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集이다] 한국 건축의 정체성, 마당

고전으로 집 읽기 : 집은 集이다_ 3화

집이란 무엇일까? ‘a0100z’ 성상우 소장이 건축으로서의 집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이웃, 사람과 환경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 우리에게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전을 통해 본질을 묻는다.


Q 마당과 마루의 사전적 어원은?

하기동 ‘on sill’, a0100z, ⓒ노경

먼저 마당의 글자에서 ‘당’은 분명 집을 의미하는 당(堂)일 것이다. 마루의 ‘루’는 다락이나 오른다는 의미의 루(樓)일 것이다. 그렇다면 ‘마’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마당과 마루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마’의 의미에 큰 힌트를 주는 것이 마루와 관련한 단어 중 하나로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아내를 허물없이 이르는 말, ‘마누라’의 어원을 살펴 보면 좋겠다. 사전에서 마누라는 ‘말루하(抹樓下)’또는 ‘마루하(瑪樓下)’가 변한 말이다. 이는 신라시대 왕의 호칭인 마립간에서 유래한 말로 후에는 상감마루하, 상감마마로, 더 내려와서는 군왕뿐 아니라 존귀한 사람의 호칭으로도 쓰였다. 마립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해 보자. 마립간의 ‘간(干)’은 왕을 의미하고 ‘마립’은 ‘머리’, ‘으뜸’이라는 의미와 함께 ‘말뚝’의 신라 방언으로 ‘위계에 따라 계급을 정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즉, 마립간은 ‘왕 중의 왕’, ‘머리 중의 으뜸’으로 풀이되며 최고 통치자라는 뜻으로 왕권이 강해진 것을 나타낸다. 즉, ‘마’는 높고 최고라는 의미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로 공간적인 쓰임에서 본다면 마루는 방과 방의 사이이며 마당은 채와 채 사이의 비워진 비물질적 공간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방과 방 사이, 채와 채 사이처럼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비워진 사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사이’는 관계이며 연결이며 분리의 기능을 가진다.

지난 회 소개한 이우항 작가의 <관계항>이라는 작품을 떠올려보자. 무심한 돌과 곡선의 철판으로 만들어진 장(場). 이것을 관계+항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관계라는 말로 이 작품을 설명하지만, 여기에 항(項)이라는 글자를 덧붙여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비물질의 여백을 물질로 구체화했다. 관계라는 현상(변화)을 위해 항(項:목덜미)이라는 인터페이스(Interface)가 놓인다는 것이다.

즉, 최고라는 의미를 가진 마루와 마당은 물질이나 존재자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최고의 뜻으로 본다. 그렇다면 ‘최고’는 어떤 의미일까.

이우환 <관계항>, 1978

Q ‘마당’이 가진 최고의 의미는?

마당을 생각하면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같은 초점에 장시간 타임랩스로 찍은 별이 가득한 밤, 온함, 고요함, 그리고 사물은 지워지고 ‘사이’만 남은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의 말년 정물화와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그린 사각형의 <무제(Untitled)>가 생각난다. a0100z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마당의 강렬한 이미지는 드니 빌뇌브가 연출한 영화 <컨텍트(Arrival, 2017)>가 아닐까. 안개인지 연기인지. 인터뷰룸에서 ‘헵타포드’라는 외계인이 손 혹은 발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로 찰나적 순간 도넛 모양의 문자를 만들어내고 서서히 사라진다.

조르지오 모란디 <무제>, 1959(위), 드니 빌뇌브 <컨텍트>, 2017(아래)

a0100z는 이 장면에서 ‘최고의 집, 마당’의 덕목을 생각해본다. 먼저 종이 다른 두 개체, 지구인과 헵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인 사이에서 소통하는 모습이다. 영화 <컨텍트>에서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헵타보드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해석하는 대신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려 한다. 즉 소통은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바탕에서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마당은 ‘소통의 장’이라고 말한다. 마당의 최고의 가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로 모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헵타포드의 문자는 처음과 끝이 연결된 한자 포(包)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비선형문자이다. 이 문자는 방향성이 없고 로고그램(Logogram)과 같은 문자적 사유를 가지면서 또 있다(有) 사라지는(無) 소리 언어의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마당은 사람과 자연환경의 소통의 장이며, 소통은 상관적 차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생성과 있음(有)과 사라짐(無)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근거이다. 결국 마당의 최고 덕목은 사람과 환경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有)의 덕목과 또한 유(有)가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사라짐의 바탕인 무(無)로 요약할 수 있다. 다음은 마당을 유(有)와 무(無)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Q 유(有)의 계열과 무(無)의 계열, 마당!

