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생활공간' 그 자체... '아이오닉 5' 눈여겨볼 기능은 'V2L'

'아이오닉 5'의 차명은 '아이온(Ion)'과 '유니크(Unique)'의 합성어인 '아이오닉(IONIQ)'에 차급을 의미하는 숫자를 결합한 알파뉴메릭 작명으로 지어졌습니다.

외관은 앞서 공개된 컨셉트카 '45 EV'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것이 특징이었는데요. 먼저 비율부터 남달랐죠. 오로지 전기차를 위해 만들어진 전용 'E-GMP' 플랫폼을 사용해 무려 3m가 넘는 풀사이즈 세단을 육박하는 긴 휠 베이스를 갖게 됐습니다. 엔진이나 변속기 위치를 고려할 필요가 없으니 앞뒤 바퀴를 최대한 끝단에 배치할 수 있기 때문이죠.

'파라메트릭 픽셀'로 명명한 네모 반듯한 그래픽의 LED 램프는 BMW의 '코로나 링'을 처음 마주했을 때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낸과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트림에 따라 램프의 구성을 달리 하긴 했지만 하위 트림은 하위 트림대로 심플한 느낌이 있어서 이건 나름대로 좋아 보이더라고요.

특히 조개껍데기를 연상시켜 '클램쉘'이라는 이름이 붙은 후드가 돋보였죠. 휠 아치와 헤드램프를 따라 자연스럽게 맞물리면서 앞부분이 상당히 깔끔해졌습니다.

자칫 심심해 보일 수도 있는 측면은 'Z자'로 접어 넣은 캐릭터 라인,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대형 알루미늄 휠로 존재감을 끌어올렸고 여기에 오토 플러시 타입의 도어 핸들을 적용해 매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영국 스포츠카 애스턴마틴이 오래전부터 이 방식을 쓰고 있죠. 전기차는 뭔가 색달라야 한다는 강박이 남아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자식 도어 핸들은 간단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장치라 많은 제조사들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앞서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고요.

해치백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리어 와이퍼가 없는 것이 독특했는데요. 위쪽 스포일러에 바람길을 만들어 주행 중 후면 유리를 바람이 쓸고 내려가게 하면서 오염물을 제거한다는 설명이었는데요. 겨울철 눈길이나 비가 안 오면서 진흙탕만 튀는 날에는 어떡하나 싶었는데, 그냥 안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전체적으로 심플한 디자인에 기계미가 돋보여서 그런지 금속 느낌이 잘 나는 무채색 계열, 광택이 없는 매트 컬러가 잘 어울리더라고요.

실내는 무빙 스페이스, 즉 움직이는 생활공간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됐습니다. 시원시원한 개방감과 공간감, 잘 정돈된 가구처럼 배치된 각종 편의장치가 단순히 자동차의 실내라기보다는 방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주는데요. 근래 개인의 자동차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가 나만의 공간을 비교적 손쉽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잘 맞물리는 구성이에요.

느낌뿐만이 아니었죠. 실제로도 팰리세이드를 상회하는 넉넉한 휠 베이스와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높은 전고 덕에 차의 크기를 뛰어넘는 공간 창출이 가능했습니다. 대형 세단 못지않은 여유로운 뒷좌석, 여기에 툭 튀어나온 곳 없이 바닥이 평평하다 보니 시트나 콘솔 같은 기구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차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친환경 마감재와 다양한 실내 컬러를 제공해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있고 변속 레버는 스티어링 휠 오른편에 칼럼식으로 배치해 가뿐해진 센터 콘솔을 앞뒤로 움직일 수 있게 하면서 공간 구성도 자유로워졌습니다.

나란히 배치된 두 개의 12.3인치 화면은 전용 그래픽으로 꾸며져 보기에도, 기능면으로도 훌륭했고 베젤을 화이트 톤으로 처리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다만 화면이 꺼져 있을 땐 두꺼운 베젤이 도드라져 보이는 게 초창기 태블릿 PC를 보는 것 같아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어요.

