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엘팬알백] ⑲1990년 우승의 터닝포인트…선발 김용수-마무리 정삼흠 보직변경

“이봐, 삼흠이. 마무리 한번 해봐.”
1990년 5월, LG 트윈스 백인천 감독은 그해 선발투수로 활약하던 정삼흠을 덕아웃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마무리투수 전환을 권유했다. 정삼흠은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감독님, 저는 선발이 좋습니다. 그냥 선발 시켜주십시오.”
정삼흠은 손사래를 쳤다. 시즌 도중의 보직 변경도 당혹스러웠지만, LG 팀 내에는 우리나라 최고 마무리투수 김용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야이 짜샤, 감독이 하라면 하는 거지. 말이 많아.”
백 감독은 정삼흠의 허리춤에 있는 벨트를 잡아당겼다.
“시즌 전에 감독님하고 내기 한 것도 있고, 사실 저는 구단과 연봉계약을 할 때 선발승에 옵션도 걸었습니다.”
정삼흠이 말한 내기 조건은 ‘10승’이었다. 백 감독이 1990시즌에 앞서 김태원에게도 그랬지만 정삼흠에게도 10승을 달성하면 골프채와 용돈 5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10승을 달성하지 못하면 정삼흠이 50만 원을 백 감독에게 주는 조건이었다.
백 감독은 다시 한번 정삼흠의 허리춤을 잡더니 “감독이 하라면 하는 거야”라며 웃었다.
“그럼 마무리투수는 10승을 하기 어려우니 3세이브를 2승으로 쳐 주세요. 구단에도 제 옵션 조건에 3세이브를 2승으로 간주한다는 걸 관철시켜주세요.”
정삼흠은 반대급부의 조건을 내걸며 웃었다.
백 감독이 5월에 이처럼 선발투수 정삼흠을 마무리투수로 전환하려고 한 까닭은 특급 소방수 김용수의 부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19번째 주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1990년 김용수의 선발 전환과 정삼흠의 마무리투수 도전 이야기다.
‘면도날’ 김용수와 ‘부엉이’ 정삼흠. 훗날 LG 트윈스 역사상 ‘유이한’ 100승 투수로 성장하는 핵심 투수들이다.
그런데 1990년 시즌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에 이들의 보직 변경은 모험수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6월 4일까지 꼴찌였던 LG가 반등하는 결정적인 승부수로 작용한다. 그러면서 LG는 시즌 후반에 치고 나가 서울 팀 최초 우승이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

◆LG 최초 승리투수 훈장…김용수의 산뜻한 1990년 출발
김용수는 1985년 5월말 뒤늦게 MBC 청룡에 입단한 뒤 이듬해인 1986년부터 KBO 최고 전문 마무리투수로 활약해 온 투수였다.
키 176㎝에 몸무게 72㎏의 왜소한 체격. 그러나 시속 140㎞대 초반부터 마음만 먹으면 중·후반대까지 찍히는 빠른 공을 던졌다. 특히 포수가 미트를 대는 곳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찌르는 핀포인트 커맨드를 자랑했다. 그래서 별명도 ‘면도날’이었다.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였지만 과감한 몸쪽 승부와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타자들을 압도했다.
1989년까지 26승과 85세이브를 거뒀고, 1986년과 1987년, 1989년 세 차례나 구원왕에 오르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자리 잡았다.
1990년 개막 후 두 번째 등판까지만 해도 건재를 과시했다. 앞서 [엘팬알백] 17회와 18화에서 설명했듯이, LG는 OB와 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2연패를 당한 뒤 4월 10일 잠실 태평양전에서 연장 14회말 민경삼의 끝내기 안타로 역사적인 첫 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김용수는 4-4 동점이던 6회초 1사 2루에서 구원등판했는데 경기가 연장 14회까지 치달으면서 선발 김태원(5.1이닝)보다 훨씬 많은 8.2이닝을 던졌다. 투구수도 127구. 웬만한 선발투수 이상으로 던지면서 1실점 구원승을 올렸다. LG 트윈스 역사상 최초의 승리투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다음 열흘 동안 쉰 뒤 4월 21일 잠실 빙그레전에 구원등판해 2이닝 1안타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챙겼다. 그 사이 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등판 기회가 없었다.

