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핵무장, 치러야 할 대가 너무 크다
● 동맹국 신뢰 약화는 동맹 와해로 이어져
● 일상화될 北核 위협… 확장억제 작동 미지수
● 韓, 프랑스·인도와는 다르다
● 전술핵, 즉응성·확전 차단·국제규범 모두 충족
● 신뢰할 수 있는 재래 전력 갖춰야
美, 동맹국 위해 위험 감수할 수 있는가
지난해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가 공동으로 발간한 '북핵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따르면 북한은 2020년 기준 이미 핵탄두 67~116개를 만들 핵물질을 확보했다. 2027년까지는 핵무기 151~242개를 보유하게 된다. 최소 추정치인 60여 개 핵탄두조차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한국에 대한 핵 위협을 쉽게 가할 수 있는 수준이다.9월 8일 북한이 공표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라는 법령(이하 핵무력정책법)을 살펴보면 북한이 다량의 핵탄두를 확보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한국에 대해 일상적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짙어진다. 북한의 '핵무력정책법'은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을 포함해 거의 모든 경우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근거를 마련했다.
우선 북한판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사시 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가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음도 밝혔다. 이로써 전쟁 주도권 확보 목적으로도 핵무기 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한국에 대해 언제든 핵 협박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2006년 열린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공약을 명문화했고, 올해 11월 3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제54차 SCM에서 더욱 강화된 확장억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11월 13일 한미 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춰 대북 확장억제를 획기적으로 강화한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확장억제에 대해선 다양한 정의가 있다. 대체로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핵공격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지역 확장, 적대국의 핵공격 후 핵 보복만을 명시한 '핵우산(Nuclear Umbrella)'에 비해 상대방 핵 능력에 대한 평가·감시·경보·방어·보복 등의 전 과정에서 협력을 지향하는 과정상 확장, 핵 이외의 대량살상무기(WMD)에도 핵 보복이 가능한 대상의 확장(물론 핵공격에 대해 압도적 재래 전력을 이용한 대응이라는 수단상 확장도 포괄한다) 등을 포괄한다. 정리하자면 '핵우산'보다 더 믿음직한 미국의 안보 공약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이 자국에 대한 핵공격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확장억제' 공약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동안 끊임없는 논쟁이 있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실제로 핵전쟁이 발발하거나 핵무기가 타국에 대해 사용된 예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실제로 동맹국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구체적으로 어떤 수단을 사용해 확장억제 공약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 확실히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자국의 핵 태세를 유지하는 데 있어 '단일 권한(Sole Authority)'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다. 미국의 핵무기가 어떤 곳에 위치하든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릴 최종 권한은 미국의 최고사령관, 즉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이 원칙은 '미국이 리옹이나 함부르크를 위해 뉴욕이나 디트로이트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가'라는 '드골의 의심'을 떠오르게 한다.
확장억제는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충족돼야 효과를 발휘한다. 잠재적 적대국에 대한 '억제(deterrence)', 확장억제 수혜국에 대한 '보장(assurance)'이다. 이 둘은 서로 연결된다. 핵심은 '미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만약 잠재적 적대국이 미국이 핵 보복을 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억제' 효과가 떨어지고, 미국의 동맹국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보장' 효과가 감소한다. 잠재적 적대국이 리더십의 신중성(prudence)이 떨어지는 권위주의형 독재국가라면 확장억제 딜레마는 더 커진다.
다양한 대안 거론되지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한국 정부는 킬-체인(Kill-chain),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Korea Air and Missile Defense), 한국형 대량응징보복(KMPR·Korea Massive Punishment and Retaliation)의 '3축 체계' 조기 구축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재래 전력 위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데, 핵무기는 핵무기를 통해서만 억제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고려할 때 억제력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한반도 인근 미국 핵잠수함 상시 배치 등 전략자산 강화 대안과 자체 핵무장론이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대응은 즉응성, 확전(escalation) 차단, 그리고 국제규범과 동맹관계 등 다양한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실효성을 지닌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즉각적인 응징·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김정은이 무모한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고, 중국 및 러시아의 개입과 반발 가능성을 최소화해야 한반도에서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의 의무와 '신뢰'라는 한미동맹의 기본정신을 지켜야 대응의 안정성과 정당성이 높아진다.
유사시 미국의 핵잠수함에서 발사되는 저위력 핵무기(Low-Yield Nuclear Weapons)를 통해 억제력을 확보하자는 대안은 국제규범과 동맹정신엔 부합하지만 즉응성과 확전 차단 측면에서 약점을 지닌다. 미국은 그동안 1991년 러시아와 맺은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입각해 핵탄두와 운송체계의 수를 감축해 왔다. 기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에 장착된 핵탄두는 대부분 제거됐으나 트럼프 행정부 기간에 미국의 새로운 저위력 핵무기 3종(B61-12형 항공폭탄, W76-2형 SLBM, 신형 토마호크 핵순항 미사일)이 개발됐다. 하지만 핵잠수함의 핵무기는 발사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핵무기 사용과 20~30분의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시간이면 북한이 워싱턴에 대해 추가로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러시아와 중국이 짐짓 평화를 강조하며 한국과 미국의 자제를 촉구하기에 충분하다.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 핵잠수함 활동을 자국에 대한 공격 기도로 오인할 소지도 있다.
