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TSMC의 시스템반도체를 이기는 방법은?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초유기체' 개미와 닮은 대만 EMS생태계
TSMC같은 대기업-중소기업 역할분담
공동구매로 가격 떨어뜨리는 집단지성
'중국' 생산기지로 사업환경 변화에 대비
여왕, 일, 병정개미로 이뤄진 초유기체처럼

'지구의 지배자' 개미

대학에서 곤충학을 배울 때의 일이다. 교수님은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인간 최후의 경쟁자는 어떤 동물인가"라고 물으면서 그 답은 '개미'라고 말해주셨다. 개미가 그렇게 대단한 동물인가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우연히 본 책에서 원자폭탄이 떨어진 섬에 가장 먼저 번성하는 동물이 개미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그 주위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동물이 개미였다고 하니, 개미에게는 특별한 생존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회생물학』이라는 책을 쓴, 진화생물학의 거목이었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 박사는 개미를 '초유기체'라는 말로 설명했다. 초유기체(超有機體)라는 개념은 1911년 개미를 연구하던 미국 곤충학자인 윌리엄 훨러(William Wheeler) 교수에 의해서 처음으로 소개된 개념이다. 개체가 모인 집합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붙인 개념이다. 윌슨 박사가 『초유기체』(2009)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보다 대중화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군집이 한 개체처럼...'초유기체'

일반적으로 유기체는 세포나 조직으로 구성되지만 초유기체는 밀접하게 협동하는 한 종류의 여러 개체들로 구성된다. 이들이 모여서 유기적 협동과 분업과 같은 사회적 군집 행동을 해, 개체 유기체 이상의 생존효율을 보이는 군집을 초유기체라고 하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은 단순한 습관 또는 환경적 요인보다는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자연 선택의 결과로 남아 있는 행동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유전을 통해 사회 생물로서의 행동을 전해주고, 협력, 분업, 의사소통 등의 사회적 행동을 통해 개체가 더 많은 먹이를 얻고,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손을 더 효과적으로 양육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 동물로 개미와 꿀벌을 예로 들 수 있다. 즉 개미의 사회 집단 행동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 형성된 진화의 산물인 셈이다.

개미는 투명한 날개를 갖고 있는 곤충을 뜻하는 '벌목'(Hymenoptera)에 속하지만, 대부분 날개 없이 생활한다. 땅속에서 생활하기에 날개는 떨어져 나간다. 개미가 다른 생물과 근본적으로 차이나는 점은 무얼까?

계급과 역할이 나뉜 '개미 초유기체'

첫째, 다른 동물에는 찾기 힘든 집단내의 전문 분업화된 개체간 협력 행동을 한다. 개미 집단은 계급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 여왕, 일개미, 병정개미 그리고 수개미들로 구분된다. 여왕개미와 일개미, 병정개미는 암컷이다. 일개미는 개미 알을 관리하고 사냥하고 그리고 버섯도 키우고 군집 청소도 하는데, 가장 많은 개체를 가지고 있다. 병정개미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나 사냥꾼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문지기로 목숨을 걸고 철저하게 군집을 지킨다.

여왕 개미의 일은 알을 낳는 것 뿐이다. 하나의 군집은 한 마리의 여왕 개미만 있을 뿐이다. 수개미의 역할도 하나뿐이다. 여왕개미와 교미를 하는 것이 유일한 일이고, 교미가 끝나면 군집에 돌아가지 않고 살다가 죽는다. 군집으로 돌아가도 먹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의 군집내 역할로 철저하게 구분이 되어서 군집이 유지된다.

군집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 두가지를 여왕 개미가 한다. 여왕 개미는 우선 끊임없이 알을 낳아 군집의 개체수를 늘리는 일을 한다. 또 하나는 페로몬 분비를 통해서 다른 여왕개미가 등장하지 않도록 조절하고, 페로몬을 통해 군집을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왕 개미의 페로몬은 암컷인 일개미들에게는 생식능력을 억제하는 효과을 갖고 있다. 일개미들은 암컷으로 알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인지하게 만들어 군집을 안정화시킨다. 여왕개미가 노쇠하거나 여왕개미가 사라져서 페로몬을 인지 못할 경우 일개미들은 그들 중 골라서 여왕 개미로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군집을 유지한다.

과거 유물 발굴 도중에 발견된 거대 개미집.

