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 습격에 무방비…“명확한 진단·처방 필요해”
재해 양상 다양…심각성 커져
데이터 연계한 정밀연구 부족
일본처럼 실질적 지침 마련을
“피해 과실 규모가 90%에 이르는데도 명확한 원인과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말이 다 달라요. 내년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올여름 폭염으로 스펀지화·갈변화 피해가 심각했다는 경북 영천의 자두농가 정순이씨(76)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부터 스펀지처럼 퍼석퍼석해지는 과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올해는 전체의 80∼90%에서 스펀지화·갈변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피해율을 줄일 수 있는지 명확한 답변을 주는 곳은 없었다.
인근의 또 다른 자두농가 김주원씨(72) 역시 답답함을 토로했다. 폭염을 원인으로 추측하긴 하지만 명확한 원인도, 뾰족한 예방법도 알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도기관에서는 갈변화를 우려한 농가가 충분히 익지 않은 자두를 일찍 수확해 유통 중인 자두 품질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경험상 스펀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자두는 세포가 죽어버려 아무리 나무에 오래 달려 있어도 더이상 익지 않는다”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과일은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뚜렷한 답변을 들어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례적인 9월 폭염이 이어지는 등 이상기상 현상이 반복·심화되며 극한 기후가 빈번하게 나타난 가운데 기상 관련 연구와 농업 관련 연구가 연계되지 못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이상기상으로 농업 관련 재해의 양상이 다양해지고 심각성도 커지고 있지만 수치나 데이터와 연계한 연구 또는 현장 지도는 아직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대구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대구·경북 지역의 여름철(6∼8월) 평균 기온은 25.6℃에 달해 평년(23.6℃)보다 2℃나 높았으며 관측 기록이 시작된 197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열대야 역시 심각했다. 올 여름철 대구·경북의 열대야 일수는 14.2일로 역대 최다를 차지했다. 아울러 평균 폭염일수 또한 28.7일에 달해 역대 기록에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이같은 기상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이런 기상 상황이 농업분야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정밀연구가 부족하단 점이다. 예를 들어 야간 온도가 30℃를 넘는 열대야가 얼마 동안 지속되면 작물에 직접적으로 어떤 피해를 주는지, 고온장해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은 언제인지에 대한 연구 등이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었던 경북 고령의 오이농가 김정동씨(54)는 “시설하우스 내부에 물이 가득 찼다가 빠지면 오이가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미리 수확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달려 있는 오이에는 문제가 없지만 뿌리가 약해져 앞으로 나올 오이는 기형과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개별 사안마다 농가 경험에 의존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정밀연구의 부재는 농작물재해보험 보상의 근거 부족도 야기한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폭염·폭우 등에 따른 농작물 피해 신고가 잇따랐지만 실제 보상으로는 이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경북 성주에서 참외를 재배하는 한 농가는 “올초 일조량 부족은 거센 요구 끝에 힘겹게 재해로 인정받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농가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재해를 보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연구결과를 통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일본은 이미 이같은 정밀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주요 과일·채소 산지들이 최근 ‘비가 ○일 동안 내리지 않으면 관수가 필요하다’ ‘야간 온도가 ○℃ 이하면 피복이 필요하다’는 안내를 제공하거나 기상 조건과 농산물의 생육 관계를 분석하는 정밀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농업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농협(JA)이나 지방자치단체 소속 연구기관들은 최근 실제 기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사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지가 영농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고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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