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전자입국신고서 갈등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대만이 한국 전자입국신고서의 ‘중국(대만)’ 표기를 둘러싸고 외교 공세를 강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 같은 강경 대응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한을 설정하고 보복 조치를 예고하며 공개 여론전까지 펼치는 대만의 전략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오히려 더 신중한 접근을 취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대만 외교부는 31일까지 한국이 시정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4월 1일부터 대만 전자입국등록표에서 한국 표기를 ‘한국'(Korea, Republic of)에서 ‘남한'(KOREA/SOUTH)으로 변경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미 외국인 거류증에서 이 같은 변경을 단행한 데 이어 추가 조치를 예고한 것이다. 주한대만대표부는 국회까지 방문해 일부 의원들에게 입장을 설명하며 입법부와 여론을 동시에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덴마크와 다른 이중 잣대, “외교결례” 지적

대만 / 출처 : 연합뉴스
대만의 대응 방식에서 드러나는 이중성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대만은 덴마크가 외국인 거류증에 대만 국적을 ‘중국’으로 표기한 데 대해서도 시정을 요구했지만, 한국처럼 시한을 설정하거나 보복 조치를 예고하지는 않았다.
동일 사안을 두고 국가별로 다른 대응을 보이면서 “한국을 상대로 한 압박 수위만 유독 높다”는 인식이 외교가에 확산되고 있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시한을 못 박고 보복을 예고하는 방식은 도를 넘었다”며 “외교결례”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대만 정부는 한국이 2004년부터 외국인 등록증에 ‘중국(대만)’ 표기를 유지해 온 데 대해서는 별도 항의를 하지 않으면서, 전자입국신고서의 동일 표기에만 강경하게 대응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 전자입국신고서는 ‘직전 출발지’ 선택란에 ‘중국(대만)’으로 표기돼 있지만, 기본정보 기입란에는 ‘대만(Taiwan)’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오히려 한국의 배려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1월 지방선거 겨냥한 ‘주권 수호’ 카드

라이칭더 대만 총통 / 출처 : 연합뉴스
외교가에서는 대만이 이 시점에 갑자기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는 배경으로 국내 정치를 지목한다.
‘하나의 중국’에 반대하는 라이칭더 정부가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만 주권 수호’ 이미지를 국내 지지층에 어필하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라이칭더 총통은 지난해 12월 직접 “대만 국민의 의지를 존중해 달라”고 언급하며 이 문제를 공론화했고, 대만 외교부는 “시정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와의 관계를 전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강경 노선은 단기적 메시지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신뢰 훼손이라는 비용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은 출입국 신고서와 비자에서 대만을 ‘Taiwan’으로만 표기하고 있어, 한국의 ‘중국(대만)’ 표기가 국제적으로 특이한 사례는 아니다.
공개 압박의 역설, 한국의 선택지는 더 좁아져

대만 / 출처 : 연합뉴스
대만의 이번 대응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자충수’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문제를 공개적으로 부각시키고 압박 수위를 높일수록 한국 정부는 오히려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부는 “한국과 대만의 비공식 실질 협력에 대한 기존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표기 방식 유지 의사를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이 사안이 지속적으로 이슈화될 경우 정책 결정의 부담만 커질 뿐이다.
정부 간 협의 채널을 넘어 입법부까지 접촉하는 대만의 전략은 한국 외교 당국 입장에서 대응 공간을 제약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만이 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용으로 외교 카드를 활용하는 동안, 정작 실질적인 한-대만 협력 관계는 신뢰 훼손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공산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