◆‘특급 소방수’ 김용수 뜻밖의 부진…LG는 꼴찌 추락
그런데 그 이후 김용수는 원인 모를 부진에 빠지게 된다.
4월 24일 인천 태평양전. 6회까지 LG 김태원과 태평양 양상문의 숨막히는 투수전으로 0-0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특히 김태원은 7회 2사까지 사구 1개만 허용한 채 노히트노런의 완벽한 투구를 펼치다 태평양 신인 4번타자 김경기에게 좌월 2루타를 내주는 바람에 대기록이 무산됐다. 이어 2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2사 만루 위기에 몰리자 백인천 감독은 김용수를 호출했다.
여기서 김용수는 김윤환에게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맞았고, LG는 결국 양상문의 완봉투에 눌려 0-3으로 패하고 말았다. 실점과 패전은 김태원에게 돌아갔지만, 위기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김용수는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특급 소방수도 1년에 몇 차례 이런 상황을 겪는다. 예년의 김용수라면 바로 다음 경기에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털고 일어섰다.
그런데 다음 등판에서도 승리를 날렸다. 4월 29일 잠실 해태전. 3-2로 앞선 6회초 2번째 투수 차동철이 무사 2·3루 위기에 몰리자 일찌감치 구원등판한 김용수는 해태의 무명 대타 김태완에게 2타점 중월 2루타를 맞았고, LG는 5연패에 빠지고 말았다.
5월이 시작됐지만 김용수는 여전히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5월 8일 잠실 OB전에서 3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세이브를 수확했다. 4월 21일 잠실 빙그레전에서 시즌 첫 세이브를 올린 뒤 17일 만에 모처럼 맛 본 세이브였다.
하지만 그 이후 또 다시 불안한 행보. 5월 14일 잠실 해태전에서는 5회 2사 1·2루 위기에서 등판해 호투하다 연장 10회초 2실점하면서 시즌 처음 패전투수가 되기도 했다.
급기야 5월 22일 잠실 롯데전에 임시선발로 변신해봤지만 4.2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 5월 30일 인천 태평양전에서는 구원등판해 3이닝 3실점(0자책점)으로 패전투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개막 이후 5월말까지 10경기에 등판해 2구원승 3패에 단 2세이브만 올리고 있었다.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 그동안 봐온 김용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LG는 6월 3일 태평양전 0-5 패배로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앞서 [엘팬알백] 18화에서 설명했듯이 팬들이 잠실구장 중앙 출입구에 진을 치고 청문회를 요구한 날이다.
1990년 LG 트윈스가 6월초까지 최하위로 추락한 데에는 여러 요인을 꼽을 수 있지만, 그중 김용수의 예상치 못한 시즌 초반 부진 또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가면 얻어터지니까 저도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당시 벤치에 앉아 있기도 민망하더라고요. 선수들한테도 미안하고, 코칭스태프에도 미안하고…. 저도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김용수는 1990년 초반 부진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부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부상은 없었어요. 제가 당시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 투수였으니까 상대가 알고 치는 느낌이었어요. 구속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아픈 데도 없는데 나갈 때마다 안 되니…. 쿠세(투구습관)를 들켰나 싶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었어요.”

◆‘부엉이’ 정삼흠도 선발-중간 오가며 흔들
정삼흠. 명지고와 고려대를 나와 1985년 1차지명을 받고 입단한 투수. 안경을 쓴 모습이 부엉이를 닮았다고 해서 ‘부엉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입단 첫해 9승12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3.13의 성적을 올리면서 깜짝 활약을 펼쳤지만, 그 이후 MBC 청룡 시절 부상과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올렸다. 팀 전력이 약한 데다 승운이 안 따른 측면이 있었다. 예컨대 1987년 33경기에 등판해 2.8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6승13패, 2세이브에 그쳤으니 말이다. 한번도 10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 시절 투수 중에는 비교적 큰 키(185㎝). 힘도 좋고, 어깨도 튼튼하고, 제구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포수에게 공을 받자마자 인터벌도 없이 바로바로 던지는 시원시원한 피칭이 전매특허였다. 등판하는 날에도 불펜에서 공 3~4개만 던진 다음 곧바로 타자를 상대할 정도로 팔이 빨리 풀리는 투수였다.