자체 핵무기 개발은 즉응성을 충족할 순 있어도 중국·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국제규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 일각에서는 '결심만 한다면 1년 이내 자체 핵무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탄두 설계와 투발 수단 확보까지 최소 3~5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즉응성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이 경우 6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북한이 한국의 제한된 핵무기를 두려워할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자체 핵보유는 어떤 논리를 동원하더라도 미국의 대한(對韓) 안보 공약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동맹국에 대한 신뢰 약화는 결국 동맹 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일각에선 앞에서 이야기한 드골의 논리를 제기하지만 프랑스와 한국은 다르다. 프랑스는 오늘날의 국제 비확산 레짐의 기반이 된 NPT가 출범하기 훨씬 이전 핵실험에 성공했다. 또 드골의 자체 핵무기 개발은 사실상 프랑스의 고유 이익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자율성에 초점을 둔 것이다. 자체 핵무장을 통해 강대국 지위를 굳히겠다는 드골의 결정은 결국 생존을 명분으로 한 국가 위상 높이기였다.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려 한 미국의 의도 역시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전략상 이견을 방지하고자 하는 정도였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 대외적으로 개방된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세계 금융·무역시장에 대한 의존도는 제재를 감수하면서 핵개발에 성공한 인도나 파키스탄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크다. 또 한국 사회는 과거의 냉전시대와는 달리 민주화·다원화에 대한 열망이 훨씬 크다. 자체 핵무기 보유 시도로 인해 생긴 국제적 불신은 가뜩이나 재처리 등을 제약받고 있는 원자력 기술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다른 대안이 모두 불가능할 경우 우리 역시 최종적 수단으로서 자체 핵무기 개발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핵무기에 대한 대응 태세 가운데 최우선순위로 놓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평양 향한 묵직한 메시지, 전술핵 배치
전술핵 배치는 북한 핵 위협 억제를 위한 세 가지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다. 북한의 공격에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다.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이 있기는 하겠지만 내심 그들도 전술핵이 자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 것이다. NPT 훼손 위험도 적고 뭣보다 '위협에 대한 공동 대처'라는 동맹 정신에도 부합한다. START에 위배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START는 보유 핵탄두 수 상한선(6000개) 등을 규정한 것으로 배치 지역을 제한하진 않는다. 더욱이 현재 미국의 유일한 전술핵으로 볼 수 있는 B-61 항공폭탄은 START가 규정한 상한선을 이미 감안한 것이다.전술핵 배치엔 세 가지 방안이 있다. 첫 번째는 미국 핵추진잠수함에 의한 대북 억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상정한 시나리오를 한미 간의 작전계획(작계)에 반영하고, 미군 핵 자산(전술핵 포함) 배치와 운용 경험을 연습·훈련을 통해 축적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도-태평양 지역 미군기지에 우선 전술핵을 배치하고 유사시 한반도에 긴급 배치하는 방안이 있다. 한반도 내 전술핵 상시 배치가 부담스럽다면 채택할 만한 방안이다. 마지막 대안은 상시 배치다. 많이 일컬어지고 있는, 이른바 '재배치'다.
세 가지 대안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시간과 여건, 그리고 북한 핵 위협 및 한반도 비핵화 여건에 따라 탄력적 조정이 가능하다. 첫 번째 대안에서 출발해 세 번째 대안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도 고려할 수 있다. 전술핵 배치와 함께 '핵공유(Nuclear Sharing)'가 이뤄진다면 더 안정적 대응이 가능하다. 전술핵 배치가 타격 수단 확보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공유는 플랫폼(전투기 등) 공유와 함께 핵전력 운영 관련 기획과 정책 수립 협의에 초점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단일 권한' 원칙에 대한 동맹국의 우려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전술핵 배치에 대한 미국 내 기류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를 통해 북한에 북핵 불용 의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현시점부터 전술핵 배치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준비 작업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을 전제한 작계 수립이다.
기초부터 다져야 나아갈 수 있다
올해 SCM에서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상정한 확장억제 수단 운용연습(TTX·Table-top Exercise)을 해마다 개최하기로 한 것은 분명 '확장억제'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TTX는 말 그대로 '탁상형 연습'이다. 실제로 핵 관련 자산을 이동·운용하는 훈련까진 하지 않는다. 작계는 유사시 동원될 전력을 규정하고 각 전력에 임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북한이 핵공격을 할 경우 어떠한 자산을 동원해 북한에 보복 타격을 가할 것인지 규정하는 것이다. 작계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원칙이 규정되고,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자산들이 배정돼야 전술핵 상시 배치 혹은 비상시 긴급 배치를 실현할 수 있다. 작계에 따라 연습 및 훈련을 실시하려면 실제 자산 전개도 연습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더 중요한 것은 기본에 충실한 접근이다. 동맹도 일종의 거래관계다. 미국의 핵 자산에만 의존하다 보면 한국은 비용이나 자율성 등에서 과도한 희생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3축 체계 등 스스로의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해 나가는 노력 역시 병행돼야 한다. 신뢰할 수 있는 재래 전력을 갖춰야 다양한 선택지를 통해 북한의 핵 사용 유혹을 봉쇄할 수 있고 지휘통제, 감시정찰(C4ISR) 부문에서 미국과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이 높아진다. 미국에는 동맹국으로서 한국의 활용 가치가 커짐을 의미하며 이는 한국에 미국의 안정적 안보 공약 이행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온다.
재래 전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선 한미 연합연습 및 훈련이 꾸준히,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필요에 따라선 확장돼야 한다. 북한의 핵 및 재래 위협에 대한 대비 태세가 바로 확장억제를 위한, 가장 기초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각종 트집을 잡으며 한미 연합훈련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착시(錯視)현상을 한국과 미국 사회에 만들어내려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기초적인 것을 지켜내야 더 진전된 확장억제가 가능하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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