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계 노장 투혼 '뽀빠이' 이홍기
94년 한일 당구최강전 '인생 경기'

남다른 파워가 장기인 이홍기(55) 선수는 '뽀빠이'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다닌다.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기골이 장대한 그는 특유의 힘을 이용한 난구풀이의 장인으로도 불린다. 이홍기는 1990년대를 주름잡은 정상권 선수였다. 1991년 선수로 데뷔한 그는 1994년 '한일 당구최강전'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999년에는 세계 팀3쿠션 선수권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당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릴 시기에 시련이 다가왔다. 암 판정을 받은 아내의 간호를 위해 5년 동안 큐를 놓아야만 했다. PBA 출범 후 줄곧 1부 리그에서 활동하던 이홍기는 이번 시즌 2부 리그인 드림투어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홍기는 절치부심 끝에 지난 11월 '프롬 PBA 드림투어 4차전'에서 정상에 올라 1부 투어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50대 노익장의 진가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매일 큐를 들고 구슬땀을 흘린다.
돈 때문에 포기한 아이스하키
설움 딛고 스틱 대신 택한 큐
이홍기는 학창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뽀빠이라는 별명은 그때부터 얻었다. 팔뚝 근육이 워낙 두툼하고 힘이 좋았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은 '금수저' 출신이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운동이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는데 아이스하키가 너무 멋있어 보여서 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도 밀어주셨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겁니다. 스틱값만 당시 6만원을 매달 꼬박대야 했고 그 외 스케이트 등 장비나 훈련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훈련 비용이 부족해 운동을 그만둬야 했던 그는 한동안 좌절했다. 어린 마음에 섭섭해서 울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 무렵 아이스하키처럼 당구가 운명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친구들과 당구장을 처음 갔는데 친구 한 명이 강력한 밀어치기로 예술구 같은 화려한 샷을 구사했는데 그냥 흠뻑 반해 버렸죠. 그 이후 당구장으로 출근 도장을 찍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조용달 선배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홍기는 당구 동호회 '청엽회'에서 활동했다. 청엽회는 1995년 국내 최초로 당구를 소재로 한 영화 '큐'를 제작할 때 단체로 특별출연을 할 만큼 전통이 깊은 당구 동호회이다. 그는 서울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참가하는 '청엽회 3쿠션대회'에서 9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 1991년 서울당구연맹 소속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홍기는 1994년 열린 한일 당구최강전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의 당구 강국은 일본이었다. 일본에는 세계선수권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차지한 세계 정상의 고바야시 노부아키 선수도 참가했다. 한국 당구계 입장에서는 '넘사벽' 수준이었던 고바야시를 28세의 신예 이홍기는 4강전에서 세트스코어 2대1로 꺾는 최대 이변을 일으켰다.
"한일 당구최강전이 인생 경기였죠. 당시 한국 선수가 고바야시 선수를 상대로 이겨본 적이 없었는데 8연속 득점으로 마지막 세트를 따내 결승에 올라갔으니 난리가 났죠. 결승에서도 일본의 최강자 중 한 명인 아라이 다치오 선수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한 것을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후 그는 여세를 몰아 1999년에는 독일 세계 팀3쿠션 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이어 2000년 제1회 서울선수권대회 우승, 2005년 SBS 한국당구최강전 3차 우승 등 전성기를 이어갔다.
아내 병간호로 5년간 큐 놓아
목발의 '당구 명인' 찾아 재기
노총각으로 지내던 이홍기는 어머니의 성화로 2004년 국내 여성 포켓볼의 기대주였던 권미숙 선수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37살의 나이에 간 늦장가였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다가왔다. 2009년 아내가 암 판정을 받았다. 그 무렵에 어머니의 도움으로 운영하던 당구장도 헐값에 처분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쳤다. 믿고 맡겼던 지인과 문제가 생겨 벌어진 일이다. 그 일로 어머니와도 관계가 틀어졌다. 흔히 말하는 '삼재'(三災)가 온 셈이다.
"당구장을 접고 일단 아내 병간호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죠. 거의 2년 동안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만 보냈습니다. 그러다 생활비가 떨어져 건설 현장의 막노동에 뛰어들기도 했죠. 큐를 놓고 거의 5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의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했다. 2014년 무렵부터는 통원 치료가 가능할 정도였다. 이홍기는 이때부터 다시 큐를 잡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당구였기 때문이다.