이런 특·장점을 보면 마무리투수로도 제격이었다. 하지만 LG 팀 내에선 김용수라는 최고의 마무리 카드가 있었다. 백인천 감독은 그래서 지휘봉을 잡자마자 정삼흠을 일찌감치 선발투수감으로 보고 “10승을 하면 골프채와 용돈 50만 원을 주겠다”는 당근책을 쓰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삼흠도 1990시즌 초반부터 패가 잘 풀리지 않았다.
개막 두 번째 경기인 4월 9일 잠실 OB전에 선발등판해 8이닝 5실점으로 완투패를 한 것을 시작으로 4월말까지 선발과 구원을 오갔지만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못 던졌다기보다는 운도 없었다.
5월 6일 잠실 롯데전에서 팀의 6연패를 끊기 위해 8회초 1사 2루서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8회말 터진 김상훈의 적시타로 뒤늦게 시즌 첫 승(구원승)을 올렸다.
“감독님이 1990년 시작할 때는 선발로 못을 박으셨는데 제가 몸이 빨리 풀리니까 선발과 선발 등판 사이에 구원으로 대기하라고 하셨어요.”
정삼흠은 1990년 시즌 초반을 돌아보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보통 선발투수들은 5일 로테이션으로 돌아갈 때 3일째 되는 날 불펜피칭을 하고, 하루 쉰 다음에 선발등판하잖아요. 저는 선수 시절 불펜피칭을 안했거든요. 그냥 당일에 공 몇 개만 던지면 몸이 풀렸으니까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선발등판 후 3일째 되는 날 불펜피칭 대신 실전에서 던지게 하신 거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 구원등판하는 일이 잦아졌어요. 조금 위기다 싶으면 감독님이 ‘야, 정삼흠 대기해’라고 하셨고, 저도 점퍼 벗고 불펜에서 공 몇 개 던지고 바로 마운드에 올라가곤 했죠. 그땐 모든 구장에 불펜이 외야에 있지 않고 덕아웃 옆에 있었거든요.”

◆LG 탈꼴찌 후 8연승…정삼흠과 김용수의 보직이 교차되는 지점
6월 3일까지 OB와 꼴찌를 주고받던 LG는 6월 5일 광주에서 열린 해태와 더블헤더에서 반등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 전까지 그해 해태에 4전 전패를 당하다 이날 더블헤더를 독식하면서 탈꼴찌에 성공했다. 정삼흠이 제1경기에 2회부터 구원등판해 9회까지 던지며 구원승을 올렸고, 더블헤더 제2경기에서는 김태원 선발(6이닝 2실점 1자책점)~김용수 세이브(3이닝 2실점 0자책점)로 모처럼 연승을 거뒀다.
LG는 이날부터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모했다. 광주 3연전을 싹쓸이하더니 롯데, 삼성, 태평양을 만나 연전연승. 6월 13일 잠실 태평양전 5-2 승리로 창단 후 최다연승인 8연승을 질주했다.
2군으로 강등됐다 돌아온 최일언이 5.2이닝 2실점으로 시즌 2승째를 수확했고, 정삼흠이 6회부터 구원등판해 3.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시즌 2세이브째를 따냈다.
LG는 시즌 22승22패로 5할 승률을 맞췄다. 팀 순위도 단독 5위로 상승했다. 4위 해태에도 1게임차로 따라붙었다.
사실 이 8연승 과정에서 상징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6월 11일 잠실 삼성전. LG가 2-1로 앞선 가운데 김용수는 이날도 8회초 등판해 부진한 투구를 이어갔다. 선두타자 류중일에게 좌전안타, 2번타자 홍승규에게 볼넷을 내주며 무사 1·2루. 여기서 박승호에게 우전 적시타를 맞았다. 2루주자 류중일은 득점에 성공했고, 그 사이 1루주자 홍승규가 3루까지 달리다 아웃됐다. 가까스로 아웃카운트 1개를 잡았지만 2안타 1볼넷 1실점으로 동점을 허용한 부분이 뼈아팠다.
