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2024 포스트시즌 관전 포인트

험난했던 정규시즌이 종료됐다. 올해는 마지막 더블헤더가 끝날 때까지 포스트시즌 대진표가 완성되지 않았다. 더블헤더를 치른 뉴욕 메츠와 애틀랜타가 1승1패씩 나누면서 포스트시즌 막차를 탔다. 한 팀이 더블헤더를 독식해야 포스트시즌에 오를 수 있었던 애리조나는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30팀이 다함께 야구를 하는 시간은 지나갔다. 이제는 올해 최강을 가리기 위한 포스트시즌이 시작된다. 올해 포스트시즌 관전 포인트를 알아봤다.

오타니 쇼헤이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1. 오타니의 가을
오타니 쇼헤이가 드디어 가을야구에 나선다. 오타니는 2018년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한 번도 가을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 이전 소속팀 에인절스가 도와주지 않았다.

오타니의 최대 목표는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그래서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을 찾았고, 그 팀이 다저스였다. 올해 다저스는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로 오타니의 한을 풀어줬다. 오타니는 지구 우승 축하 파티를 하면서 "축하 파티를 몇 번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규시즌 오타니는 무시무시했다. 54홈런 59도루로 전대미문의 50홈런 50도루 시즌을 달성했다. 시즌 초반 득점권에서 고전했지만, 점차 클러치 능력을 발휘하면서 해결사 면모도 보여줬다. 타석에서의 접근법에 따라 스윙 궤적을 다르게 가져갔다. 이는 상황별 타격이 중요한 포스트시즌에서 더 요구되는 부분이다.

오타니 주요 상황별 타격 성적

주자있을시 [타율] .308 [OPS] 1.036
득점권상황 [타율] .283 [OPS] .905
2사득점권 [타율] .353 [OPS] 1.185


작년 WBC에서 오타니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일본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지구 1위 결정전인 샌디에이고와의 시리즈에서도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평소와 달리 승부처에서 한 방을 날리면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이 모습이 동료들의 승부욕을 높이기도 했다.

오타니가 투수로서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투수 복귀는 아직 거쳐야 할 과정들이 남았다. 다저스도 10년 계약의 첫 해부터 무리시키지 않을 것이다. 다만, WBC처럼 극적인 등판이 성사될 수는 있다.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지금껏 불가능한 일들을 현실로 보여줬기에 무작정 배제할 수는 없다.

2. 홈런왕의 귀환
애런 저지도 가을야구로 돌아왔다. 지난해 양키스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저지의 가을야구도 한 해 쉬어갔다. 저지가 가을야구를 놓친 건 작년이 처음이었다.

포스트시즌에서 저지는 돋보이지 않았다. 통산 44경기 13홈런을 터뜨렸지만, 타율 .211, OPS도 .772에 머물렀다(정규시즌 통산 타율 .288, OPS 1.010). 2022년도 정규시즌에서는 62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한 반면, 포스트시즌은 9경기 36타수 5안타(.139)로 부진했다. 특히 챔피언십시리즈 4경기는 16타수 1안타(.063)였다.

올해 저지는 정규시즌에 또 대폭발했다. 158경기 58홈런 144타점을 기록했다. 타율 .322는 리그 3위, 출루율(.458) 장타율(.701) OPS(1.159)는 리그 1위였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저지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 했다. 2년 전 60홈런 시즌은 재현하지 못했지만,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처럼 보였다. 9월 중순 16경기 연속 무홈런 기간을 탈출한 이후 13경기 타율 .357 7홈런 18타점, OPS는 1.447에 달했다.

저지는 가을야구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정규시즌 마지막 시리즈에서도 개인 기록을 욕심내지 않았다. 저지가 어디에 집중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3. 클래식 매치업
양 리그를 대표하는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을까. 아메리칸리그의 양키스, 내셔널리그의 다저스다. 두 팀은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많은 11번이나 맞붙었다(양키스 vs 자이언츠 7회). 하지만 최근 두 팀의 월드시리즈는 1981년이었다. 40년이 넘었다. 맞대결 전적은 양키스가 8승3패로 앞서는데, 1981년 월드시리즈의 승자는 다저스였다.

정규시즌 두 팀 맞대결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

27 - 양키스
11 - 세인트루이스
9 - 보스턴 & 어슬레틱스
8 -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7 - 다저스


양키스는 가을의 제왕이었다. 우승 역사가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마지막 우승인 2009년 이후 월드시리즈 구경도 못하고 있다. 다저스는 2020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냈지만, 포스트시즌 진출 횟수에 비하면 만족스럽지 않다. 더군다나 2020년은 정규시즌이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치러졌다. 162경기 시즌에서 다저스의 우승은 1988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두 팀의 월드시리즈는 오타니와 저지의 격돌이기도 하다. 두 선수는 정규시즌 내내 누가 최고인지 논쟁거리였다. 가을의 정점에서 누가 정점에 오를지 볼 수 있다.

