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군포] 그림책으로 잇는 배수지의 시간, 그림책꿈마루
전국 유일 그림책 복합문화공간(라키비움)
‘오랜 흉물’ 배수지의 시간 단절 없이 이어
그림책 독서부터 전시, 공연, 각종 체험까지
1991년 1기 신도시인 산본신도시가 개발되면서 군포지역 안팎엔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생활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안양 포일정수장에서 물을 끌어왔고, 그렇게 가져온 물은 금정동 배수지에 보관했다. 그러나 1993년 군포 정수장이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더 이상 전처럼 포일정수장에서 가져온 물을 보관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게 20년이 넘게 흘렀다.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은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오랜 기간 흉물로 방치됐다.
전환점은 2017년 마련됐다. 당시 경기도는 지역을 발전시킬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오디션 형태로 제안받아 해당 시·군에 비용을 지원했는데 2017년 군포시가 해당 건물을 그림책 도서관으로 탈바꿈하는 방안이 ‘넥스트 경기 창조 오디션’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2017년 군포시가 경기도에 제안했던 내용에 따르면 군포지역 일대는 1980년대부터 미술모임 ‘산’, 그림사랑동우회 ‘우리그림’ 등 여러 민중미술 활동이 전개됐던 곳이다. 이런 역사를 토대로 군포·안양·의왕·과천 등 경기 중부권에서 활동하던 이억배, 정승각, 김재홍 등 국내 1세대 그림책 작가들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기도 했다. 군포시가 그림책에 주목한 이유다.
이를 통해 무려 100억원의 특별조정교부금을 경기도로부터 받게 된 군포시는 그림책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라키비움)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림책꿈마루’다. 전국적으로도 이런 공간은 유일무이하다. 지난해 9월1일 문을 연 후 8개월여가 지났다.
그림책꿈마루는 군포시청 바로 옆에 있다. 철쭉동산만큼이나 높은 언덕을 올라야 한다. 헉헉대며 언덕을 오르니 한 눈에 봐도 모던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마치 교외에 위치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와 같은 외관이었다. 건물은 높지 않고 가로로 긴 형태였는데 지상 1층, 지하 1층, 지하 2층으로 구분돼 있었다. 지하 1층엔 그림책 도서관과 전시실 등이, 지상 1층엔 카페와 정원 등이 조성돼 있었는데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모두 연결돼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물이 끊기지 않고 흘렀던 배수지의 모습을 그림책꿈마루에도 담은 듯 했다.
내부는 널찍했다. 편히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위치해 외관뿐 아니라 내부 역시 마치 한적한 대형 카페와 같은 분위기였다. 그림책 도서관이라는 특성상 엄마와 아이가 도란도란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밤 10시까지 문을 열다보니 저녁 무렵 산책을 겸해 이곳을 찾아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도 계속 이어졌다. 저마다 그림책을 읽다가 카페 공간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그림책꿈마루 일대를 느릿느릿 걸었다.
#이런 그림책도 있었어? 다채로운 그림책 천국…다양한 전시·교육 프로그램도 눈길
그림책꿈마루 지하 1층은 크게 그림책 도서관과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도서관 내부는 신발을 벗고 편하게 앉아 놀이를 겸하며 아기와 그림책을 볼 수 있는 공간, 계단 형태의 널찍한 좌석에 빈백을 설치한 공간 등 독자들의 다양한 특성을 고려한 듯 여러 공간으로 구성돼있었다. 무엇보다 (매우 당연하게도) 그림책이 정말 많았다. 역사, 자동차, 기술과학, 환경 등 분야를 망라한 각국의 그림책들이 빼곡히 꽂혀있었다. 세계 그림책 관련 주요 대회에서 수상한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전시 공간은 상설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로 구분돼 있었다. 상설 전시실엔 그림책의 역사와 국내·외 그림책사(史)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군포시로 매일 출근한 지난 한 달간 그림책꿈마루에 두 차례 방문했는데, 이 기간 그림책꿈마루 특별 전시실에선 연천 출신인 생태화가·동화작가 이태수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 ‘늦은 날개 짓, 새잎 틔우다’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무당벌레나 황조롱이 등을 선 하나하나 매우 세밀하게 표현해 해당 생물이 지닌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게 이태수 작가 그림책의 특징이다.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와 ‘알록달록 무당벌레야’ 두 가지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전시해, 이야기를 따라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황조롱이 이야기는 2001년 봄 산본신도시에 둥지를 튼 황조롱이 가족의 모습을 토대로 그려낸 것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다소 날갯짓이 늦었던 막내 황조롱이가 부모의 응원에 힘입어 마침내 하늘을 날았을 때의 벅찬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밖에 그림책 관련 상설 교육을 실시하거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그림그리기 대회나 그림책 내용을 주제로 한 공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단연 전국 유일의 그림책 복합 문화 공간이다.
#배수지의 물은 계속 흐른다
군포시는 그림책꿈마루 조성을 경기도에 제안했을 때부터 배수지의 시간을 그림책으로 잇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질의 물을 저장해 각 가정에 배분하던 과거의 배수지에서, 양질의 그림책을 저장해 지역 전반에 나눠 문화를 꽃피우는 미래형 배수지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에 그림책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훌륭히 기능하고 있는 것에 더해, 건물 곳곳에도 배수지의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한 옛 흔적을 남겨뒀다.
건물 한가운데에 위치한 하늘색 기둥이 대표적이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곳에 하늘색 기둥이 우뚝 서있었는데, 지난 23일 오후 이 곳을 찾았을 때 햇빛이 해당 공간을 통해 들어와 건물 내부를 환히 밝힌 채였다. 1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엔 물이 모이던 집수정을 형상화한 공간이 있다. 투명 아크릴판 바닥 아래로 끊임없이 물이 흐르듯 푸른 일렁임이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도서관 내부에 고스란히 남은 배수지의 흔적에서도 햇빛이 들어와 공간을 밝혔다.
1층 카페 공간은 웬만한 유명 카페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내부는 식물이 가득해 푸릇푸릇하고, 외부 역시 그림책꿈마루를 둘러싼 나무들이 울창하다. 작은 정원엔 방갈로와 그네, 테이블 등이 놓여있다.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잠시나마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이 같은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작지만 큰 행복이다.
카페에선 군포의 상징인 철쭉색 에이드를 판매한다. 이른바 ‘판타스틱 철쭉에이드’다. 레몬청을 넣었는데 빨대로 저으면 철쭉의 분홍빛을 볼 수 있다. 비결이 궁금하다.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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