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을까

거제·전혜원 기자 2022. 8. 10.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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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만 받았다. 인력난이 심화하는데도 조선소를 떠난 하청 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을까.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7월19일 옥포조선소 파업 현장 내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이 중국을 제치고 조선업 1위를 탈환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전 세계에서 선박 수주량이 제일 많은 조선소 세 곳이 모두 한국 기업이다(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당장 배 만들 사람이 필요한데, 문제는 인력이다. 2014년 20만3000여 명에 달하던 조선업 노동자가 지난해 9만200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오는 9월에만 생산인력 약 95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한다.

인력이 부족하면 임금을 올려서라도 사람을 데려오는 게 ‘시장의 원리’일 것이다. 그런데 현직 조선소 생산 인력들이 오히려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했다.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 얘기다. 이들은 임금 30% 인상을 요구했으나 4.5% 인상에 합의하고 51일 동안의 파업을 끝냈다.

왜 임금을 30%나 올려달라고 했을까? 2014년 대비 임금이 약 30% 삭감되었으니 이를 ‘원상회복’해 달라는 논리였다. 조선소 경력 15년인 대우조선 하청업체 취부사(선박 용접 전에 도면을 보고 철판을 조립·가공하는 인력)의 원천징수 영수증에 찍힌 세전 연봉을 보면, 2014년에는 4974만원이었으나 2016년 4328만원, 2018년 3621만원을 거쳐 지난해 3429만원으로 줄었다(실수령액은 더 적다). 2014년 대비 약 31% 감소한 수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앞서의 15년 경력 취부사는 시급이 1만원 조금 넘는다. 지난해 최저시급 8720원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동안은 1년에 정기상여금을 기본급(시급)의 550%만큼 받았다. 시급이 1만원일 경우 연 132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낮은 시급을 만회할 정도는 되었다. 2014년 이후 조선업이 불황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상여금 550% 중에서 150%(360만원)가 그냥 ‘깎였다’. 나머지 400%는 몇 달에 한 번 주는 상여금이 아닌 기본급에 반영되었는데, 시급은 올랐지만 결과적으로 임금 총액은 감소하는 방식이었다. 성과급과 각종 수당도 없어지거나 줄었다. 잔업·특근으로 임금 총액을 높이는 방법조차 물량이 줄고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어려워졌다.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모습.ⓒ시사IN 조남진

시급이 1만원 조금 넘는 취부사는 조선소 안에서 그나마 임금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중 절반은 최저시급을 받는다. 연장노동을 못하면 실수령액 월 200만원, 주 52시간 내에서 잔업과 특근을 최대한 당겨 하면 월 260만원을 받는다. 시급이 1만원이면 월 220만~280만원, 일당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파워공(그라인더라는 공구로 철판의 녹을 제거하는 직종)’이 월 300만원 초반대다. 30년 일한 숙련 노동자여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정년퇴직을 1년 앞둔 1963년생 23년 차 도장공(페인트공)의 임금명세서가 MBC에 보도되기도 했다. 시급이 올해 최저임금인 9160원이고 월급은 230여만 원이었다.

그런데 도장이나 취부, 용접 등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공정에는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조선소 일은 난이도가 높고 노동강도가 세며 위험하기로 악명이 높다. 이런 일을 하면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숙련을 쌓아도 그에 맞는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합당할까? 그렇지 않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직영(정규직)이 아니라 하청이기 때문이다.

조선업 연구자들에 따르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선소에서 하청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원래는 직영 노동자가 더 많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하청이 늘어나 1대 1 비율이 되더니, 2007년을 기점으로 하청 노동자 수가 직영을 넘어섰다. 특히 위험한 공정일수록 하청 비율이 높다. 한 조선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높은 곳에서 일하는 작업자를 위해 발판을 설치하는 공정(발판이나 족장, 비계라고 부르며 추락 위험이 높다)은 100% 사내하청이 한다. 도장 중에서도 난이도가 더 높은 ‘후행도장(조립된 선박에 페인트칠을 하는 공정)’의 사내하청 비율은 95.4%, 단열재를 붙이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되기 쉬운 ‘보온’ 공정의 사내하청 비율은 92.3%에 달했다. 대체로 생산공정 60~70%를 하청이 담당한다. 반면 직접 생산이 아닌 생산 ‘지원’ 업무에서 사내하청 비율은 38.7%에 불과하다(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산업의 고용구조 현황과 문제점〉, 2016).

