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우주는 처음이지?"… 소련, 최초 인공위성 발사[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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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4일.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
구 소련은 30일 후인 11월3일 두 번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를 최초의 우주견 '라이카'와 함께 발사했다.
스푸트니크 1호 발사 4개월 뒤 미국도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우주에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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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구 소련은 냉전시대에 돌입했다. 당시 독일의 V-2가 영국 런던에 타격을 입히는 모습을 본 미국과 소련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핵무기가 탑재된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전략적 가치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당시 공학자 세르게이 코롤료프 또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 것을 명령받았다. 그러자 코롤료프는 세계 최초 대륙간 탄도 미사일 R-7의 제1서기였던 니키타 흐루쇼프를 찾아가 R-7을 이용한 인공위성을 발사하자고 설득한다.
코롤료프는 송신기와 간단한 측정기만을 장착한 새 인공위성을 제작했다. 그리고 '동반자'라는 뜻을 담아 이름을 붙였다. 스푸트니크 1호는 러시아 우주 계획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탄생 100주년과 국제 지구 관측년 기간에 맞춰 발사됐다. 지름 58㎝ 무게 83.6㎏의 구 형태를 띤 스푸트니크 1호는 900㎞ 상공에서 1시간36분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미국은 불안에 휩싸였다. 과학기술에 뒤처진다는 불안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장착한 미사일이 언제든 미국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컸다. 이는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정신적 공황으로 이어졌다. 이 쇼크는 미국의 교육 체계마저 바꿔놨다. 당시 미국 초·중등 교육은 기초 학문보다는 창의성과 흥미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적 성향이 강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수학과 과학 교육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 과정을 개편했다.
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한 데 이어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유인 달 착륙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바로 '아폴로 계획'이다. 미 정부는 항공우주국(NASA)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아폴로 계획에만 250억달러를 투입했다.
마침내 1969년 7월21일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에 착륙했다.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미국과 소련 간 우주 경쟁에서 미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큰 사건이 됐다. 그는 첫발을 내디디며 "이 첫걸음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 커다란 첫 도약"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미국과 소련은 우주협력협정을 맺어 불필요한 경쟁을 자제하고 우주 개발에 상호 협력하기로 약속한다. 1975년 7월 미국 아폴로 18호와 소련 소유즈 19호가 우주 공간에서 도킹에 성공했다.
윤채현 기자 cogus020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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