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권리’에도 봄이 올까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시사위크는 이번 ‘놀이에 꽃이 피었습니다’ 기획을 통해 우리 아이들의 ‘놀 권리’를 심층 진단해왔다. 그런데 놀이의 중요성이 꼭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놀이는 어른들의 삶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캠핑, 요리, 게임, 낚시, 등산, 서핑, 스포츠, 영화·드라마 감상 등 무궁무진한 취미·레저활동들이 모두 ‘어른들의 놀이’다. 여행, 연인과의 데이트, 친구·지인과의 술자리, 맛집탐방 등도 어른들이 노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어른들의 ‘놀 권리’는 크게 개선돼왔다. 법정 근로시간이 줄어들고, ‘워라밸’이 강조되는 등 제도적·문화적으로 큰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이는 치열한 사회적 논쟁과 투쟁, 그리고 여러 주체들의 많은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다. 그에 비해 아이들의 놀 권리는 사회적 쟁점에서 멀리 떨어진 채 개선 또한 지지부진했다.
여기엔 아동문제의 본질적인 한계도 어김없이 작용했다. 어른들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 및 제기하고 여러 방법으로 이를 개선해나갈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러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가 아동 놀 권리 문제를 보다 세심하게 챙겨야 하는 이유다.
물론 변화와 개선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정부 등 공적인 영역에서는 물론 민간영역에서도 아이들의 놀 권리를 개선 및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며 4대 분야 중 하나로 ‘놀이권’을 명시했고, 10대 핵심과제에 △아동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지역사회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를 포함시켰다.
현 윤석열 정부 역시 지난해 ‘아동정책 추진방안’을 발표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놀이환경 등을 조성하는 ‘놀이혁신 선도지역’ 확대 △선도지역 사례분석을 통해 지역별 돌봄·놀이 융합 모델 개발 △전국 놀이시설 위치·유형·프로그램 정보 통합 제공을 위한 플랫폼 ‘놀이터 지도’ 구축 △놀이가 아동의 창의성, 사회성, 정서·신체 발달 등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집중 홍보 등도 강조한 바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전국 243개 자치의회 중 81곳이 ‘아동 놀 권리 조례’를 제정해둔 상태이며, 이 같은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이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지역 내 놀이공간과 시설을 개선 및 확충하고, ‘팝업 놀이터’ 등의 놀이행사 개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지난해 ‘서울 어린이 권리장전’을 선포했으며, 여기엔 ‘어린이는 놀 권리가 있습니다. 서울시는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한 함께 발표된 ‘서울 어린이 행복 프로젝트’에도 5개 분야 중 하나로 ‘신나는 놀거리’가 명시됐고, 핵심사업으로 △놀자!놀자! 프로그램 운영 △찾아가는 놀이버스 등이 제시됐다.
민간차원의 자발적인 움직임도 다양하고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사단법인 ‘놀이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어린이, 청소년들이 놀이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 설립된 이 단체는 전국 각 지부별로 매달 ‘두근두근 놀이한마당’을 열고 있고, 10월엔 전국적으로 ‘놀이의 날’을 개최하기도 한다. 아울러 놀이활동가 양성, 놀이공간 및 놀이방법 공유 등의 활동도 적극 펼쳐오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두근두근 놀이한마당’에선 ‘놀이하는 사람들’ 회원들과 아이들은 물론, 공원을 찾은 남녀노소 모두가 준비된 놀이를 만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엔 아동 놀 권리 개선 측면에서 좋은 기회가 찾아오기도 했다. 정부가 적극 추진 중인 ‘늘봄학교’다. 기존의 초등학교 방과 후 교육활동과 돌봄 서비스를 통합한 ‘늘봄학교’는 정규 학교수업을 마친 뒤에도 아이들의 교육과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는 게 핵심이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요소는 안전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또래친구다. 늘봄학교는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놀이에 대한 적절한 인식과 이를 적용 및 구현해나갈 방안이 마련된다면, 늘봄학교를 통해 아동 놀 권리의 획기적인 개선과 증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 역시 늘봄학교 추진 과정에서 자유놀이 시간과 놀이중심의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놀이적 요소도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현선 세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학교는 그 지역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며 “따라서 학교를 거점으로 돌봄 공간이 형성된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다. 특히 아이들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확보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는 것만으로 놀이가 발현되는 건 아니다. 온전히 놀이를 위한 시간, 그리고 놀이를 할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과 놀이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챙기고, 놀이와 관련된 전반적인 것들을 아우를 담당 인력도 필요하다.
이와 관련, 참고할만한 좋은 사례들이 있다. 먼저, 울산시교육청은 지난해 ‘숲과 놀이공간이 있는 학교 환경 조성사업’에 착수해 올해 초 5개 학교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교내 유휴부지를 활용해 아이들이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것이다. 이 사업은 진행 과정에서 학생은 물론 교직원과 학부모들을 적극 참여시켰으며, 완료 이후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울산교육청 교육시설과 이수근 팀장은 “학업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쉴 권리,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 내 유휴 공간에 학생들이 원하는 쉬고 놀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주는 사업”이라며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은 물론, 방과 후에도 학교 안에서 쉬고 놀 공간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다. 학교 내에 활용 가능한 공간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비탈면이나 화단 등 가능한 방법들을 고민해보면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충청북도교육청은 지난해 전국 최초로 놀이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해 운영을 시작했다. 놀이를 전담하는 기관인 이곳은 폐교를 활용한 공간에 다양한 실외 및 실내 놀이공간을 갖추고 있다. 평일에는 학교나 마을 단위, 주말 및 방학기간엔 가족 단위로 이곳을 찾아 다채로운 놀이와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또 직접 학교로 찾아가 놀이활동을 진행하기도 하고, 놀이교구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놀이교육지원센터 같은 놀이 관련 전담 기관이 각 지역에 거점 형태로 마련돼 늘봄학교에서의 놀이 활동은 물론, 지역사회 및 가정 차원의 놀이를 지원한다면 아동 놀 권리 증진의 큰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현선 교수는 “지금과 같은 교실에 같은 형태로 시간만 연장한 형태의 늘봄학교라면 아이들의 놀이가 보장되기 어려운 구조일 것”이라고 지적하며 “결국 어떻게 운영하는지가 중요하다. 늘봄학교가 놀이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름부터 ‘늘봄학교놀이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이 정체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운영방식도 교사, 부모, 아동이 이 공간을 아동중심적으로, 아동권리적으로 놀이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또한 프로그램보다는 아동의 개성과 흥미를 존중하는 자유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치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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