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와 여행] 시속 300㎞ 승객 900명…기장은 기도한다 ‘오늘도 무사히’
서울발 부산행, 무전기 등 장비 챙겨
꼬리칸부터 차례로 살피며 운전실로
역사·터널마다 적절한 운행속도 달라
관제탑과 소통하며 재빨리 상황 판단
달리는 2시간48분 동안 긴장의 연속
운행기록·선로상황 빠짐없이 기록해
일지 넘기고 나서야 안전운행 ‘완성’

역과 역을 오가는 열차.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반복되는 일터고, 누군가에게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설렘의 출발점이다. 철도의 날(28일)을 앞두고 시속 300㎞ 고속열차(KTX)를 운행하는 기장과 동행하고, 백두대간 협곡열차에 올라 장엄한 풍광도 감상했다. 열차 이용객을 위한 꿀팁 등도 알아봤다.
15일 오전 5시, 어스름이 채 걷히기 전이지만 서울역사엔 생기가 돈다. 채비를 마치고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 사이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조재열 기장(46)이 걸어온다. 5시27분 부산행 KTX(003)를 운전하러 가는 길이다. 코레일 부산경남본부는 부산을 거점으로 서울, 대구, 경북 포항, 경남 김해를 오가는 열차를 운행한다. 소속 기관사는 석달마다 노선 일정이 바뀌는데 이달 조 기장이 맡은 구간은 서울-부산이다. 전날 밤 늦게 부산에서 KTX를 몰고 올라왔다가 휴식 후 내려가는 일정이다. 타지 합숙소에서 숙박하는 건 다른 지역에 있는 목적지를 수시로 오가는 열차 기관사에게 흔한 일이다.

KTX 기장은 열차 승무원 책임자로, 3년차 이상 기관사를 말한다. 조 기장은 올해로 4년째 KTX를 운행하고 있다. 한국교통대학교(전 국립철도대학)를 졸업하고 2002년 입사 후 부기관사, 철도 교육 강사 등으로 근무하다 2019년 기관사로 발령받았다. 열차를 운전하려면 다른 탈것과 마찬가지로 면허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면허증을 따는 일이 만만찮다. 자격시험 응시 조건부터 갖춰야 한다. 공인기관에서 교육받아야 하고 그중 고속열차는 실무 경력과 제1·2종 전기차면허를 하나 이상 소지해야 한다.
이날 조 기장이 운행할 부산행 열차는 모두 18객실. 플랫폼 가장자리를 따라 걸으며 꼬리 칸부터 차례대로 열차 번호, 목적지, 객실 번호를 확인한다. “객차 하단에 차량 정보를 나타내는 편성 번호가 적혀 있어요. 운전실까지 가는 길에 하나씩 확인합니다. 그사이에 오늘도 무사히 운행을 마치기를 속으로 빌면서요.”
플랫폼의 맨 끝, 승객은 갈 수 없는 자리에 다다랐다. 조 기장은 익숙하게 안내선을 건너 열차 맨 앞칸 운전실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선다. 배전반을 지나쳐 운전석, 복잡한 계기판 앞에서 능숙하게 버튼을 누르며 차량 상태, 제동 기능, 객차 연결 상태 등을 차례로 확인한다. 운전석 앞에 설 때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인 만큼 움직임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이어 가방을 열고 내비게이션인 지코비 전원을 켠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길찾기 기능 대신 시시각각 달라지는 역사·철로 상황과 시간표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떠 있다.

출발 15분 전, 조 기장이 전 객실 문을 열자 승객들이 하나둘 올라탄다. 객실 안전을 책임지는 열차 팀장과 무전 교신을 끝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KTX가 운행을 시작한다.
KTX는 시속 300㎞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48분이면 닿는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철로 위를 달리는 일이라고 해서 운전이 쉬울 리 없다. 만차 기준 900명이 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려면 단 몇 초도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운전실에는 안전을 위한 다양한 장치가 마련됐다. 특히 급정차 기능이 많다. 예컨대 운전 경계 장치에 2.5초 동안 손을 접촉하지 않으면 경고음이 울리며 정차하는 식이다. 55초 이상 계속 접촉하고 있어도 마찬가지. 시간에 맞춰 손을 대고 떼기를 반복해야 한다. KTX는 1초에 83.3m, 10초면 거의 1㎞를 이동하니 문제가 생기면 곧장 멈춰야 한다. 선로에서 제공하는 정보도 살펴야 한다. 여름철 선로 온도가 너무 높아 알림이 오면 역에서 정차 시간을 연장하거나 심할 경우 열차를 바꾸기도 한다. 관제탑과 소통하며 안전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날처럼 이른 새벽에 운행을 시작하는 날이면 졸음과의 싸움도 중요한 업무다. “보통 퇴근과 출근 사이 15시간 휴식 시간이 보장됩니다. 그런데 일정에 따라 오늘처럼 충분치 못할 때도 있어요. 사람인지라 졸리기도 하죠. 그럴 땐 진한 커피를 마시고 껌이나 사탕을 챙깁니다.”
철로 위에선 추월이나 선로 변경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관사의 운전 실력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답은 ‘선로를 얼마나 잘 아느냐’다. 열차를 운전할 때 정차나 서행 등 신호가 주어지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관사가 상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역사마다 몇 ㎞ 앞에서 서행해야 하는지, 어떤 터널에선 어느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모두 기관사 재량이다. 조 기장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터널이 90개 있는데 위치나 길이를 모두 외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열차는 종착역인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8시15분, 열차는 멈췄지만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역사 내 사무실에 들러 운행 일지를 써야 한다. 기관사는 퇴근해도 열차는 퇴근이 없으니, 뒤이어 근무할 이를 위해 운행 기록과 선로 상황을 빠짐없이 기록해둔다. 내비게이션·무전기 등 장비를 반납하고 유니폼까지 벗어두고서야 진짜 퇴근이다.
“열차가 부산에 다다르면 20㎞가 넘는 금정터널을 지나갑니다. 터널에서 나가면 절이 보이는데 그때마다 다시 한번 ‘오늘도 무사히 운행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KTX 기장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건 결국 안전운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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