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트도 못 대는 꼴찌?
스코어가 2-1이다. 겨우 1점 차이다.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계속 두드리지만, 꿈쩍도 않는다. (3일 인천 문학구장, 롯데 자이언츠 – SSG 랜더스)
8회가 시작된다. 뒤지는 원정 팀의 공격이다. 8번 전민재가 문을 연다. 우중간 안타로 1루에 도착했다.
작전은 뻔하다. 너무나 예상 가능하다. 100% 보내기 번트다. 다음이 9번(한태양) 타순인 탓이다.
상대도 모를 리 없다. 3루수가 거세게 압박한다. 전진 수비 정도가 아니다. 최정은 거의 타자 앞까지 달려든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다. 초구 번트가 여의치 않다. 파울이다. 그렇다고 바꿀 수는 없다. 무조건 2루까지는 보내야 한다.
결국 사고가 일어난다. 2구째다. 번트가 빗맞았다. 포수 뒤쪽으로 높이 뜬다. 파울 플라이다. 허무하게 아웃 1개가 올라간다.
감독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관중석에서는 한숨이 나온다.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하다.
‘꼴데야, 잘하는 게 뭐니?’
1번 장두성마저 돌아선다. 헛스윙 삼진이다. 투 아웃. 전민재는 1루에 꽁꽁 묶였다. 8회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간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난다. 2번 윤동희가 의외로 잘 버틴다. 카운트 0-2로 출발했다. 그런데 거듭된 유인구를 다 참아낸다. 3연속 슬라이더였다. 그걸 이 악물고 견뎠다. 결국 볼넷을 얻어냈다.
2사 1, 2루로 바뀐다. 3루 쪽 관중석이 슬슬 끓어오른다. 무엇보다 타자가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3번 빅터 레이예스다.

번트 실패 뒤 역전 3점포
아니나 다를까.
4구째다. 결정타가 터진다. 카운트는 1-2로 투수 편이다. 여기서 회심의 승부구가 들어간다. 140km짜리 투심이다. 먼 쪽으로 휘어졌다. 높이도 좋다. 땅에 닿을 정도로 낮은 코스다. 그야말로 완벽한 투구다.
사실은 타자가 당해야 맞다. 휘둘러봐야 헛스윙이 되는 게 정상이다. 그만큼 완벽한 공이다.
그런데 이걸 따라붙는다. 분명히 무너진 타격폼이다. 그 스윙으로 컨택에 성공한다. 아니, 맞힌 정도가 아니다. 타구가 계속 살아간다. 비거리를 점점 늘린다. 그러더니 담장 밖으로 사라진다.
비거리 120미터짜리 아치다. 스코어 1-2는 단번에 4-2로 바뀐다. 역전 결승 3점 홈런이다.
당사자도 깜짝 놀란다.
“동점만 되면 연장으로 갈 확률이 생기니까, 최대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 그런데 운이 좋아 홈런이 됐다. 사실 치는 순간에는 너무 낮게 떠서 2루타 정도로 생각했다.” (빅터 레이예스)
덕분에 주말 3연전을 싹쓸이했다. 시즌 첫 4연승이다. 랜더스전 스윕은 3년 만이다. 2023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인천 원정으로 따지면 더 길다. 날짜로 3000일이 넘는다.
바닥에 있던 팀이 일어섰다. 8위로 올라섰다.
커튼 감독의 얼굴도 활짝 폈다. 특히나 보내기(번트) 실패 때는 노기가 역력했다. 눈에서 불꽃이 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모처럼 환한 표정이 된다. 점잖고, 세련된 멘트도 남겼다. 승장 인터뷰 내용이다.
“선수단 전원이 집중력을 갖고 열심히 해줘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모두가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홈경기 못지않은 응원으로 힘을 실어주신 팬들께 감사한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김태형 감독)