그러자 백인천 감독은 급하게 김용수를 내리고 정삼흠을 마운드에 세웠다. 여기서 정삼흠은 1.2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구원승(시즌 4승)을 수확했다.
최후의 보루 김용수 뒤에 정삼흠이 등판한 상황. 이렇게 둘의 순서가 교차되는 장면은 어쩌면 둘의 역할 변경을 암시하는 복선이었는지 모른다.

●김용수 1군 엔트리 제외 ‘특훈’…LG 전반기 최종전 이병훈 끝내기안타로 극적인 4위 도약
6월 12일 잠실 태평양전. 재일교포 잠수함투수 김신부가 2군에서 복귀해 선발등판하면서 7이닝 무실점로 호투했다.
그런데 LG가 2-0으로 앞선 가운데 이날 8회에 구원등판한 투수는 김용수가 아니었다. 정삼흠이 마운드에 올라 2이닝 2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첫 세이브를 따냈다.
다음날인 6월 13일 잠실 태평양전에서도 정삼흠이 마무리로 나가 3.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세이브를 수확했다. 6월 11일 이후로 따지면 3일 연속 구원등판해 1승2세이브를 올렸다.
백인천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언론 인터뷰에서 “정삼흠 본인은 선발을 원하는데 내가 봤을 땐 구원으로 나가는 게 훨씬 좋아”라고 말했다.
이 말의 행간을 보면, 아직은 정삼흠과 김용수에게 정식으로 보직 변경을 설명하지 않은 상태지만 백 감독은 은연 중에 정삼흠의 마무리투수 실험에 돌입한 모양새였다.
정삼흠은 이어 14일 태평양전(4.1이닝 1실점)까지 구원등판해 4일간 11.1이닝을 던졌다. 요즘은 상상할 수 없는 4연투. 여기서도 정삼흠은 스태미너를 과시했고, 백 감독은 연투도 문제없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김용수는 6월 11일 잠실 삼성전 등판 이후 16일 동안 1군 마운드에 서지 않았다. 이 즈음 백인천 감독은 김용수에게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러닝훈련을 시켰다. 이른바 특훈(특별훈련)이었다.
특히 ‘폴대폴 훈련’은 죽음의 코스. 잠실구장 좌측 파울폴에서 우측 파울풀까지 펜스를 따라 달리면 거리가 150m 가까이 된다. 왕복이면 거의 300m인데 1분 이내에 달려야 했다. 그걸 20차례 해야 하루 러닝훈련이 끝났다. 왕복 1분 이내에 들지 못하면 무효로 처리하고 다시 뛰어야만 했다.
그 사이 정삼흠이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해 3세이브를 추가하고 있었다. 사실상 마무리로 테스트를 받는 기간이었지만 정삼흠은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안정적인 클로저의 모습을 보였다.

김용수는 6월 28일 전반기 최종전인 잠실 빙그레전에서야 1군에 등판할 수 있었다. 6월 11일 이후 무려 17일 만이었다.
빙그레는 전반기 1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 LG는 선발투수 문병권부터 시작해 김기범~정삼흠~이국성~김신부~유종겸에 이어 9회에 김용수 등 총 7명의 투수를 쏟아붓는 총력전을 펼쳤다.
9회까지 6-6 무승부. 연장 10회초 김용수가 빙그레 9번타자 조양근에게 적시타를 맞아 1점을 내줬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 하지만 연장 10회말 역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선두타자로 나선 9번 나웅이 우전안타로 나갔다. 그런데 노장 신언호의 2루수 쪽 땅볼 때 타구에 맞아 아웃되는 바람에 찬스가 무산되는 듯했다. 이때 박흥식의 재치있는 3루수 쪽 번트안타와 송진우의 2루 견제 악송구가 이어지면서 1사 2·3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등장한 루키 이병훈. 그해 김동수와 함께 1차지명을 받은 거포 유망주였다. 이병훈은 송진우의 5구째를 통타해 우익수 황병일의 머리 뒤로 넘어가는 장쾌한 타구를 날렸다.