ⓒ시사IN 최예린

“물량이 협력사로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

대우조선의 경우 이미 정규직의 절반 넘는 인원이 생산 지원 업무로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직영들의 로망은 (대표적 생산 지원 업무인) 크레인 운전”이라는 말이 돌 정도다. 최상규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정규직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직영들이 어렵고 힘든 공정을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좀 있었다. ‘몸이 아파서 더 이상 못하겠다’며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노조에 개별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많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새로 정규직을 채용하려면 시간이 걸리다 보니, (위험 공정의) 물량이 자꾸 협력사로 넘어가고 또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정작 임금은 직영 생산직의 절반 남짓만 받는다는 점이다. 대우조선 정규직 평균 연봉이 약 6500만원인 데 비해 하청은 3000만~3500만원에 그친다. 대우조선 생산직은 오래 일할수록 숙련이 쌓인다고 가정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굳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연차가 높아지면 똑같이 임금이 오른다. 반면에 하청은 위험한 업무를 해도, 숙련을 쌓아도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직영 생산직은 상여금만 기본급의 800%다. 연 2000만원에 가까운 돈이다.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이 대우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규직이라 더 받고, 하청이라고 덜 받는다면 신분제 사회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난이도가 높은 직무를 더 싼값에 시킬 수 있다면 기업은 하청을 쓴다. 하청은 인건비가 덜 들 뿐 아니라, 물량이 줄어들 때 고용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도 있다. 복잡한 해고 절차를 거치는 대신에 업체와 계약을 해지해버리면 그만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도 고용안정을 지키려는 정규직 노조는 이를 묵인한다.

그런 일이 극적으로 벌어진 분야가 바로 ‘해양플랜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물동량이 줄면서 수주가 급감하자 한국의 이른바 ‘빅 3’ 조선소는 새 활로를 찾았다. 유가가 오르면서 오일 메이저(주요 정유회사)들이 해양 유전에 관심을 갖게 되자, 바다에 내장된 석유나 가스를 발굴·시추·생산하는 설비인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한 것이다. 해양플랜트는 기존 선박보다 작업 난이도나 위험도가 훨씬 높았다. 직영 노동자들은 거의 자원하지 않았고, 90% 이상이 하청 노동자 몫으로 넘겨졌다. 해양플랜트 사업이 정점에 이른 2014~2015년 조선업 하청 노동자는 13만명을 넘어 6만~7만명인 직영 노동자의 두 배에 가까워졌다(생산직만 따지면 직영의 3배에서 5배에 달했다). 하청업체가 급할 때 다른 업체나 개인 팀장에게 재하청을 주는 이른바 ‘물량팀’도 우후죽순 늘어갔다.

그러나 선박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해양플랜트 공정은 계획보다 크게 지연되었다. 해양플랜트를 인도해야 대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인도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보유 현금이 떨어져갔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 즈음 유가가 하락하면서 해양플랜트 신규 수주가 급감했다. 조선업 위기가 본격화된 시점이다. 정규직도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숫자가 줄었지만, 고용 충격은 하청에 집중됐다. 2015년 13만3000여 명으로 정점에 이른 하청 노동자 수는 지난해 4만7000여 명으로 8만6000여 명(64.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직영 노동자 수가 6만9000여 명에서 4만5000여 명으로 2만3000여 명(34.5%)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우조선해양 앞의 두 가지 난관

최근 한국 조선소들은 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다량 수주했다. 2018년부터 인력난이 시작되었지만 조선소를 떠난 하청 노동자들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있는 노동자마저 계속 떠나고 있다. 경기도 평택에서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 일을 하는 편이 일당이 더 높아서다.

