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조화를 설계하는 리더

2026. 5. 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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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리더십은 갈등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예술이다."

오페라를 보다 보면 무대 위의 가장 큰 긴장은 언제나 갈등에서 시작되지만, 그 갈등을 끝까지 지탱하는 힘은 의외로 신뢰와 일관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성악가가 등장해도, 아무리 화려한 무대가 펼쳐져도, 작품 전체가 하나의 방향을 향하지 못하면 감동은 완성되지 않는다. 오페라는 서로 다른 음색과 리듬, 호흡과 감정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바로 그 점에서 리더십의 본질과 닮아 있다.

무대에는 늘 다양한 역할이 공존한다. 지휘자는 전체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연출가는 장면의 의미를 설계해야 하며, 성악가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밀어 넣어야 한다. 합창과 오케스트라는 그 모든 요소를 떠받치며 장면의 밀도를 높인다. 누구 하나만 돋보여서는 오페라가 완성되지 않는다. 각각의 역할이 제자리를 지킬 때 비로소 작품은 살아 움직인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모든 것을 직접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과 관점을 하나의 비전으로 묶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명보다 일관성이다. 구성원은 리더가 어떤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태도를 반복해 왔는지를 기억한다.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 갈등 앞에서 감정을 앞세우지 않는 절제, 약속을 지키는 성실함이 쌓일 때 신뢰는 형성된다. 오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고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무대를 지탱하는 호흡이고, 한 장면의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 전체를 통과하는 중심이다.

또 하나 오페라가 가르쳐주는 것은 타이밍이다. 모든 순간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침묵이 필요하고, 어떤 순간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단호한 결단이 요구된다. 음악이 쉼표를 통해 더 깊은 울림을 얻듯, 리더십도 멈춤과 여백을 통해 방향을 분명하게 만든다. 성급한 반응은 오해를 키우지만, 정확한 타이밍의 한마디는 조직을 다시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

결국 오페라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억지로 같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차이를 살리되, 그 차이가 충돌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다. 좋은 리더 역시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개성과 감정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성이 결국 하나의 성과로 이어지도록 길을 내야 한다. 갈등을 없애는 리더가 아니라, 갈등을 품고도 방향을 잃지 않는 리더가 필요하다.

오페라는 완벽한 사람이 완벽한 예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 가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우리는 리더십의 핵심을 배운다. 중심을 지키는 힘,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엮는 능력, 그리고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는 신뢰. 그것이 바로 오페라가 오늘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깊은 리더십의 교훈이다.

[박혜진 국립오페라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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