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 가족 간 금전 거래도 ‘기록’ 남겨야- 강민수(세무사)

매년 연초에는 비슷한 질문이 쏟아진다. “부모님 병원비나 자녀 전세금 지원, 어디까지가 비과세이고 어디부터가 증여인가요?” 가족 간 오가는 현금을 세무조사 대상으로 여기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과세당국의 눈에 비친 계좌이체는 때로 ‘따뜻한 지원’이 아닌 ‘무상 증여’라는 차가운 숫자로 읽히곤 한다.
과거에는 수천만 원 단위의 거래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모니터링과 전산망이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한다. 특히 자금조달계획서 제출이나 상속세 조사가 시작되면, 최근 10년간의 통장 내역은 낱낱이 소명해야 할 기록이 된다. 이때 근거 없는 이체 내역은 예상치 못한 세금 부담으로 돌아온다.
물론 모든 이체가 과세 대상은 아니다.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축의금이나 부양 의무가 있는 가족 간의 생활비, 교육비는 비과세 항목이다. 문제는 그 ‘통념’의 경계가 생각보다 엄격하다는 점이다. 자녀가 소득이 있음에도 전세금을 보태주거나, 생활비 명목의 돈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사용했다면 이는 명백한 증여다. 선의가 가산세와 함께 가족의 짐이 되는 순간이다.
가족 간 거래가 ‘약’이 되기 위해서는 주관적 친밀함이 아닌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 빌려준 돈이라면 정식 차용증을 작성하고, 시장 이율에 맞는 이자를 주고받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것은 ‘기록의 힘’이다. 훗날 당국 앞에서 “가족끼리라 그냥 줬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장부에 남지 않은 진심은 세법의 틀 안에서 힘을 잃기 때문이다.
장부를 정리하다 보면 돈의 흐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안전한 전달’임을 깨닫는다. 자식에게 건네는 응원이 세금 폭탄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이제 가족 간의 대화에도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 증빙이 뒷받침된 자산 이동만이 가족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가족에게 보낸 이체 내역을 다시 살펴보자. 당신의 선의가 안전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말이다. 철저한 준비와 기록만이 ‘사랑의 지원’을 진정한 ‘가족의 약’으로 완성하는 유일한 길이다.
강민수(세무사)
Copyright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