그래도 기업으로서 선제적으로 인건비 투자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아 있는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일 정도라면 말이다. 두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 배를 수주했다고 해도 설계와 생산을 거쳐 인도한 뒤 대금을 받을 때까지 최소 1년6개월에서 2~3년이 소요된다. 여기에 최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올라 ‘후판(두꺼운 철판)’ 가격이 두 배가량 뛰면서 선박 건조 비용이 크게 늘었다. 또한 지금 만들고 있는 배의 가격이 수주 당시 그리 높지 않았기에 대금을 받더라도 당분간은 큰 이윤을 내기 어렵다. 이는 조선업이 처한 공통의 조건이다.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전 사장은 회사의 이익을 부풀린 분식회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연합뉴스

둘째, 대우조선이 가진 특수성이 있다. 대우조선은 대우그룹 해체 이후 2000년부터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의 관리를 받아왔다. 현재 산업은행이 지분을 55.7% 보유한 대주주다. 대우조선이 일정 규모 이상 투자를 하려면 산업은행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사장이 자율적으로 경영 판단을 할 여지가 다른 기업보다는 적다. 무엇보다 재무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연결 기준 1조7000억원 적자를 냈다. 올해 3월 기준 부채비율은 546.6%로 시장에서 기업 존립이 위태롭다고 보는 400%를 초과했다.

조선업 불황이 큰 이유이지만, 경영 문제도 있었다. 2012년 즈음부터 이미 해양플랜트가 어렵다는 분위기가 있었는데도 대우조선만은 2014년까지 흑자를 기록했다. 2015년 2분기(4~6월)에 돌연 3조100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면서 분식회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해양플랜트 공정이 늦어져 손실이 커지는 와중에도 예상 건조 원가를 실제보다 낮춰 잡는 등의 방식으로 이익을 부풀린 것이 드러났다. 결국 고재호 전 사장이 유죄판결을 확정받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분식회계 혐의가 드러난 2015년 대우조선에 공적자금을 4조2000억원 투입했다. 2017년 앙골라 석유회사 소난골이 발주한 드릴십의 인도가 소난골 측 경영난으로 유예되면서 공적자금 2조9000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렇게 투입된 7조1000억원에 산업은행 등이 지원한 자본 확충(출자전환·유상증자)을 합하면 총 10조원이 넘는 공적 지원이 이뤄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 생존 능력을 잃은 부실기업을 세금으로 연명시키는 것은 자유시장 원리에 배치되는 일이다”(〈조선일보〉 사설)라는 날 선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조선은 회생 가능성이 있을까? 산업은행 체제에서는 어렵다는 공감대가 있다. 아무래도 이미 투입한 자금을 회수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멀리 내다보고 경영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주체는 아니다. 산업은행도 매각을 시도하긴 했다. 2008년 한화그룹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무산되었다. 2019년에는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이 인수합병에 나섰으나 올해 초 유럽연합이 ‘두 회사가 합병하면 LNG 운반선 점유율이 지나치게 높아져 독과점이 된다’며 불허했다.

이에 대해선 현대중공업이나 산업은행이 적극적이고 치밀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독과점을 이유로 유럽연합이 합병을 불허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대비가 미흡해 2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매각에는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도 반대했다. 최상규 정규직 노조 대외협력실장은 “같은 조선업체에 인수되면 (인력 중복으로) 구조조정이 우려됐다. 해외 자본도 아니고 같은 업계(조선소)도 아닌 국내 재벌사 인수는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희망사항에 가깝다. 수주 호황이라고는 하나 흑자 전환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글로벌 경기에 따라 업황이 출렁이면서도 설비 유지 등 고정비는 많이 드는 조선업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뛰어들려는 국내 재벌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독과점 이슈를 피하려 LNG 운반선 등 일부를 분리 매각하는 것도, 도크(작업장)를 공유하는 조선업 특성상 쉽지는 않다. 산업은행은 8월 중 나올 컨설팅 보고서 결과에 따라 대우조선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전망이다.

대우조선의 미래를 결정하려면 조선업이라는 산업 자체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조선업을 ‘사양산업’이라고 보는 쪽의 논리는 이렇다. 조선업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저렴한 노동비용이 경쟁력인데, 선진국은 인건비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한국은 일본에게서 조선업을 넘겨받았고, 중국에 추월당할 운명이다. 이렇게 보면 더 이상의 공적 투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므로 최대한 빨리 구조조정을 하는 게 답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조선업이 ‘일본의 기술력, 중국의 인건비에 밀리는 샌드위치 신세’라는 식의 평도 흔히 들을 수 있다.