심플함에 집중하느라 스티어링 휠마저 현대 로고 대신 'H'를 의미하는 모스 부호를 새겼고, 또 물리 버튼을 최소화하면서 심플한 구성을 취한 것은 좋았지만 자주 사용하는 버튼인 열선 및 통풍 시트 스위치를 터치 스크린 안에 통합해 놓은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한편 눈에 띄는 부분은 현대차 최초로 적용된 디지털 사이드미러, 사이드미러 위치에 자리한 카메라와 둥글넓적한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화면을 띄워주는 방식으로 고성능 카메라를 탑재해 우천 시나 야간에도 선명한 화질을 제공했습니다. 거울보다 더 넓은 화각을 비춰 사각지대를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고 공기저항에도 이점이 있다고 합니다만 가격을 보면 메리트가 잘 안 느껴졌지만, 특히 넓은 면적의 거울이 필수였던 '상용차'에서 그 효용성이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이 밖에 8개 스피커의 보스 프리미엄 사운드, 내비게이션 경로를 더욱 능동적으로 안내하는 증강현실 헤드업 디스플레이, 원격 주차 보조나 디지털키 등 여러 고급 첨단 사양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엔트리 트림도 홀대하진 않았는데 소위 말하는 '깡통'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넉넉한 편의장치와 고속도로 주행 보조를 비롯한 첨단 ADAS를 기본 장비해 상품성이 훌륭했어요.

특히 V2L 기능이 돋보였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전자제품의 소모전력은 바퀴를 굴리는 데 비하면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다양한 환경에서 예비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전기차의 배터리는 최소 수십 kWh, 이 말은 곧 전기차들은 정전 같은 유사시에 거대한 보조배터리로, 심지어 '수 시간'도 아니고 '수 일' 단위로 쓸 수 있는 수준의 전기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런 배터리에 있는 전기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기능이 바로 V2L입니다.

커넥터를 연결해 야외에서 전자제품을 바로 사용하거나 주행거리가 위태로운 전기차에 전기를 나눠주는 것도 가능하죠. 생활의 범위를 확장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무빙 스페이스'로 거듭나게 해주는 의미 있는 기능입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도 220V 파워 아울렛을 설치해 가벼운 전기제품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헤어드라이어 등의 전열기구 등 소비전력이 높은 전자제품은 아예 전원을 켤 수도 없었죠.

이 V2L은 난로 같은 전열기구는 물론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전기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활용성이 상당히 넓습니다. 특히 차박, 캠핑 등 아웃도어 레저 활동을 할 때 빛을 발하다 보니 이 기능 하나만으로 구매를 고려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예요. 물론 이 V2L도 허용량이 무제한은 아니기 때문에 사용 전 설명서를 반드시 읽어보셔야 합니다.

그 사이 전기차도 세대를 거듭하며 성능이 눈에 띄게 개선됐습니다. 각 브랜드들은 주행 가능 거리와 모터 성능을 경쟁적으로 높여가면서 내연기관만을 고집하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만큼의 상품성을 제공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오닉 5 또한 최신형 전기차에 기대하는 성능을 갖췄습니다. 225마력을 제공하는 전기차가 168kW 후륜 싱글 모터를 기본으로 앞바퀴에 74kW 모터를 추가,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을 지원하는 듀얼 모터 사양을 옵션으로 제공했고, 배터리도 용량에 따라 스탠다드, 롱 레인지로 이원화해 운행 환경과 예산에 맞춰 선택할 수 있도록 했죠.

특히 72kW 배터리를 탑재한 롱레인지 사양은 400km 이상의 넉넉한 주행 가능 거리를 확보하면서 기존 전기차의 가장 큰 진입장벽이었던 낮은 주행 가능 거리, 충전 스트레스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에 더해 이런 대용량 배터리를 10여 분만에 상당 부분 충전할 수 있는 800V 초급속 충전을 지원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쟁력이었고요.

전기차 특유의 안정적인 주행감과 중량에서 비롯되는 부드러운 승차감, 주행보조장치와 궁합을 맞춰 한결 매끄러워진 회생제동 시스템으로 주행 성능 역시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연식 변경을 거친 2023년형 모델부터는 주력 사양인 롱 레인지 트림에 개선된 배터리를 장착, 주행 가능 거리를 458km까지 끌어올려 상품성을 개선했습니다.

한편 전기차 시장에 고성능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요. 부채질을 시작한 건 역시나 일론 머스크였어요. 테슬라 '모델 S'에 강력한 모터를 탑재해 몇 배는 비싼 럭셔리 스포츠 카들보다 빠른 속도를 자랑하면서 전기차 퍼포먼스 경쟁에 불을 지폈습니다. 모델 S는 가격이 1억을 훌쩍 넘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문제는 '이 친구'였죠.