유(有)의 계열 : 유(有)라는 한자어부터 살펴보자. 有는 값비싼 고기를 손에 쥔 모습의 회의문자로 ‘소유하다’, ‘존재하다’라는 의미다. 有의 계열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자는 家이지 않을까? 가(家)는 집을 의미하는 宀(집 면)과 ‘있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가(猳)의 약자인 豕(시)로 이루어졌다. 일설에는 과거에 집안에서 돼지를 키웠기에 돼지(豕)가 집 안에 있는 것을 형상한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지난날에는 뱀 등 짐승의 위험을 피하려고 다락집을 지어 살았는데 바닥에는 돼지를 치고 사람은 그 위에 살았다는 것이다.

‘家’를 가장 이해하기 쉬운 아래 그림은 잠비아 목동들이 사는 마을을 촬영한 사진이다. 버섯 모양의 집들이 가운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큰 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집 앞에는 나무 울타리가 있어 그곳에 가축을 가두어 두는 형태이다. 말리 도곤족의 주거는 가(家)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형태라 하겠다. 집들은 가족 마당을 둘러싸는 형태로 자리 잡고 있으며 주요 주택과 곡식 창고, 보조 오두막들이 돌담으로 연결된다. 마당은 가족의 중요한 생활공간으로서, 건기에는 부엌이자 작업장이며 가족 소유의 가축우리기도 한다. 마당을 주거가 무리를 지으며 둘러 싸는 것은 생계형 농업경제에 의존하는 사회에서의 보편적인 무리주거 형태이다.

잠비아 목동의 주거 형태(위)과 말리 도곤족의 주거 형태(아래)

(家)에는 단지 집 한 채의 의미보다 공동 작업, 공동 관리의 의미가 보인다. 즉 공동체이며 마을의 의미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이말이 가문(家門)이라는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무(無) 계열 : 무(無)의 의미를 깨달으면 아마 동아시아 개념의 반은 이해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의식적으로 이 단어를 감지해 내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먼저 무(無)의 어원은 갑골문에서 ‘춤추는 모습’을 그린 상형문자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舞(춤출 무)와 같은 뜻이었으나, 이후 ‘없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잠시 빌려 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춤을 춘다’라는 의미를 기억하길 바란다. a0100z는 무(無)라는 글자를 해체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초(艸)+십(卌:많다)+화(灬:불). 글자를 풀어 보면 풀이 많았는데 불에 타서 재로 변했으며 사라졌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없다’라는 말 전에 어떤 물질이 변했으며 기존의 모습이 사라져 없어졌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 어려운 개념을 갓난아기를 업고 있는 엄마가 아기와 함께한 ‘까꿍놀이’에서 배운 것 같다. 아기를 등에 업고 있으면 엄마가 없다.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없던 엄마가 갑자기 ‘까꿍’하고 고개를 뒤로 돌려 나타는데 아기는 이 까꿍놀이에서 ‘없다’와 ‘있다’를 함께 생각한다. ‘없다’가 무존재가 아닌, 있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세상의 변화를 우리는 놀이로 배웠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고차원적인 무 유론(無有論) 교육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다가 사라지는’ 마당의 개념은 어디에서 비롯 되었을까? 먼저 인간 체온 36.5℃를 지켜 주기 위해 사람들의 중심에 불이 있었다. 그 불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그것이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일체감을 가지는 의식으로 이어져간다. 즉 다채로운 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건축학자 젬퍼(Gottfried Semper)는 “큰 화로는 인간 문화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높은 상징으로 건축의 혼이라고 불리는 소통의 공간이 발생하게 만든 요소다”라고 했다.

대보름날 달집태우기.

인디언의 티피, 몽골족의 게르나 칼무크족의 유르트에도 중앙에는 불이 있었고, 여기가 빠져나가도록 만든 구멍이 있었다. 나중에는 연기 구멍의 역할이 마당을 대신한 것이라 본다.

유르트의 내부 모습.

특히 한옥 중 뜰집의 경우가 가장 불과 마당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불을 중심으로 모여 살던 원시적 삶에서 온돌이라는 난방 방식의 발명으로 불이 사라진 곳이 마당으로 변한 것이라고 본다. 마당의 DNA는 불이 가지는 있음(有)과 사라짐(無)이 상호 교차하는 변화의 유전자와 그리고 불로 사람을 함께하게 하는 소통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불의 자리에 마당이 자리했다. ⓒa0100z

마당을 有와 無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 두 개념은 각기 독립적이지 않고 함께 한다. 김형효 선생의 <사유하는 도덕경>에서 그는 “모든 유(有 : 생성, 있음)는 무(無 : 사라지고 없어지는 것)를 전제로 한다. 이미 모든 유의 존재 구조는 무의 사라지는 은적(隱迹 : 자취가 감추어짐)이 주는 의미가 없으면, 우리는 유를 유로서 깨닫지 못한다.” 마당은 노자가 말한 도(道)와 닮았다.
서양의 건축을 흔히 물질적이고 오브제 중심의 건축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한국의 건축은 건물이 중심이 아니라 그 건물로 의해 감싸진 무명(無名 : 특정한 기능의 공간이 아니다)이다. 무형(無形 : 행위에 맞추어 변화 가능한 공간)의 마당은 행위와 각 건물의 존재자를 존재자로 인정하면서 각 상호 간의 관계를 만드는 존재의 공간이며 장소이다.
마당은 경계이다. 경계라면 담이나 벽 같은 선이나 면을 떠올리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익숙하게 들었던 사회적 거리(건강한 관계 짓기를 위한 적절한 거리)의 공간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를 겪으며 우린 새삼스럽게 비물질의 마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근대화되면서 우리 주거에서 가장 큰 변화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목표로 한 아파트 문화를 통해 마당이 사라졌다. 물론 아파트가 수입되기 전인 일제 강점기에서부터 그 전조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왜 마당이 사라지게 되었을까.

