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줄어든다. 직장에서 만났던 사람은 퇴직과 함께 멀어지고 오래된 친구도 각자의 삶 때문에 자주 만나기 어려워진다. 가족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삶과 죽음, 사랑을 오래 사유했던 이어령 선생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노년에 중요한 것은 관계의 이름보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느냐에 가깝다는 생각에 닿게 된다.

3위. 내 말을 고치려 하기보다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나이가 들면 조언보다 이해가 필요한 순간이 많아진다. 자식에게 이야기하면 걱정할까 봐 말하지 못하고 배우자에게는 너무 오래 함께 살아 오히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생긴다. 이럴 때 "그건 네가 잘못했네"라고 판단하기 전에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은 귀하다.
이어령 선생이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 삶과 죽음에 관한 대화를 이어갔던 것처럼 인간은 결국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위. 내가 약해졌을 때도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
젊을 때의 관계에는 직함과 능력, 돈과 사회적 위치가 끼어들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직함이 없어지고 몸이 약해지고 예전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때도 이전과 똑같이 전화하고 밥을 먹으며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진짜 곁에 남은 사람이다. 노년에는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보다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도 찾아오는 사람이 훨씬 귀해진다.

1위.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
이어령 선생의 사유에는 인간이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시선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사랑 역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해 움직일 때 비로소 관계가 된다.
노년에는 이 차이가 더욱 커진다. "왜 자식은 먼저 전화하지 않을까.", "왜 친구는 나를 찾지 않을까.", "왜 저 사람은 내 마음을 몰라줄까."
모두가 상대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반대로 별일 없는 날 먼저 전화하고, 서먹해졌을 때 먼저 말을 걸고, 미안한 일이 있으면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늙어서 꼭 곁에 둘 사람은 오래된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배우자라는 자리를 가진 사람도 아니다. 내가 힘들 때 먼저 손을 내밀고, 동시에 나 역시 먼저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이어령 선생은 생의 마지막까지 죽음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과 용서, 행복과 삶을 계속 이야기했다. 죽음을 가까이 바라볼수록 결국 중요해지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었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의 인간관계에서는 사람 숫자보다 관계의 온도가 중요하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괜찮고 오랜 친구가 아니어도 괜찮다. 서로의 약해진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고 아무런 이익이 없어도 안부를 물으며 한쪽만 기다리지 않고 서로 손을 내밀 수 있으면 된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아도 서로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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