엔트리 모델인 테슬라 '모델 3'에도 400마력을 훌쩍 뛰어넘는 퍼포먼스 트림을 추가해 국내에도 정식 출시했고 기아차도 형제 모델 'EV6'에 고성능 트림인 GT를 추가하면서 고출력에 목말라 있던 소비자들에게 어필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현대차가 모른 척할 리 없었죠.

2023년 여름, 현대차의 첫 번째 전동화 N 모델인 아이오닉 5N을 선보였습니다. 더욱 공격적인 디자인의 범퍼, 시선을 잡아 끄는 붉은색 띠, 휠하우스를 가득 메우는 날렵한 디자인의 21인치 단조 휠이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검게 칠한 실내도 N 전용 테마로 꾸며진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모니터, 알칸타라 내장, 무엇보다 엄청난 존재감을 발산하는 3-스포크 스티어링 휠 하나만으로도 남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곳곳에 추가된 커스텀 버튼들 덕분에 레이싱 게임을 즐기는 듯한 기분도 들었고요. 앞/뒤 모터 합산 최대 478kW, 650마력, 78.5kgfm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파워를 선사하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또 단순히 높은 출력만 제공해 '직발만 좋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과거 현대차의 고성능 라인업들과 달리 'N'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여느 프리미엄 스포츠카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주행 성능을 제공했어요.

그동안의 전기차는 특유의 육중한 몸무게로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타이어에 상당한 피로가 쌓이면서 성능이 급격하게 나빠지거나 이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는데 아이오닉 5N은 놀라울 만큼의 안정성을 자랑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최신 설계가 반영돼 가혹한 주행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84kWh 배터리도 이 모델에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넉넉한 항속거리는 물론 기존의 고성능 전기차들도 배터리 과열 등으로 연속주행이 불가능했던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연속으로 2바퀴 이상 완주하면서 배터리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완성도를 입증하기도 했어요.

이밖에 서킷 주행에 최적화된 각종 주행 모드와 일반 도로에서도 펀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도록 세팅된 여러 가지 기능 등 현대가 N 브랜드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모델 하나만 보고도 알 수 있을 만큼 진정한 '어른들의 장난감'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아날로그 감성을 구현한 기능들이 돋보였는데요. 내연기관의 엔진음과 배기음은 물론 아예 아이들링 시 떨림과 변속 충격까지 구현했습니다. 실내에서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외부로 출력해 그럴싸한 배기음, 심지어 '팝앤뱅(팝콘)' 사운드까지 만들어냈어요. 이 밖에도 다양한 가상사운드를 제공해 운전에 재미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각 브랜드마다 각기 다른 가상사운드를 제공하거나 커스텀할 수 있게 만든다면 이 또한 전기차만의 개성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싶네요.

또 한 가지 돋보이는 부분은 토크 설정인데요. 모니터 속 간단한 몇 가지 설정만으로 차량의 구동력을 자유롭게 세팅하면서 각기 다른 주행 특성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전기모터이기 때문에 손쉽게 가능한 부분이죠.

이를 활용해 첫 번째 랩은 전륜구동으로, 두 번째 랩은 후륜구동으로, 마지막 랩은 4륜구동으로 각기 다른 구동 방식의 자동차처럼 주행할 수도 있어요. 역대 N 모델에 대한 평가가 그래왔듯 이번에도 국내외 자동차 전문 매체와 소비자들도 칭찬일색, 온갖 해외무대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말 그대로 국위선양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난해 짧은 시간 동안 이 차와 함께 했었는데 시승 내내 비가 내린 데다 워낙에 정신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그저 일상주행으로 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이 모델의 매력이 상당했어요. 컴포트로 세팅하면 순식간에 화가 가라앉아 가족들을 위한 보통의 아이오닉 5로 전환됩니다. 낮은 편평비의 타이어가 무색할 만큼 승차감도 준수해지는 게 초인 헐크와 평범한 인간을 오가는 '브루스 배너' 박사처럼 강력한 슈퍼카와 안락한 크로스오버를 스티어링 휠의 버튼 하나로 오가는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차였어요.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언제 한번 서킷에 찾아가서 제대로 체험해보고 싶은데, 그전에 이 친구를 즐기기에 한참 부족한 제 운전 실력부터 갈고닦아야 되겠지만요. 한동안 저에게 전기차는 그저 이동수단으로만 받아들여졌습니다만, 아이오닉5 N을 만나고 나니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가상의 배기음과 변속 충격은 누군가는 '흉내'를 냈다며 조소하겠지만 적어도 이 차를 타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부분은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걸 1억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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