Q 다른 문화권에서는 우리의 마당과 유사한 것은 없는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갠지스강 유역의 인도, 그리고 중국의 황하 유역이 공유하는 주거 형태가 ‘내향형 도시주거’인 중정 주택이다. 우리의 뜰집과 닮았다.
가깝게는 중국의 쓰허위엔(四合院 : 사합원)이 있고 일본의 마치야(町屋)이 있다.
쓰허위엔은 말 그대로 4면이 합해 만들어진 집이라는 의미이다. 오래 전 <홍등(1991)>이라는 영화에 자주 등장한 공간이다. 중정을 둘러싸는 네 채의 건물이 배치되는데 남북으로 길게 축을 이루며 담으로 둘러싸인 사각형 구역에 배치되는 형식이다.

영화 <홍등>에서 등장하는 쓰허위엔(위)과 그리스 페리스타일(아래)의 모습.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스미요시 주택(1976) ⓒ후지쓰카 미쓰마사

중국에는 변형된 중정형 주거도 있다. 중국 북부와 북서부 ‘뢰스(Loess, 바람에 의해 운반되어 퇴적된 황갈색이나 담황색의 미세한 모래와 점토)’가 많은 지역에 분포하는 동굴형 주거인데 뢰스를 파내어 중정의 마당을 만들고 그 사면에 동굴식 주거인 방을 배치하는 방식이다. 일본에도 중정형 주택을 닮은 것이 있다. 교토 상인이나 장인이 사는 가로형 도시 주택인 마치야(町屋)는 가로변에 좁게 면하고 긴 형태의 필지에 지어진다. 부지를 다섯 개 영역으로 나누는데 가로변은 ‘미세(店)’라는 상점이 있고 ‘나카노마(中の間)’라는 중간 부분에는 계단이 있다. 상업구역과 주거 구역 사이에는 ‘쯔보니와(坪庭)’라는 중정이 있다. 이 중정에 면해 ‘좌시키(座敷)’라는 집주인의 방이자 응접실이 있다. 그리고 약간의 뒷마당과 창고가 일직선에 놓인다. 중정인 쯔보니와는 빛을 들이고 조망을 위한 관상용 공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안도 다다오의 스미요시 주택이 이 마치야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집이라 보면 좋을 것 같다.

마치야의 구조(출처-교토주택공급공사)

노버트 쉐나우어(Norbert Schoenauer)는 저서 <집>에서 “내향형 중정 주택은 첫째, 가정 생활과 물질 소유라는 두 가지 프라이버시를 이웃으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고, 둘째는 경제적 요소인데, 제한된 토지에서 밀도를 최대한 높이는 방안이었다. 셋째는 중정 주택은 마당에 물을 대고 나무를 심어 쾌적한 미기후를 만들 수 있다. 네 번째 요소는 종교적인 의미로 인간의 이상향이나 야생에서 오아시스의 이미지로 친근감을 주었다. 수 평적인 확장은 제한적이지만, 하늘을 향한 수직적인 확장감은 천상의 신의 세계를 지향하는 공간개념이다.”라고 했다.
유사한 유형으로는 그리스의 페리스타일, 로마의 아트리움, 이슬람 문화권의 사칸(집이라는 뜻으로 평화롭고 고요함을 지니는 내향형 주택)이 있다. 유럽에서 이런 내향적인 중정 주택이 사라진 것은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나타난 중세 시대부터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다음 시간에는 이제 한국의 전통적인 민가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건축가_ 성상우, 오혜정 : a0100z(아:백제) space design

a0100z 는 2004년 성상우와 오혜정이 설립한 디자인 모임이다. 이들은 설립한 이래, ‘집은 집(集, 모이는 곳)이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물질이 구축되는 모임의 방식과 사람의 삶이 땅에 새겨지는 방식(人文)을 건축적으로 표현한다. ‘함께(다양한 구성원의 모임)’와 ‘문턱이 닳는 집(직주일체)’이라는 시리즈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경계의 사이에서 이어지고 반응하는 ‘경계(境界)에 반연(攀緣)하다’라는 주제를 연구 중이다. a0100z@naver.com | www.a0100z.com

글_ 성상우 | 사진·그림_ a0100z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8월호 / Vol. 318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