소나타 30번과 피아노 삼중주곡에서 피아노 부분을 쉽게 편곡한 알레그레토 악장을 헌정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결국 결혼하지 못했다. 베토벤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속에 점점 고립되어 갔고, 안토니는 베토벤을 지지했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과 당시 사회적 제약이라는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요제피네 브룬스비크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또 다른 후보로 헝가리 귀족 가문 출신인 요제피네 브룬스비크(Josephine Brunswick, 1779∼1821)가 있다. 그녀도 베토벤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이지만, 요제피네의 가족은 신분이 낮은 음악가와의 결혼을 반대했다. 결국 요제피네는 가문의 뜻에 따라 귀족과 결혼했으나 남편의 사후에 베토벤과 다시 가까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기 사랑의 긴장은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피아노 협주곡 4·5번 같은 작품 속의 격정과 내적 투쟁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 많다.

그녀에게 보낸 최소 15통의 연애편지에서 베토벤은 그녀를 ‘오직 하나뿐인 사랑’이라 부르며, ‘영원히 헌신’하고 ‘끝까지 충실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런 점에서 브룬스비크는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에게’ 편지에서 언급된 여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연구자들이 그녀를 베토벤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한다.
베토벤은 훗날 요제피네에 대한 사랑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했다. 그에 대해 ‘열정적인 감정’을 가졌지만 그녀는 훨씬 나이가 많은 요제프 폰 다임 백작(1752년생)과 정략 결혼하게 됐다. 베토벤은 요제피네의 피아노 교사로서 왕래를 계속하며 다임 백작 가문의 단골 방문객이 되었다.
베토벤은 이 당시 극도의 서정적인 피아노 독주곡 ‘안단테 파보리Andante favori’를 작곡하기도 했다. 남아 있는 15통의 편지들에서 두 사람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지만, 귀족이 아닌 평민과 혼인할 경우, 그녀는 귀족 신분인 자녀들에 대한 후견권을 잃기 때문에 결혼에 나서지 못했다.
남편 사후에 사랑과 집안 분위기 사이에서 번민하던 요제피네는 결국 베토벤과의 결혼을 단념했고, 두 아들의 교육을 맡았던 에스토니아 출신의 크리스토프 폰 슈타켈베르크(Christoph von Stackelberg, 1777∼1841) 남작에게 의지하다가 연애 관계에 빠져든다. 두 사람의 속도위반 사실이 확인되자 1810년 2월 급하게 결혼이 성사된다.
그런데 베토벤이 프라하를 거쳐 테플리츠로 여행을 떠난 1812년 7월 3일, 그곳에서 그는 이후 ‘불멸의 연인’으로 불리는 여인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1813년 4월 셋째 딸 미노나가 태어난 직후 슈타켈베르크 남작은 갑자기 요제피네의 곁을 떠나는데, 그 이유는 확실치 않지만 미노나가 자기 딸이 아닐 것이라 의심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미노나는 슈타켈베르크 남작의 딸이 아니라 요제피네와 베토벤의 사생아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1816년 여름 요제피네와 베토벤이 바덴에 체류할 때에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그들은 이 만남을 미리 계획했을 가능성도 있다. 흥미롭게도, 1816년 8월 베토벤은 일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P–t로 가는 것이 아니라 P.와 함께–그것을 정리하는 최상의 방법을 논의하기.” 이 수수께끼 같은 기록은 요제피네와 베토벤 사이에 특별한 계획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불멸의 연인의 실제 수신인이 누구든 간에 베토벤의 인생에서 ‘진정한 불멸의 연인’을 딱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일 것이다. 요제피네야말로 베토벤이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도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를 ‘불멸의 연인’으로 설정한다.
줄리에타 귀차르디...'월광 소나타'의 주인공?
세번째 후보는 베토벤의 젊은 시절에 제자였던 줄리에타 귀차르디(Giulietta Guicciardi, 1784∼1856)다. 그녀를 사랑해 ‘월광 소나타’로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14번을 헌정하기도 했다.
