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 내용 제출말라” 지침… 사실상 회계공개 조직적 거부 [노조 ‘깜깜이 회계’]

권구성 2023. 3. 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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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 63% 회계자료 미제출
한국노총 81% 제출·미가맹노조 82%
민노총만 10곳 중 7곳 자료 제출 불응
전공노 “공개할 것만 하라 지침 받아”
고용부, 4월 중 현장조사 나서기로
당정, 회계자료 공시 의무화 법 개정
노조 회계감시 법제화 압박 수위 높여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강화에 나선 정부가 회계 서류 비치 여부를 보고하도록 지시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특정 노조를 중심으로 대상 노조 10곳 중 3곳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는 공공성이 강한 일부 공무원노조까지 자료 제출 거부에 가세하며 조합원의 알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와 현장조사에 나서는 한편, 노조의 회계 공시 의무 법제화를 추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 연합뉴스
◆공무원노조도 자료 제출 거부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까지 대상 노조 319곳 중 86곳은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자료 제출 거부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달 15일까지의 자료 제출 시한에는 양대 노총의 자료 제출비율이 20∼30% 수준으로 모두 낮았는데, 시정기간을 거치면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상 노조의 81.5%가 자료 제출을 마쳤다. 이는 미가맹 노조의 자료 제출비율인 82.1%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대상 노조의 37.1%가 자료를 제출하는 데 그쳤다. 한국노총 역시 제출비율은 크게 올랐지만, 대상 노조가 173곳으로 가장 많이 속해 있어 여전히 29곳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부는 “양대 노총이 지침을 통해 전면적으로 제출을 거부하도록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체 대상 노조 319곳 가운데 79곳은 공무원·교원노조인데, 이들 중 일부도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한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속지는 내지 않고) 표지만 제출했다”며 “민주노총에서 공개할 건 공개하되 공개하지 않아도 될 건 공개하지 말라는 식으로 방침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앞으로도 요구할 경우 소송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교통공사노동조합의 관계자는 “이번에도 제출하지 않았다”면서 “저번에 표지만 제출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면서 “저번에 미제출한 것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안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노조의 관계자는 “자료를 제출하되 민감한 내용은 내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며 “정부가 조치에 나선다면 저희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시정기한 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곳으로 알려진 국가철도공단노동조합, 부산공무원노동조합은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1차 제출 당시 미흡한 부분이 있어 시정기간에 보완해 자료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 과태료·현장조사 방침

정부는 당장 15일부터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7조는 “노조는 행정 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같은 법 제96조는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고용부는 이 같은 규정에 따라 15일 5개 노조를 시작으로 4월 초까지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사전 통지 이후에는 10일간의 의견 제출 기간을 거쳐 해당 노조에 최종적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음 달 중순부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한 현장조사도 벌인다. 현장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 기피하는 노조에는 별도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만약 노조 측이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는 여당과 노조의 회계 자료 공시를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앞서 ‘불합리한 노동 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가 내놓은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조합원 절반 이상의 요구가 있거나, 노조 내 횡령·배임 등의 행위가 발생하면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정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노조 사무실에 회계 관련 서류를 비치·보존하는 것은 조합원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노조의 기본 책무”라며 “법 위반 사항에 대해 엄정 대응하는 한편 현행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권구성·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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