2019년 2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의 회사 인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시사IN 신선영

“적어도 2000년대 들어서 일본 기술력이 한국보다 더 뛰어나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조선업을 연구해온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말했다. “물론 중국은 인건비가 싸다. 같은 품질의 배를 만든다면, 벌크선 같은 단순한 선박의 경쟁력은 우리가 중국에 밀린다. 그러나 LNG 운반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선박은 여전히 한국이 앞서 있다. 인류가 배를 이용한 교역을 계속하는 이상 조선업이 사양산업은 아니며, 한국이 지금 갖고 있는 경쟁력을 굳이 포기할 필요도 없다. 조선업만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대체 산업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까지 10년 이상 불황이 지속되면서 조선업을 사양산업으로 판단했다. 미쓰비시나 가와사키 같은 대형 조선소들은 주력 업종을 전환했고, 지방 중소도시의 중형 조선소들을 중심으로 조선업 명맥을 유지했다. 대형 고부가가치선을 만들기 위해 투자할 자금도, 설계·생산을 담당할 인력도 부족했다. 같은 시기 한국은 설계 인력 확보나 도크 대형화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선박 블록을 외부에서 조립해와 야드에서 완성하는 방식으로 공정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한국은 조선업 호황에 올라탈 수 있었다.

물론 조선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더라도 한국이 계속 패권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기에 대우조선이라는 개별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다. 2012년부터 5년간 대우조선 사무직으로 재직하며 인사·혁신 업무를 담당했고, 산업도시 거제의 명암을 다룬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쓴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고부가가치선은 한동안 우리가 주도권을 가져가겠지만, 한국 조선업에서 생산은 장기적으로는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중국이 아니라 동남아시아가 치고 올라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노동력을 어떻게 구성해갈지, 숙련을 장려하고 적정 임금을 보장하면서 수주 경쟁력도 유지할 수 있을지 치열한 고민과 논쟁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이 최근 선박 설계 파트 전원을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로 옮겼다. (생산단계 이전의) 선행 공정에 힘을 주겠다는 얘기다. 대우조선은 전통적으로 설계가 강하다. 각 회사뿐 아니라 정부도 어디에 강조점을 둘지 정리해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보강할지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지 않겠나. 한국 조선업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설계인지 연구개발(R&D)인지 생산인지 이참에 제대로 따져보면 좋겠다.”

대우조선 정규직 중에는 생산직 4900명뿐 아니라 설계 등을 담당하는 사무직 3500명도 있다. 이들도 떠나고 있다. 10년 차 엔지니어(설계원)인 노현범 금속노조 대우조선해양 사무직지회장은 월급 288만원이 찍힌 통장 내역을 보여주었다. “올해 초 현대중공업 매각이 무산되자 대우조선 사무직 3500명 중 약 200명이 이탈했다. 그중 100여 명은 현대중공업으로 갔다. 구조가 조정되지 않는 ‘구조조정’을 몇 년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산업은행은 ‘산업’에 관심이 없고, 노동조건은 나빠지며, 그사이에 인력은 나간다. 이번 파업을 계기로 하청 고용을 포함해 그간 쌓인 모순이 드러나길 바란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가운데)이 7월19일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옥포조선소를 방문했다.ⓒ연합뉴스