개미가 땅속에서 함께 사는 이유

둘째는 개미들은 집단 지성( collective intelligence)을 활용한다. 이는 철저한 협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개미 개체들은 각자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서로 협력하여 전체의 지능을 높인다. 가끔 물을 건너기 위해서 개미들이 서로의 몸체를 붙잡고서 다리를 만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집단 행동이다. 물건을 운반하거나 사냥을 할 때 집단적으로 행동을 한다. 환경 변화에 따라 행동 방식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면 집단 지성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이다. 개미 개체 하나는 작을지라도 그 집단행동을 통해 각 개체의 크기에 비해 상상할 수 없는 큰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개미는 집단지성을 활용하고 일개미들간의 소통하기 위해서 페로몬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서 개미들은 일사불란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개미 특유의 환경적응력과 지속가능 활동이다. 개미는 어떤 장소이든 생존이 가능하다. 숲이나 사막 늪지대라고 해도 생존을 한다. 가장 큰 비결은 바로 땅속에서 군집을 만들기 때문이다. 땅 속이라는 환경은 땅 위와는 다르다. 땅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경의 변화를 적게 타기에 한번 적응하고 나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땅속에서만 생활한다고 해 바로 지속적으로 군집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먹이를 구해야 하기에 이를 위해 특별한 행동도 한다. 버섯을 키우는 농업도 한다. 환경에 맞춰 군집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 쓰레기를 재활용하기도 하고 다친 개미를 돌보고 유충도 돌보는 활동도 한다. 그런 일은 땅속에서 한다.

개미사회와 인간사회의 차이

사실 개미 군집을 들여다 보면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구의 '최후의 지배자'라고 하지만 만일 인간이 지구에서 지속가능한 행동을 멈추고 자멸로 간다면, 그 다음에는 아마 개미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개체수로 보면 개미는 이미 지구에서 가장 번성했다. 지구상에 있는 개미의 수는 2경(京)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개미들의 총 무게는 모든 야생 조류와 포유류를 합친 것보다 더 나간다. 개미와의 전쟁을 치른다면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할 것이다.

이렇게 강한 개미 군단의 특징은 바로 사회를 구성하고 그 군집을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데 있다. 인간이 개체 지능을 높이고, 에너지를 집중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했다면 개미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개체의 지능보다는 집단의 지능을 높였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해 최대한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개미를 초유기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이다.

대만 전자산업계도 초유기체처럼

사회적 동물인 개미가 가지는 진화 생태학적 현상을 인간의 산업 사회에서 찾는다면, 대만의 중소기업-대기업간 협업과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만은 중소기업의 나라였다. 1990년대 대만 업체들과 미팅을 해보면 철저하게 중소기업 중심으로 움직이는 나라였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생존하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대만 기업들은 일종의 중소기업 군집과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마치 여왕벌을 중심으로 초유기체가 되듯이, 대만의 대표적인 시스템 반도체 중심기업인 TSMC나 애플, HP, 델 등을 생산하는 폭스콘은 여왕벌의 역할을 하고 나머지 중소기업들이 일개미, 병정개미, 수개미처럼 단일한 행동을 하도록 군집화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대만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알을 낳고 페로몬으로 조직을 통제하는 여왕개미처럼 폭스콘(Foxconn) 같은 대만의 대기업은 철저하게 비즈니스를 만들고 중소기업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일관된 명령에 따르도록 협력체계를 만든다. 그 출발은 대만이 가지고 있는 EMS 시스템에 근거하고 있다. EMS시스템(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은 전자 제품 OEM 또는 ODM을 말하는 것이다. 브랜드는 선진국에서 가지고 있지만 이후의 모든 개발 ·생산을 외주 공장에서 관리 생산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시장에서 대만 기업이 전세계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1970년대는 일본 전자제품의 외주 비지니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본보다는 미국이나 유럽에 더 많은 시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컴퓨터 산업에서의 EMS로 대만이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EMS 기업으로 애플의 생산을 전담하는 폭스콘을 들수 있다.

