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위스키 대신 데킬라 넣었는데…하이볼에 빠진 2030 희소식 [글로벌 머니 X파일]

김주완 2025. 11. 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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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의 덫에 빠진 데킬라
90% 폭락한 원재료 '블루 아가베'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데킬라의 원료인 '블루 아가베'의 가격이 급락했다. 투기적 과열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른바 '거미집의 덫'에 걸렸다는 의견도 있다.

고점에서 90% 하락

27일 브라질과 멕시코의 관련 보고서(Agribrasilis 및 Mezcalistas)에 따르면 데킬라의 원료인 블루 아가베의 현물 거래 가격은 2022년 kg당 32페소를 기록하며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이달 기준 kg당 2~8페소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점 대비 약 90% 이상 하락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 IWSR의 호세 루이스 에르모소 중남미 리서치 디렉터는 "엄청난 아가베 재고와 미국 프리미엄 테킬라 수요 둔화가 최근 합류한 아마추어 재배자들의 ‘패닉 세일’을 촉발했다”며 "2021~2022년에 심어진 새로운 식물이 너무 많아 가격 바닥은 2026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격 급락은 예견됐다는 분석도 있다. Agribrasilis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전례 없는 데킬라 붐이 그 배경이다. 멕시코 데킬라 수출은 2018년 약 2억 2400만 리터에서 2024년 4억 200만 리터를 넘어서며 6년 만에 약 80% 증가했다.

이는 아가베 농사 면적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졌다. 아가베 재배 농가는 2014년 약 3100가구에서 2024년에는 4만 2000가구 이상으로 13배 넘게 급증했다.

claude.ai

문제는 아가베가 시장에 팔리기까지 6~8년이라는 긴 재배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고수익을 노리고 시장에 진입한 비전문가들의 '묻지 마 재배' 물량이 작년과 올해 2024년과 대규모로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수자나 도나 Agribrasilis 연구원은 "농가 수의 급증이 과잉 공급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거미집 이론의 재현

아가베 시장은 경제학의 '거미집 이론' 중에서 '발산형'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다. 생산자들은 현재의 높은 가격(2018~2022년)을 보고 미래의 생산량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 생산물이 시장에 나오는 시점(2025년)에는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폭락한다.

미국 투자회사 번스타인의 트레버 스털링 수석 애널리스트는 "아가베 사이클은 농업 경제학 교과서의 살아있는 예시"라며 "가격 급등기에 과도하게 심어진 수억 그루의 식물들이 동시에 '성체(Maturation)'가 돼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를 받아줄 증류소의 탱크는 이미 2023년부터 가득 차 있었고, 우리는 지금 2010년대 후반의 과잉 낙관주의가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시점을 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급 과잉은 재고 누적으로 이어진다. CRT(Tequila Regulatory Council) 통계 및 현지 보도 등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판매되지 못한 데킬라 재고가 약 5억 2500만 리터 이상 멕시코에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멕시코의 연간 수출량을 넘어선 규모다. 업계에선 이를 '데킬라의 호수'라고 부르기도 했다.

수요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10년간 글로벌 주류 시장을 견인한 이른바 '프리미엄화' 트렌드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장기화로 둔화했다는 분석이다. 최대 소비국인 미국에서 소비 증가율은 2020~2022년 두 자릿수에서 올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소비자들은 100달러 이상의 고가 제품 대신 가성비 좋은 '블랑코'나 RTD(Ready-to-Drink) 캔 칵테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돈 훌리오'나 '패트론' 등 유명 데킬라 브랜드는 여전히 성장했다. 하지만 유명인을 앞세운 신생 브랜드들은 재고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덤핑 경쟁에 내몰렸다.

리차드 할스테드 IWSR 소비자 연구 COO는 "미국 소비자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무조건 비싼 데킬라를 찾던 열풍은 식었다"며 "아가베 가격 하락은 저가형 아가베 데킬라가 시장에 쏟아져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이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격 방어력을 시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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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5~6년 뒤에 찾아올 공급 부족도 우려한다. 최근 가격 급락은 농민의 농사 동기를 앗아갔다. 많은 농가가 아가베밭을 갈아엎고 옥수수 등 단기 수익 작물로 전환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격 폭락으로 많은 소규모 농가가 부채에 몰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 봉쇄 시위까지 했다고 전했다.

원가 구조 변화

아가베의 가격 변화는 관련 산업의 원가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가베 가격 폭락은 디아지오와 페르노리카 등 글로벌 주류 기업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기회 요인은 명확하다. 매출원가의 절감은 단기적으로 마진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아가베 의존도가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돈 훌리오, 카사미고스 등)의 수익성 향상이 기대된다.

위험 요인도 있다. 미국 시장의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 압력은 평균판매단가(ASP)에 영향을 준다. 관세 리스크도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다른 문제도 있다. 원료가 하락이 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질 경우 관련 기업이 수년간 공들여 구축한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저가형 데킬라 제품이 쏟아지면 기존 프리미엄 제품의 차별성을 약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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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베의 가격 폭락은 한국 주류 시장에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2030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한 '하이볼' 문화는 위스키 베이스에서 데킬라 베이스(팔로마, 마가리타 등)로 확장하고 있다. 아가베 원액 가격 하락은 RTD 제조사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데킬라 베이스 칵테일을 출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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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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