번트 실패→빅 이닝의 역설
번트 실패→빅 이닝. 이런 이상한 현상은 처음이 아니다.
바로 이틀 전이다. 지난 1일 시리즈 첫 경기 때도 나타났다. 스코어 6-6이다. 연장이 필요했다. 10회 초 공격 때다.
선두 타자는 윤동희다. 볼넷으로 출루한다. 다음 손성빈 때 사인이 나온다. 예의 보내기 작전이다.
그런데 1구, 2구 모두 번트에 실패한다. 배트를 내밀었지만, 파울 라인을 넘지 못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쳐야 했다. 여기서 깨끗한 우전 안타가 나왔다. 무사 1, 2루로 기회가 확장된다.
다음은 9번 이호준 차례다. 역시 100% 희생 번트 사인이다. 하지만 초구에 헛손질이 나왔다. 아예 공을 맞히지 못한 것이다.
그때였다. 3루 쪽 덕아웃에 움직임이 있다. “칫~”하는 음향도 들린다. 이건 야구인들만 아는 신호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다.
중계 화면에는 원정 팀 감독이 클로즈업된다. 눈을 부릅뜬다. 번트 실패가 못마땅한 얼굴이다. 그리고 타자를 향해 뭔가를 얘기한다. 손동작과 입모양이 읽힌다. 대략 이런 의사 전달로 추측된다.
튼동 “자신 없어? 바꿔줘?”
이호준 “… …” 말은 없다. 그러나 고개를 살짝 젓는다.
와중에 문제가 생겼다. 피치 클락을 넘긴 것이다. 스트라이크 1개가 추가된다. 카운트가 0-2로 바뀌며, 번트 기회가 사라졌다.
항의도 해봤다. 그러나 소용없다. 결국 이호준은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 전민재까지 내야 플라이로 아웃됐다. 1, 2루 기회는 그대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 불길이 타오른다. 장두성, 박승욱, 레이예스의 연속 안타가 폭발했다. 4득점, 빅 이닝에 성공한 것이다. (최종 스코어 10-7)

박세웅에게도 “바꿀까? 공 내놔”
돌려서 말하지 않는다. 직설적이고, 즉각적이다. 그게 ‘튼동식’ 소통이고, 리더십이다.
못마땅한 플레이는 그냥 두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몇 차례 연출됐던 ‘덕아웃 앞 열중쉬어 자세’가 그 상징적인 장면이다.
타석에 있는 타자도, 마운드에 있는 투수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일이다. 그러니까 2024년 8월이다. 수원 KT 전이었다. 선발 박세웅이 초반부터 허덕인다. 볼넷을 남발하며 위기를 자초한다.
2회였다. 보고만 있을 튼동이 아니다. 자리를 박차고 뚜벅뚜벅 마운드로 걸어간다. 그리고는 박세웅의 공을 뺏으려 한다. 입모양과 동작으로 추정하는 대화는 이런 내용이다.
튼동 “바꿀까? 공 내놔.”
세웅 “아닙니다. 던지겠습니다.”
그러자 급기야 ‘따끔한 질책’이 발사된다.
튼동 “뭐 하는 거야, 인마. 정신 차리고 똑바로 던져야 될 거 아냐?”
그러고는 끝이다. 길게 끌지 않고 내려간다. (박세웅은 이 경기에서 4이닝 8실점했다.)
그러니까 이번은 속편인 셈이다. 등장인물이 박세웅에서 이호준으로 바뀐 것이다. 즉, “바꿀까? 공 내놔”의 타자(번트) 버전이 “자신 없어? 바꿔줘?”라는 얘기다.
다만 이호준은 그 뒤로 2게임 연속 선발에서 제외됐다.

훈기 도는 ‘5월 롯데’
아무튼.
참 이상한 일이다. 번트 실패가 오히려 득이 된다. 적어도 이번 연승 중에는 그렇다. 그다음에 연달아 적시타가 이어진다. 결정적인 홈런이 터진다. 그래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다.
덕분에 반전이 이뤄졌다. 불과 얼마 전이다. 응원 가지 말자는 팬들도 생겼다. 심지어 ‘불매운동’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감독을 향한 비판도 거셌다. 가장 욕 많이 먹는 사령탑 중 한 명이었다.
비로소 훈기가 돈다. 역전승의 짜릿함도 느껴본다. 이제 5월이다. 아직도 봄 아닌가. 거인이 힘을 내야 하는 계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