하청 용접공 유최안씨는 ‘도크’라고 부르는, 배를 만들어 바다로 내보내는 공간을 막아섰다. 가로·세로·높이 1m짜리 철판 구조물을 직접 용접하고 그 안에 들어가 31일을 갇혀 지냈다. 산업은행은 파업 과정에서 대우조선 파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대우조선은 이번 파업으로 인해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며 하청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그런데 대우조선이 7월 말 기준으로 입었다는 손실액 8165억원 중에서 매출 손실이 6468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앞으로 영업 전개에 따라 만회할 수도 있는 돈이다. 임대료,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 1426억원 중 정확히 얼마가 점거 행위로 인한 직접적 손해인지도 불분명하다. 선박 인도가 늦어져서 지불해야 한다는 ‘지체보상금’ 역시, 현재 휴일도 반납하고 공정을 서둘러 납기를 당기고 있기 때문에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8000억원대 손실이 기정사실처럼 보도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대략적으로 추산한 금액일 뿐 이를 모두 손해배상 청구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금액을 정확히 계산해서 반드시 청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르면 파업에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법원은 이른바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해석해왔다. 정부도 이 파업이 ‘불법파업’이라고 일찌감치 규정했다. 이번 파업은 정말 정당성을 상실한 ‘불법파업’일까.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는 “한국 대법원은 파업을 하나의 행위로 보고, 파업의 주체·목적·절차·수단 중에서 하나라도 위법할 경우 파업 전체를 불법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파업은 언제나 합법이다. 헌법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파업에 수반될 수도 있는 불법행위인데 이 둘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직장 점거 행위는 사용자의 점유권이나 시설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직장 점거라고 해서 무조건 불법은 아니다. 국회에서 공개된 영상을 보면, 용접공이 쇠감옥을 만든 것이 (파업이 길어지며 현장에서 발생한) 사측의 폭력과 위협으로부터 파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이자 긴급 피난으로 인정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설령 인정되지 않더라도, 점거행위로 인한 직접적 손해가 있었음을 사측이 증명하는 게 상식적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파업에 대한 손배 청구가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다.”

 

합의서 남긴 것은 역사적 사건

조 교수에 따르면 점거로 인한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사측의 과실 또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사건에서, 원청회사가 하청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질 수 있다고 판결했다. 조경배 교수는 “이 모든 문제는 사실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의 교섭에 성실하게 응했다면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사내하청’인 경우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하청업체들과 교섭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실질적인 노동조건을 사실상 원청이 결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 봉래동의 한 조선소에서 선박 조립 과정에 사용될 말뚝 배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시사IN 이명익

이번 파업을 벌인 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대우조선 생산직은 직영 4900명과 사내하청 1만100명으로 구성된다. 하청 파업을 비난하는 이들은 ‘남의 회사를 왜 점거하느냐’고 하지만, 같은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원청을 점거한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이 지급하는 기성비(물량에 대한 단가)가 전적으로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업체가 명목적인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며 원청 직원이 맞다고 판결했다. 사내하청이라는, 매우 기형적이고 불법적인 고용 형태를 쓰면서도 원청이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은 것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조경배 교수).”

이번 파업을 두고 ‘임금 4.5% 더 받자고 8100억원대 손실’이라며 폄하하는 보도가 나왔다. 애초의 요구가 ‘임금 30% 인상’이었던 만큼 하청 노조가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이 비록 하청업체 대표단과의 합의일지언정 ‘금속노조’ 이름을 걸고 합의서를 남긴 것은 한국 제조업의 역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안준호 하청 노조 부지회장은 “조선소 하청에서는 사측이 4대 보험료를 체납하며, (경영난으로 인한, 또는 노조활동 무력화를 위한) 폐업과 임금체불이 비일비재하다. 정규직을 시켜달라거나 똑같이 해달라는 게 아니라, 하청이어도 당당하게 살고 싶어서 파업을 했다”라고 말했다.

원·하청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중대한 과제다. 산업 경쟁력의 핵심일 숙련과 임금의 연결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정규직은 속속 정년퇴직 중이고 신규 채용은 씨가 말랐다. 정규직과 하청의 연대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지만 위태롭다.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는 하청 노조와 함께 속해 있는 금속노조에서 탈퇴하자는 총회를 열었다. 1차 투표에서 찬성(674표)보다 반대(689표)가 더 많아 개표가 중단되었다. 박종식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힘든 공정을 아무도 하려 하지 않고 정당한 보상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조선업에 미래가 있기란 어렵다. 불황이 끝난다고 하는 지금이야말로 업종 차원에서 원·하청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향후 10년을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쇠감옥을 만든 유최안씨는 대국민 편지에서 이렇게 물었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피해자들이 흘리는 피눈물로 띄운 배로 세계 1등이 무슨 소용인가.” 한국 사회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거제·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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