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검사들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법조팀장
법이 모두에게 똑같이 엄정할 땐, 약자에게만 가혹해진다. 권력은 힘이 세다. 이들은 조사실과 법정에서만 다투지 않는다. 전문가를 동원하고 여론을 움직인다. 자신의 편을 중요한 자리에 임명하고 반대편을 솎아낸다. 이들을 상대로는 싸우기도, 이기기도 어렵다. 어려운 일을 피하면 남는 것은 쉬운 일뿐이다. 약자만 처벌하게 된다.
이런 부조리에서 ‘거악 척결’의 명분이 나왔다. 검찰은 거악 척결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내세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퇴임을 앞두고 대검찰청에서 제작한 ‘미국의 영원한 검사 로버트 모겐소’라는 책을 일선에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 책의 발간사에 “모겐소는 ‘거악에 침묵하는 검사는 동네 소매치기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외치면서 거악 척결을 강조했다”고 썼다. 그는 검찰총장 퇴임 하루 전인 2021년 3월3일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도 “로버트 모겐소에 대해선 글을 써도 10장은 쓸 수 있다. 미국 갑부들의 시세조종, 내부거래, 탈세를 검찰 수사로 엄단했다”고 평했다. 로버트 모겐소(모건소)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34년(1975~2009년) 동안 검사장으로 일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관할했던 그는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주가조작 범죄를 거악으로 보고 엄정한 수사를 이어가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의 아버지’라고도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범죄 유형과 대상이 모두 거악인 사건이 있었다.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이다. 검찰은 4년6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 17일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줬다. 윤 대통령과 로버트 모건소의 기준을 빌리자면 검찰은 이제 “동네 소매치기”도 상대하지 못하는 기관이 됐다.
검찰은 항변한다.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는 김 여사의 무혐의 결론을 내놓은 브리핑에서 “수사팀은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사건을 처리했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검찰은 지난 7월 김 여사를 검찰청이 아닌 대통령경호처 부속건물에서 조사했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김 여사의 ‘지위’를 고려했다. 같은 날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은 “현직 대통령 부인에 대한 대면조사는 처음이다. 저는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체의 다른 고려’가 없었다면 서울중앙지검 대부분의 검사실에서 날마다 이뤄지는 대면조사에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다. 검찰은 김 여사가 지닌 ‘권력’을 고려했다. 적어도 법조인이라면 얄팍한 ‘체면치레’를 위해 형사소송의 근간이 되는 ‘증거와 법리’를 팔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피의자에게 ‘이토록 친밀한 검사들’을 본 적도 없다. 김 여사는 검찰 스스로 이 사건의 ‘정점’이라 이르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친분이 두텁고, 1·2차 주가조작 ‘주포’를 모두 만났다. 하지만 검찰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한다. 김 여사의 통정거래가 의심되는 주식 매도에 대해서는 당시 호재가 나와서 주식 매도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봤다. 검찰이 언급한 호재는 주가조작 세력이 지어낸 ‘허위 호재’였다. 그래도 의심은 없었다. 김 여사에 대한 공감만 가득했다. 수사팀 중에 엠비티아이(MBTI)가 ‘티’(T)인 사람은 한명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검사를 싸잡아 비판하고 싶진 않다. 많은 검사가 하루를 쪼개 써가며 범죄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주목받는 사건들 밖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검사들이 있어 이 사회의 정의가 이만큼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망은 어쩔 수 없다.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는 검찰의 권한이 공격받을 때마다 북새통을 이룬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는 온갖 정의로운 가치들이 빼곡하게 담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모든 검사가 이 비극을 방조한 혐의를 벗기 어렵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어차피 소매치기를 잡지 못한다. 이젠 거악을 척결할 것이란 기대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존재하는가.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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