역전 끝내기 2타점 2루타! 잠실구장을 찾은 LG 팬들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열광했다.
전반기 최종전의 끝내기 승리는, 후반기 최종전에서 더 극적인 끝내기 승리를 연출하기 위한 리허설이었는지 모른다.
패전투수 위기에 몰렸던 김용수는 승리투수가 되면서 기분을 전환했다. 4월 10일 LG 트윈스의 최초 승리투수가 된 뒤 79일 만에 시즌 2승째를 따냈다.
LG는 6월에만 15승6패(승률 0.714)의 놀라운 상승세를 탔다. 이로써 전반기를 28승26패 4위로 마감했다.
6월 4일(경기 없는 월요일)까지 순위표에서 맨 아래에 있던 팀이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기적의 레이스. 시즌 개막에 앞서 “4위 안에 들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겠다”던 백인천 감독의 목표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후반기 김용수 선발, 정삼흠 마무리 공식 임무교대
“야, 김용수. 넌 후반기부터 선발 해.”
백인천 감독은 전반기가 끝난 뒤 김용수에게 선발로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MBC 청룡 시절 가끔 선발로 나서기도 했지만 공식적으로 보직을 선발로 변경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했어요. 하지만 이것은 감독의 권한이니 제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 저는 체력이 약해서 MBC 청룡 시절부터 강훈련을 받는 게 싫었어요. 그런데 1군 엔트리에 들어가지 않고 강도 높은 러닝훈련을 매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훈련의 중요성을 깨달은 거죠. 그때 훈련 습관이 바뀌면서 선수생활 마지막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했던 것 같아요.”
김용수는 당시를 돌이키며 위기의식도 느꼈다고 했다.
“그때 선발로도 실패하면 난 선수로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선발로 성공하지 못했으면 아마 단명했을 거예요. 그런데 선발을 해보니 한 번 던지고 나면 휴식이 보장되니까 오히려 좋더라고요. 마무리는 매일 대기해야 하고, 승리를 날리면 팀에도 미안하고 동료들한테도 너무 미안하거든요. 선발은 제 성적만 책임지면 되니까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백인천 감독은 동시에 정삼흠에게도 “후반기부터 마무리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선발은 한번 던지고 4일간 고기도 먹고 쉴 수도 있는데 마무리를 하니 매일 대기해야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경기 전엔 식사도 적은 양으로 일찌감치 하고 대기해야 하니까 배도 고프고, 좋아하는 고기도 근육이 딱딱해질까봐 못 먹고 그랬거든요. 월요일에 경기가 없으니 일요일에만 고기를 먹었어요.(웃음)”
정삼흠도 공식적으로 보직이 변경되자 일상생활의 루틴과 식습관까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좋은 점은 있었어요. 4회 정도까지는 그냥 라커룸에서 쉬는 거였죠. 등판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면 김용일 트레이너가 들어와 몸을 마사지하면서 풀어줬어요. 그리고 경기를 내 손으로 마무리하는 희열이 있더라고요. 세이브 쌓는 재미도 있고요. 다만 LG가 후반기에 계속 이기면서 등판해야 하는 날이 많아지니 힘들었죠. 살도 빠지고 말이죠. 허허.”
스프링캠프도 아니고 시즌 도중 선발과 마무리투수의 보직을 변경하는 건 그야말로 모험수였다. 그러나 백인천 감독의 과감한 승부수는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LG의 거침없는 후반기 질주 드라마
LG는 7월 6일 잠실 삼성전 9-1 승리를 시작으로 후반기를 열었다. 이날 선발투수는 김태원. 전반기 문병권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 사실상 에이스로 도약한 김태원은 9이닝 1실점 역투를 펼쳤다. 자신의 3번째 완투승이자 개막 2연패 후 6연승을 내달리는 쾌투였다. 타선도 루키 김동수의 4타수 3안타를 포함해 장단 14안타를 몰아치며 삼성 마운드를 초토화했다.
후반기에 먼저 시작한 삼성과 해태가 1승1무2패로 주춤한 사이, LG는 이날 후반기 첫 승으로 단숨에 팀순위 2위로 뛰어올랐다.