지난 4월말 대만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대만출신인 그의 방문에 대만 IT업계는 뜨거운 환영으로 그를 맞았다. 사진=연합뉴스

대만 EMS시스템의 '집단지성'

둘째는 대만의 중소기업-대기업간 역할 분담이다. EMS 시스템 하에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역할 별로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있다. EMS 시장 규모는 2024년 5737억 달러에서 2032년까지 1경 달러로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EMS 기업 순위 50위 안에 한국 기업은 없다. 대만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다.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분업화하면서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만든 메모리칩의 주요 구매자가 바로 EMS 기업들이다.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 기업들은 구매 파워를 자랑한다. 대량 구매로 가격 구매력을 높이고 장기 계약을 통해 시장 가격보다 10%에서 20%까지 싸게 사서 EMS 대만계 기업끼리 나눈다. 삼성과 하이닉스도 사실 전체 EMS 사이클로 보면 대만 외주업체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대만의 중소기업마다 부품 하나하나를 대량으로 싸게 만들면, EMS 기업은 이들을 최종 조립한다.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EMS군집을 유지하는 비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철저하게 이를 지킨다. 이는 일본 도요다 생산방식을 뛰어넘는 경영 혁신의 사례로 꼽히고 있다.

엔비디아, 대만 EMS를 활용하다

개미가 서로 철저한 협동과 분업을 통해 군집으로 진화하고 성장시키듯이 대만계 전자기업들은 협업과 분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장악한다. 시스템 반도체 시장의 최대 강자인 TSMC가 주력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는 그 출발이 EMS업체에서 사용할 반도체를 개발하면서였다.

즉 다양한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TSMC가 주도해서 만들고, 대만 EMS업체가 주요 구매자들로 역할한 덕에 TSMC가 성장한 것이다. 특히 컴퓨터용 부품이나 소재를 대만업체들이 많이 만들고 있었는데, 엔비디아가 게임용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대만업체를 통하면서 GPU를 개발했다. 엔비디아가 GPU를 개발하면서 쿠다(CUDA) 어플리케이션 생태계를 만들었는데, EMS업체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공지능(AI) 개발자의 입장에서 보면 10년 이상 축적된 프로그램 코드를 언제든지 레퍼런스로 사용할 수 있으니 AI 반도체는 엔비디아의 GPU를 쓸 수 밖에 없다. 이같은 락인(Lock-in) 효과는 대만 중소기업과 엔비디아간 협업의 결과다. 사실 엔비디아도 중소기업에서 출발했으니 당연하다.

마치 여왕 개미가 없을 때 일개미를 선별하여 여왕 개미로 성장시키는 프로세스와 같았다. 엔비디아라는 여왕 개미를 통해 대만은 하드웨어 중심으로, 미국에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로 지금의 엔비디아가 됐다.

땅속 개미처럼 중국 옆 대만

넷째로는 개미가 환경 변화에 대응해 '땅 속'을 거점으로 삼았듯이, 대만계 기업은 중국을 성장 배경으로 삼았다. 중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급성장했다. EMS 기업 1위인 폭스콘은 50만명 이상 중국 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2위인 페가트론(Pegatron)도 10만명 이상의 중국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즉 EMS 성장의 배경에는 바로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기지가 있다. 대만 내에서는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중국이라는 거대한 생산 기지를 활용하면서 세계적인 규모로 성장한 대만의 중소기업들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네트워크 협력은 대단하다. 비즈니스를 위해서 철저하게 서로를 지켜주면서 성장했다.

개미가 초유기체로 지구상 가장 성공적인 동물이 되었듯이, 대만도 중소기업의 초유기체적 협력을 통해서 전자산업에서 최대의 EMS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그 바탕에는 TSMC같은 시스템 반도체 업체들이 있다. 한국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나 TSMC를 넘어서겠다는 장담은 사실 가능성이 없다. 이유는 바로 대만은 EMS 기업들의 구매 기반을 가지고 시스템 반도체 시장이 성장했는데, 한국은 기술만 개발되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성공했다고 하지만 하나의 제품에 집중해서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용도에 맞게 다양하게 개발해야 하기에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은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에는 적응할 수 없다.

한국도 초유기체 생태계를 만들어라

한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에서 미래 산업전략을 펼쳐 나가려면 중소기업들의 생태계가 꾸려져야 한다. 즉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여왕 개미 역할'을 하는 한편, 그 군집에서 역할 분담을 잘 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이 활발히 참여해 하나의 독자적인 생태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것 없이 대기업 혼자서 열심히 한다고 하여 만들어지는 생태계가 아니다.

대만 중소기업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EMS시스템 및 인공지능 생태계와 한국의 재벌 중심의 생태계가 서로 경쟁을 한다면, 현재로서는 한국이 필패할 것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전략적 방향을 바꾸어서 '초유기체적인' 네트워크와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한국이 살아남는다.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