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간첩" 영웅이 된 살인범…16년 만에 드러난 반전의 반전[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김씨와 윤태식은 1986년 결혼했다. 그러나 윤태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결국 김씨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듬해 1월 3일 윤태식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윤태식은 말다툼 끝에 김씨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침대 밑에 숨겼다. 겁을 먹은 그는 이틀 뒤 싱가포르로 이동해 북한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미국 대사관도 찾아갔지만 마찬가지로 쫓겨났다.

안기부장이었던 장세동은 아내 살인 및 자진 월북 시도 사건을 '납북' 사건으로 조작했고, 살인범 윤태식은 반공 투사가 됐다. 홍콩 언론이 "수지 김은 북한 간첩이 아니다"라고 보도했음에도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라 한국에는 소식이 전해지지 못했다.
숨진 김씨는 시신 부패 냄새를 맡은 이웃 신고로 출동한 홍콩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홍콩 경찰은 살인 사건과 관련해 윤태식을 소환 조사하려 했으나 한국 외무부는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식은 안기부 보호를 받으며 당당하게 입국했다. 그는 기자들 질문에 뻔뻔하게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 너무 무서워서요. 말을 못 하겠어요"라고 토로했다.

얌전히 살아도 모자랐을 판에 윤태식은 이목을 끌며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이어갔다. 그러자 업계에서는 중학교 중퇴 학력인 윤태식이 혼자 지문인식 시스템을 개발했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며 의혹을 제기했다.

사건 은폐와 조작을 주도했던 장세동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았다. 유족은 정부와 윤태식을 상대로 108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03년 국가가 유족에게 배상금 42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유례없을 정도로 큰 액수의 배상금이었다. 정부는 장세동 등 안기부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했으나 장세동은 일부만 납부했다. 윤태식에게도 구상권을 행사했지만, 윤태식 재산은 이미 공중분해 된 상태였다.
재판부는 "국가는 조직적으로 국가 권력을 이용해 살해된 김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살인범 윤태식을 오히려 반공 투사로 만들어 원고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쳤다"며 "남북분단 상황에서 원고들은 간첩 가족으로 몰려 그동안 신분상 불이익으로 인해 경제적 궁핍과 고통을 겪었다. 모든 사정을 참작해 위자료로나마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국정원 위신도 땅에 떨어졌다. 국정원은 2003년 8월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안전기획부가 사건을 조작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유족들은 홍콩에서 김씨가 묻힌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홍콩 당국에서 무연고자 시신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유족은 김씨가 다른 무연고자들과 한꺼번에 묻힌 묘지의 흙을 가져와 어머니 묘지에 뿌리면서 모녀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한다.
윤태식은 수감 중이던 2012년 김씨 시신 감정을 맡았던 법의학자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는 등 반성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4월 만기 출소한 상태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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