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의 칼 끝에서 피어난 국내 최초의 잉크, 국가의 지폐를 담다
1945년 광복의 그 해, 함경남도 함흥 출신의 청년 한정대(1920년생)는 서울 회현동에 작은 공장을 세웠다. 일본 오사카 공업고등학교에서 응용화학을 배우고 후지화학연구소에서 일한 그의 화학 지식이 모두를 빛냈다. 대한오브세트잉크제조공사, 이것이 노루페인트의 첫 이름이었다.

당시 나라를 벗어난 일본인 기술자들의 공백은 절망적이었다. 광복의 기쁨에 출판물이 쏟아졌지만 정작 책과 신문을 인쇄할 잉크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정대 회장은 자전거에 원료 바니시를 싣고 공장으로 달렸고, 뚝섬의 채소밭을 임차해 새로운 생산 설비를 갖췄다. 전기는 하루 3시간 정도만 나오고 수돗물도 없던 당시, 그는 주민들과 함께 우물물을 긷고 부산 동래에서 끓인 바니시를 짊어지고 온 직원들을 통해 잉크를 만들었다. 이렇게 생산된 잉크는 화폐와 교과서에 80% 이상을 차지했다.
국내 최초의 잉크 제조업자인 한정대는 국가의 지폐를 인쇄하는 한국조폐공사에 자신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했다.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 경제의 기초를 세우려는 기업가 정신이 스며있었다.
>>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발전을 멈추지 않다
전쟁이 터졌다. 한정대 회장의 회사는 폐허가 되었지만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1950년대 초반부터 그는 인쇄잉크의 한계를 인식했다. 같은 원료와 제조기술을 쓸 수 있는 페인트로 사업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1953년, 전쟁 중임에도 정부의 산업 부흥 정책이 시작되자 한정대 회장은 직접 유럽과 미국으로 산업 시찰을 떠났다. 이 여행에서 그는 인생을 바꿀 그림 한 점을 마주쳤다. 서독 본의 미술관에서 본 고고한 노루의 그림이었다.
"유순한 동물 노루처럼 사랑받는 회사로 키워야겠다."
1957년 8월, 노루표 상표가 탄생했다. 남을 해치지 않으면서 만인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발전하는 회사를 꿈꾸는 철학이 담긴 이름이었다. 이 상징 하나가 대한민국 도료 산업 전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 1970년대 고도 성장의 시대, 높은 건물 위로 올라가다

1960년대 정부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시작되면서 노루페인트는 건축용 도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건설이 본격화되자 노루페인트는 국내 최초로 고층 아파트에 도장을 공급했다.
1970년대는 노루페인트의 황금기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석유화학 육성책,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최, 조선업의 급성장, 그리고 중동 건설 붐이 겹쳤다. 노루페인트는 이 모든 프로젝트에 그 이름을 새겼다.
1988년 4월, 한정대 회장의 장남 한영재가 경영을 물려받았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보스턴대학교 MBA를 나온 그는 보다 체계적인 경영과 기술 혁신으로 회사를 이끌기 시작했다.
>> 세계가 인정한 기술력, 191,000병의 자금성 페인트

1993년 12월, 중국 자금성 개원 70주년 복원 사업이 진행되었다. 600년을 이어온 동양의 자부심, 자금성을 새롭게 단장할 페인트를 찾는 국제 입찰이 공고되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세계적 브랜드들이 샘플 시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오직 노루페인트만이 기준을 통과했다. 영국 합작회사의 페인트는 도막 박리 현상이 발생했지만, 노루페인트는 완벽했다. 중국 고궁박물원은 즉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량은 180리터 기준 191,000병이라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후 노루페인트는 2002년 심양 옛 궁궐 복구에, 2005년 자금성 재복구에 다시 선택되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페인트의 진가가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 국내 최초의 기술 성취들, 페인트 업계 표준을 세우다
노루페인트는 기술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1957년에는 국내 최초로 KS마크를 획득했고, 아시아 최초로 미국 연방 규격(US Federal Standards)을 취득했다. 이들 인증은 모두 제품의 우수한 품질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영재 회장이 경영을 맡은 이후, 노루페인트는 특허 353건을 등록하며 페인트 업계 최다 특허 기업이 되었다. 수성, 유성, 우레탄, 불소계 도료 등 각종 제품군에서 혁신이 이루어졌다.
>> 미래를 칠하다: 환경 친화와 방산 기술
최근 노루페인트의 기술 영역은 대폭 확장되었다. 톱밥과 볏짚 같은 농림축산 부산물에서 추출한 생물 자원 40% 이상을 사용한 바이오페인트는 미국 농무부(USDA) 친환경 인증을 국내 최초로 획득했다. 탄소 중립 시대에 발을 맞춘 노루페인트의 도전이었다.
2025년 5월, 노루페인트는 더욱 놀라운 기술을 공개했다. 스텔스 도료(RAM-1500)로 명명된 이 기술은 항공기, 무인기, 함정 등에 도포되어 레이더 탐지를 피하게 돕는 페인트다. 레이더 전파의 90% 이상을 흡수하면서도 기존 제품 대비 무게를 20% 줄였다. KF-21 전투기와 차세대 구축함 등 한국형 무기체계에 적용될 이 기술은 방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 80년을 지나며 선택한 길
노루페인트는 광복 직후부터 선택한 "한 우물 파기"를 여전히 실천하고 있다. 2022년에 ESG 경영을 선도하며 A등급 평가를 받았고, 99건의 친환경 인증을 보유한 페인트 업계의 기술 선도자가 되었다.
포비든 시티를 칠한 페인트 회사, 지폐를 인쇄한 창업 세대의 정신, 그리고 미래 전투기에 들어갈 첨단 도료까지. 창업주 한정대가 자전거에 싣고 달리던 바니시에서 시작한 색채 여정은 대한민국 80년의 산업 발전과 정확히 겹친다. 세계가 인정한 노루페인트의 역사는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산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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