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환갑잔치 대신 가족여행을 떠나는 집이 많습니다. 자식과 손주들이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낯선 곳에서 추억을 쌓는 일은 부모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모가 그 여행 경비를 기꺼이 자기 지갑에서 꺼냅니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최영자 씨는 올해 환갑을 맞았습니다. 남편 이정수 씨와 함께 30년 동안 일산 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했습니다. 새벽 세 시면 일어나 쌀을 불리고 떡을 쪘고, 그렇게 번 돈으로 두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 장가를 들였습니다.
떡집 일은 쉴 날이 없었습니다. 명절 대목이면 사흘 밤을 새워 송편을 빚었고, 손목은 늘 파스로 감겨 있었습니다. 부부는 결혼하고 30년 동안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 보지 못했습니다. 영자 씨는 그래서 환갑만큼은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고 싶었습니다.
두 며느리는 모두 직장을 다녔습니다. 큰며느리 지현이는 은행원이었고, 작은며느리 소라는 학원 강사였습니다. 명절이면 두 며느리는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부엌일도 거들었습니다. 영자 씨는 며느리 복이 있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명절이면 영자 씨는 손주들 용돈과 며느리들 봉투를 따로 챙겼습니다. 떡집에서 갓 뽑은 가래떡과 인절미를 상자째 싸 주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며느리들은 그때마다 "어머님 최고예요" 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환갑을 석 달 앞두고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환갑 기념으로 다 같이 베트남 다낭에 가요. 비용은 저희가 나눠서 낼게요." 영자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너희 애들 키우느라 힘든데 무슨 돈이냐. 엄마 아빠가 다 낼 테니 몸만 와라."
그렇게 아들 내외 두 집과 손주 넷, 부부까지 열 명의 여행 경비 800만 원을 영자 씨 부부가 모두 냈습니다. 떡집을 정리하고 받은 돈 중 일부였습니다. 영자 씨는 리조트도 가장 좋은 곳으로 예약했습니다. 손주들이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 모습을 생각하니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여행 전날 밤, 영자 씨는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 타 보는 비행기였습니다. 남편은 새로 산 등산 모자를 몇 번이나 써 보며 웃었습니다.

출발하는 날 공항에서 영자 씨는 손주들과 함께 사진을 몇 장이고 찍었습니다. 아껴 두었던 정장을 꺼내 입고, 오래전 시장에서 산 꽃무늬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평생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이라 촌스러워 보일까 봐 며칠 동안 옷을 고른 것이었습니다.

다낭의 첫날은 꿈같았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리조트에서 손주들은 수영장을 떠날 줄 몰랐고, 아들들은 아버지와 맥주잔을 기울였습니다. 영자 씨는 가족사진을 찍으며 몇 번이고 웃었습니다.
손주들은 할머니 손을 잡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영자 씨는 신발을 벗고 처음으로 외국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았습니다. 차가운 물이 발목을 간지럽히자 영자 씨는 소녀처럼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저녁, 식당에서 영자 씨가 큰며느리의 휴대전화를 잠깐 빌렸을 때였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화면을 켜는 순간, 위쪽에 단톡방 알림이 연달아 떠올랐습니다. 두 며느리만 있는 대화방이었습니다.
[시부모님 돈으로 오니까 좋긴 한데, 하루 종일 모시려니 진짜 피곤하다.]
[어머님 옷 좀 봐. 사진 찍을 때마다 창피해.]
[참아. 칠순 때는 유럽 가자고 슬쩍 말씀드리자. 어차피 떡집 판 돈 있잖아.]

영자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영자 씨는 아무 말 없이 휴대전화를 며느리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저녁 식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리조트 방에서 영자 씨는 남편에게 단톡방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남편 정수 씨는 한참 동안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가 30년 동안 떡 쪄서 번 돈이오. 그 돈으로 자식들 즐겁게 해 주려던 건데, 우리가 창피한 사람이 됐구려."
영자 씨는 그 말에 눈물이 터졌습니다. 며칠 동안 고르고 골라 두른 꽃무늬 스카프가 며느리들 눈에는 창피한 옷이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30년 동안 떡을 찌느라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못한 세월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영자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녘 리조트 테라스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화를 내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남은 여행이 모두에게 지옥이 될 것 같았습니다. 영자 씨는 조용히 마음을 정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영자 씨는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엄마 아빠 둘이서 따로 다닐란다. 너희는 애들 데리고 편하게 놀아라." 며느리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내심 반가운 눈치였습니다.
부부는 그날 처음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호이안의 오래된 골목을 걸으며 등불을 구경하고, 강가 작은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30년 만에 처음 가져 보는 둘만의 여행이었습니다.
강가 식당에 앉아 쌀국수를 먹던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진작 이렇게 둘이 다닐 걸 그랬소. 자식들 챙기느라 정작 당신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려." 영자 씨는 그 말에 오랜만에 마음이 풀렸습니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영자 씨는 온 가족을 식탁에 모았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번 여행은 엄마 아빠가 너희와 손주들 웃는 모습 보려고 준비한 거다. 그 마음은 변함없다. 그런데 엄마가 며칠 전 큰애 휴대전화에서 너희 대화를 봤다. 하루 종일 우리를 모시는 게 피곤했다니 미안하구나."

식탁이 얼어붙었습니다. 두 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영자 씨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칠순 때 유럽 이야기도 봤다. 걱정하지 마라. 칠순 여행은 없다. 떡집 판 돈은 엄마 아빠 노후 자금이다. 앞으로 우리 돈으로 너희를 모시고 다니는 일은 없을 거다. 대신 너희도 우리를 모시느라 피곤할 일은 없을 거다."
두 아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큰아들이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저희가 정말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큰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님, 철없이 굴어서 정말 죄송해요" 하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영자 씨는 며느리의 사과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영자 씨 부부는 칠순 때 쓰려고 모아 둔 돈으로 둘만의 남해안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큰아들은 엄마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엄마, 이번 여행비는 저희가 갚을게요. 매달 조금씩이라도요." 영자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갚지 마라. 대신 앞으로 엄마 아빠를 짐이 아니라 가족으로 대해 다오."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부부는 집 근처 국숫집에서 잔치국수 두 그릇을 시켰습니다. 멸치 육수에 호박과 김 가루를 얹은 소박한 국수였습니다. 정수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다낭 리조트 밥보다 이게 훨씬 맛있소." 영자 씨도 웃으며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었습니다.
한 달 뒤, 두 며느리가 함께 영자 씨 집을 찾아왔습니다. 손에는 직접 고른 고운 외투 한 벌이 들려 있었습니다. "어머님, 사진 찍을 때 입으시라고요. 그동안 마음 상하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영자 씨는 외투를 받아 들고 처음으로 며느리들 앞에서 크게 웃었습니다.
고전 소설 『심청전』의 심청은 앞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 자신을 바칩니다. 효도는 거창한 선물이나 형식이 아니라 부모를 향한 진심에서 시작됩니다. 부모의 정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아무리 좋은 여행도 의미를 잃습니다.

자식을 위해 쓰는 돈은 부모의 기쁨이지만, 그 정성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 노후 자금은 내 삶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부모가 스스로를 귀하게 여길 때 자식도 부모를 귀하게 대합니다.
올가을 영자 씨 부부는 둘만의 남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독일마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쪽빛으로 반짝였고, 다랭이논 너머로 붉은 노을이 천천히 번져 갔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출처 : '심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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