1801년 말, 베토벤은 귀차르디의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는데, 17살인 그녀에게 이미 푹 빠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귀차르디는 베토벤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베토벤이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즐겼으며, 또 이걸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1801년 11월 16일, 베토벤은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난 2년 동안 자신의 삶이 무척 황량하고 슬펐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달콤하고 매혹적인 소녀로 인해 다시 조금 더 즐거워졌다고 썼다. 불행히도 이 사랑도 신분이 달라 결혼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귀차르디는 집안의 반대로 베토벤과의 연애 관계가 끝나자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자 작곡가인 폰 갈렌베르크(Wenzel von Gallenberg) 백작과 결혼했다. 베토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결혼에 당연히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베토벤은 이 시기 차츰 청각 장애가 심해져, 1802년에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기도 했는데, 이런 배경에는 귀차르디와의 연애가 난항을 겪는 것에 대한 좌절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테레제 말파티, '엘리제를 위하여'의 실제 주인공
베토벤이 사랑했던 여성 중 또 한 명으로 테레제 말파티(Therese Malfatti)도 있다. 테레제 폰 드로스디크 남작 부인(Therese von Droßdik, 1792∼1851)이 된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음악가이자 베토벤의 절친한 친구였다. 베토벤이 그녀에게 청혼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녀의 가족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베토벤이 귓병과 각종 질병 때문에 괴로워하던 1809년, 아름다운 소녀 테레제 말파티가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면서 둘은 인연을 맺게 된다. 당시 테레제는 17세였고, 베토벤은 40세였다. 그해 말부터 둘은 본격적으로 사귀게 된다. 하지만 신분 차이와 그보다 더 심각한 나이 차이, 그리고 베토벤의 귓병 때문에 그녀의 가족들이 반대했다. 1810년 5월, 베토벤은 청혼했지만, 테레제는 오스트리아 귀족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거절한다. 이때 베토벤은 테레제에게 편지를 쓴다.
“이제 안녕히 계세요, 테레제. 이 생애에 선하고 아름다운 일들만 있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더 밝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 나를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당신의 헌신적인 하인이자 친구인 베토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 편지는 사실상 이별을 고하는 내용이다. 베토벤의 청혼 여부와는 별개로, 사귄 지 몇 달 만에 이 같은 서신을 보낸 것을 보면 베토벤 스스로 나이도 많고 병고에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가 어린 테레제와 어울리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1810년 4월 27일에 테레제에게 곡 하나를 헌정하는데,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다.
사랑의 좌절을 넘어 보편적 형제애로
이처럼 베토벤은 여러 차례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 차이와 가문의 반대, 자신의 성격과 고집,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청각 장애로 인해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다. 귀족 사회의 엄격한 신분 질서, 청력 상실로 인한 고통, 격정적인 성격 등은 그의 사랑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후기 작품들을 통해 사랑을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아가페적·보편적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여성과의 사랑은 베토벤에게 단순한 연애 감정이 아니라, 창작의 가장 깊은 동력이었고, 개인적 고통을 보편적 예술 언어로 승화시키는 원천이었다.
특히 교향곡 9번 ‘합창’으로 개인적 열정과 사랑의 좌절을 넘어, 인류 전체를 향한 ‘형제애’를 확장시킨다. ‘환희의 송가’는 그 정점으로, 여성과의 사랑의 상실이 오히려 더 넓은 보편적 사랑과 인류애, 인류 공동체 전체의 구원과 화해의 힘으로 변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베토벤의 사랑과 열정은 비극적이고 신비로운 정서가 강하게 흐르는 후기 피아노 소나타, 현악사중주, ‘장엄 미사’ 등과 같은 아름다운 선율 속에 녹아들었다. 베토벤 자신의 내적 고독과 숭고한 사랑이 녹아져 있는 이 곡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감동을 주고 있다.
※ 홍성광은 서울대 독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독문학박사로, 독일 문학 및 철학 관련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독일 명작 기행』, 『글 읽기와 길 잃기』, 역서로 루카치의 『영혼과 형식』,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 니체의 『비극의 탄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토마스 만의 정치 에세이 『예술과 정치』, 『마의 산』(상·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상·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젊은 베르터의 고뇌』, 실러의 『도적들』,『간계와 사랑·빌헬름 텔』, 헤세의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 『싯다르타』, 카프카의 『성』,『소송』,『변신 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야스퍼스의 『정신병리학총론』(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