부활을 도모할 당시 그의 나이는 어느덧 47살이었다. 50대를 눈앞에 둔 나이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홍기는 큰 결심을 한다. 40대 후반의 나이지만 재기를 위해 당구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잘 알고 지낸 원영배 선배님을 찾아가 기본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제 스타일이 난구풀이에는 능하지만 기본 공이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원 선배와 전국을 같이 다니면서 볼의 원리, 관성, 패턴 등을 꾸준히 배웠는데 그게 큰 힘이 됐죠."
60대 후반의 원로선수인 원영배는 국내 최고의 '당구 명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실력자로 꼽힌다. 당구 이론과 실기에 두루 해박한 지식은 국내에서 으뜸이다. 특히 그는 젊은 시절 사고로 왼발을 잃어 목발을 짚고 당구를 치는 집념의 선수로도 유명했다.
국내 정상급 선수 중 상당수가 그의 가르침을 거쳤다. 강동궁(SK렌터카)·스롱 피아비(블루원엔젤스)·김민아(NH농협카드) 선수 등이 원영배의 교습을 거쳐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원 선배 덕분에 이듬해 서울지역대회에서 4강에 들어가는 성과를 보였어요. 하지만 국내 랭킹 10위권 내로 들어오기까지는 3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긴 공백기로 순위가 낮아서 예선 초반부터 강자들과 붙어야 했기 때문이죠."

그는 2018년 6월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제6회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준우승을 하고 11월에는 '영월동강배 전국 3쿠션당구대회' 공동 3위를 기록하며 결국 '톱10'에 진입했다. 2019년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개최되는 '제10회 아시아캐롬선수권대회' 선수로 선발됐다. 5년의 공백기를 깨고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저는 모르는 공이 있으면 까마득한 후배라도 찾아가서 배웁니다. 제가 잘 치는 공도 있지만 다른 선수가 잘 치는 배치도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묻고 배우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옳다고 봐요. 내가 완벽히 이해하고 숙지해야 다른 사람도 가르쳐 줄 수 있거든요."
2부 강등 1년 만에 1부 복귀
50대 노익장의 경쟁력 기대
PBA 출범 이후 1부 투어에서 활약하던 이홍기는 지난 시즌 2부 리그인 드림투어로 강등됐다.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한 자책과 함께 마음도 착잡했다.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면서 후반 막판 집중력이 흐트러져 성적이 나오지 않은 점을 잘 알고 있어서다.
"실제로 드림투어를 뛰어보니 2부 리그도 정말 만만치 않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드림투어 상위 20위권 안에 드는 선수들은 당장 1부 투어를 뛰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췄다고 봐요. 이번에 운이 좋아 드림투어 우승을 차지했지만 2부 리그에서도 많이 보고 배운 것이 사실이죠. 일단 내년 시즌이 시작되면 목표는 8강입니다. 일단 8강을 올라가야 4강과 결승전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그는 2부 리그를 경험하면서 다른 의미의 착잡함도 겪었다. 자신과 비슷한 50대 노익장 선수들의 현실과 관련된 문제이다. 황득희·신남호·이국성·서삼일·김종완 선수 등 대한당구연맹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프로로 넘어온 고참 선수들은 성적을 내도 나이 문제로 팀 리그에 들어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8개 구단 중 1개 구단이라도 상징적으로 실력을 갖춘 50대 선수 한 명을 발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후배들과의 균형도 맞추고 여러 가지 노하우도 조언해주면서 팀의 중심이 되는 장면을 혼자 그려보거든요."
이홍기는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그의 애제자는 지난 7월 전북 정읍에서 열린 '제17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생활체육당구대회' 학생부(여자) 3쿠션에서 우승한 최봄이 선수이다. 최 선수는 지난해 4월 열린 '제9회 국토정중앙배 전국당구대회'에서 여자고등부 3쿠션에서 우승한 기대주이기도 하다.
"지금은 최봄이를 집중해서 가르치고 있지만, 여건이 되면 후진 양성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당구를 시작할 때와는 달리 지금은 너무 좋은 환경에서 당구를 할 수가 있죠. 아마 저라면 하루 내내 당구만 칠 것 같아요. 당구만 잘 쳐도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그에 맞춰 기회가 되면 후배들을 많이 키워내고 싶죠."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사진=이혜영 기자 ihy@hankooki.com
스포츠한국 정완주 기자 wjchung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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