7월 8일 삼성전에서는 그해 ‘삼성 킬러’로 떠오른 문병권이 선발로 등판해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뒤 정삼흠이 6회부터 4이닝 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면서 세이브를 따냈다.
“요즘엔 마무리가 1이닝씩 던지지만 당시엔 그런 게 어딨어요. 3이닝, 4이닝 마무리도 예사였죠. 그해 제가 웬만한 선발투수보다 이닝수가 더 많을 걸요? 감독님이 덕아웃에서 ‘삼흠이 준비해’ 하면 ‘예’하고 대답하고 공 3~4개 던져보고 마운드에 올라갔죠. 부를 때마다 군말 없이 던지니까 감독님이 더 빨리 저를 찾는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정삼흠은 실제로 1990년 무려 168.1이닝을 던졌다.
7월 9일 잠실 삼성전. 마침내 김용수가 선발 보직을 공식적으로 안고 처음 등판하는 날이었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마운드에 오른 김용수는 5이닝 2실점으로 팀의 10-4 승리를 이끌고 선발승을 따내며 시즌 3승(3패4세이브)째를 수확했다.
LG는 다음날인 7월 10일 잠실 롯데전에서 0-2로 뒤지던 경기를 경기 후반 뒷심으로 3-2로 뒤집었다. 전반기 막판 2연승을 포함해 6연승을 질주했다.
7월 13일에는 잠실에서 OB를 상대로 더블헤더를 싹쓸이했다. 후반기 7승1패, 최근 10경기 9승1패의 호조 속에 마침내 1위로 도약했다. 4월 21일 6승3패로 1위를 차지한 뒤 2개월 22일 만이었다.
7월 15일 잠실 OB전에서는 김용수가 잠시 구원 아르바이트를 뛰며 2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4승째를 수확한 뒤 정삼흠이 마무리를 하며 9연속 세이브를 따냈다.
연전연승.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6월초까지만 해도 꼴찌를 걱정했던 팀이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선두로 나서는 기적을 연출했다.
김용수는 7월 19일 광주 해태전에서 9이닝 동안 탈삼진 10개를 잡으면서 4안타 1실점으로 역투해 시즌 5승째를 낚았다. 개인적으로 프로 데뷔 후 2번째 완투승. 1988년 7월 23일 롯데전 이후 2년여 만에 기록한 것이었다. 루키 김동수는 3-1로 앞선 5회초 만루홈런을 날리면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시즌 10호 홈런이자 프로 데뷔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면서 LG는 투타에서 신바람을 냈다.

◆대전구장 19연패 악몽…선동열 폭투로 연패탈출
잘 나가던 LG였지만 그 시절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MBC 청룡 시절부터 이상하게 대전구장에만 가면 힘을 쓰지 못했다. 그 악몽이 또 되풀이됐다.
7월 20일 더블헤더를 포함해 22일까지 대전에서 빙그레를 상대로 4경기 모두 패하고 말았다. 1988년 8월 20일부터 대전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19연패를 당하는 악몽의 순간. 그러면서 팀 순위도 순식간에 3위로 내려앉았다. 1위는 빙그레, 2위는 삼성에 내줬다.
자칫 잘 나가던 팀 분위기가 급랭할 수도 있는 상황. 이 위기에서 팀을 구한 건 김용수였다.
김용수는 다음 경기인 7월 24일 잠실 해태전에 선발등판해 8이닝 동안 9탈삼진 1실점으로 2-1 승리를 이끌고 팀의 4연패를 끊었다. 개인적으로 시즌 6승을 기록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패전투수가 선동열이라는 사실이다. 5회부터 구원등판한 선동열은 8회말 선두타자 박흥식에게 3루타를 맞은 뒤 김상훈 타석 때 포수 정회열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폭투를 범하면서 결승점을 헌납했다. 천하의 선동열이 폭투로 결승점을 내준 것은 프로 데뷔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LG 정삼흠이 1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10세이브를 돌파했다.
LG는 선발 김용수와 마무리 정삼흠이 합작해 거함 선동열을 무너뜨리면서 다시 한번 자신감을 얻었다.

LG는 8월 16일까지 48승38패로 1위 빙그레에 4게임차, 2위 삼성에 3게임차 뒤진 상태에서 다시 ‘악몽의 장소’ 한밭벌 원정에 나선다.
8월 17일 대전 한화전. LG는 히든카드 이용철을 선발로 내세웠다. 1988년 신인왕 출신인 잠수함 투수 이용철은 1990년 백인천 감독이 부임한 뒤 신임을 받지 못하다 이날 시즌 4번째 등판 기회를 잡았다.
그런데 이용철이 기대 이상의 역투를 펼쳤다. 6회까지 106구를 던지며 5안타 2실점으로 선방했다.
하지만 문제는 타선. 빙그레 선발투수 한용덕에게 눌리다 6회초 윤덕규의 솔로홈런으로 1점밖에 뽑지 못하고 있었다. 대전 20연패의 먹구름이 엄습해 왔다.
7회초 선두타자 이광은이 좌중간 안타를 뽑아냈다. 빙그레 김영덕 감독은 곧바로 소방수 송진우를 호출했다. 이때 김동수의 빗맞은 좌중간 안타가 나왔고, 빙그레 좌익수 이강돈이 서두르다 뒤로 빠뜨리면서 무사 2·3루 황금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김재박의 우전 적시타, 김동재의 우익수 희생플라이로 3-2 역전에 성공했다.
1점차로 불안한 상황에서 9회초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오른 김동수가 승기를 잡는 솔로홈런을 날리고, 민경삼의 적시타까지 더해져 LG는 5-2로 앞서나갔다.
7회부터 등판한 정삼흠이 3이닝 동안 6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시즌 14세이브를 따냈다. 지긋지긋했던, 고래심줄처럼 질기디 질겼던 ‘대전 19연패’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LG의 승승장구…잠실벌 인산인해
LG는 전반기 문병권과 김태원의 등장으로 버텼다면, 후반기엔 김용수가 앞에서 끌고 정삼흠이 뒷문을 막으면서 반등의 실마리를 풀었다.
김용수는 그해 12승5패5세이브,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까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지만 선발로 전환한 뒤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장식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따내면서 향후 KBO 최초 ‘100승-200세이브’ 투수가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삼흠 역시 프로 데뷔 후 가장 빛나는 시즌을 만들었다. 시즌 55경기(168.1이닝)에 등판해 8승9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78로 LG의 특급 소방수로 거듭났다. 31세이브포인트(구원승+세이브)로 빙그레 송진우(38세이브포인트)에 이어 구원 부문 2위에 올랐다. 시즌 도중 마무리 보직을 받은 점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적이었다.
‘부엉이’ 정삼흠의 전성시대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정삼흠은 훗날 다시 선발로 전환하면서 LG에서 유일하게 '100승-100패 클럽'에 들어가게 된다.
LG는 1990년 8월에 연승과 연패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행보를 보이면서도 3위에 자리를 잡아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을 높여갔다. 오히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레이스를 펼쳤다.
LG는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사직에서 롯데에 3연승을 거뒀다. 그리고는 잠실로 이동했다.
상대팀은 호시탐탐 3위 자리를 노리며 추격해 오고 있는 해태 타이거즈. LG와 해태 두 팀은 불과 2.5게임차였다. 잠실 주말 3연전 결과에 따라 상위권 싸움의 지형도와 흐름이 바뀔 수도 있었다.
LG와 해태는 전통의 최고 인기팀. 서울 팬들은 LG 트윈스로 간판을 바꿔 달고 8년 만에 가을야구를 노리는 상황이 되자 연일 잠실구장을 가득 메웠다. 해태는 잠실을 ‘제2의 홈구장’이라고 말할 정도로 관중 동원력에서 최고의 화력을 가진 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3연전에 쏠리는 팬들의 관심은 8월의 태양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는 주말을 맞아 표를 사려는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야말로 잠실이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결국 일이 터졌다. 8월 26일 일요일 경기에서 흥분한 관중들이 경기 도중 그라운드를 점령하면서 팬들끼리 싸우는 사상 최악의 관중난동 사태가 벌어진다.
[엘팬알백] ⑳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