물론, 두 팀 다 넘어야 할 난관들이 있다. 다저스는 부상자가 속출한 선발진이 약점이다. 1선발 잭 플래허티는 다저스가 원하는 로테이션이 아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내구성도 의문이다. 양키스 역시 게릿 콜을 제외하면 믿을만한 선발투수가 부족하다. 2선발 카를로스 로돈이 짝을 맞춰줘야 한다.

마무리 부재도 공통 고민이다. 임시 마무리로 낙점된 마이클 코펙과 루크 위버는 증명한 무대가 적었다. 두 선수가 흔들리면 양팀 감독들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라는 높은 기준이 어떻게 작용할지도 지켜봐야 한다. 부담감을 이겨낼지 관건이다. 왕관을 쓰기 위해,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4. 휴스턴이 또?
휴스턴은 현재 가을야구의 지배자다. 2011-13년 연속 100패 시즌을 극복한 휴스턴은 2017년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우승은 휴스턴 왕조의 서막이었다. 이후 7년 연속 최소 챔피언십시리즈까지 올라갔다. 다저스가 '정규시즌 전문가'라면, 휴스턴은 '포스트시즌 전문가'다. 같은 기간 월드시리즈 진출 4회, 우승 2회로 황금기를 빛냈다.

2017년 이후 포스트시즌 최다승

59 - 휴스턴
40 - 다저스
24 - 애틀랜타
21 - 양키스
19 - 필라델피아


정규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첫 36경기 12승24패였다. 아메리칸리그에서 두 번째로 나쁜 성적이었다(화이트삭스 9승28패). 하지만 초반 난조를 딛고 본색을 드러냈다. 이후 76승49패, 승률 .608는 메이저리그 전체 1위였다(2위 샌디에이고 73승49패 .598).

호세 알투베와 알렉스 브레그먼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올해 휴스턴은 전력상 이전보다 떨어진다. 선발진에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저스틴 벌랜더가 세월에 무릎을 꿇은 것이 치명적이다(5승6패 5.48). 이번 포스트시즌도 승률이 가장 낮은 지구 1위로 올라오면서 디트로이트와 와일드카드 시리즈를 치러야 하는데, 오늘 열린 시리즈 1차전을 패배했다.

와일드카드 시리즈가 시작된 2022년 이후, 1차전을 내주고 그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팀은 없었다. 즉, 휴스턴이 8년 연속 챔피언십시리즈를 이어가려면 와일드카드 시리즈에 없었던 역사를 만들어내야 한다. 휴스턴의 저력을 지켜봐야 될 일이다.

5. 다양성
올해 포스트시즌은 다채롭게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매년 올라왔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아메리칸리그 중부의 캔자스시티와 디트로이트가 가세하면서 색다른 모양새가 됐다. 지난해 106패팀에서 올해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캔자스시티는 2015년 이후 9년만, 지난 9년간 암흑기였던 디트로이트는 10년 만에 포스트시즌이다.

시장규모가 큰 빅마켓 다저스, 양키스와 대조적으로 클리블랜드와 밀워키, 캔자스시티는 스몰마켓에 해당한다. 개막전 팀 연봉 TOP 5가 포스트시즌에 올라온 가운데, 팀 연봉 27위 볼티모어(9452만400달러) 28위 클리블랜드(9333만3629달러) 같은 저연봉 팀도 있다.

2024 개막전 팀 연봉 TOP 5

1. 메 츠 : 3억562만4274달러
2. 양키스 : 3억332만2047달러
3. 다저스 : 2억4982만3654달러
4. 필리스 : 2억4347만6617달러
5. 휴스턴 : 2억3652만4482달러


베테랑들이 많은 다저스(평균 30.3세)와 메츠(30세) 애틀랜타(29.3세) 필라델피아(29.1세) 샌디에이고(29세)는 평균 연령이 높은 팀들이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클리블랜드(26.1세)와 밀워키(26.4세) 디트로이트(26.7세)도 있다.

신구 맞대결이 또 하나의 볼거리다.

6. 홈 어드밴티지
포스트시즌에서 홈팀이 유리한 건 사실이다. 익숙한 곳에서 홈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으로 상대를 압박한다. 지난해 필라델피아의 홈구장 시티즌스뱅크파크는 구장 내 함성 소리가 최대 111데시벨이 측정됐다. 100데시벨이 30분 이상 지속되면 청력 손상이 일어난다.

필라델피아 시티즌스뱅크파크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대부분 팀들이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결정돼도 끝까지 순위 경쟁에 나선다. 올해는 정규시즌 98승을 올린 다저스가 월드시리즈까지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다. 아메리칸리그는 94승을 거둔 양키스가 내셔널리그에서 다저스나 필라델피아가 올라오지 않을 경우, 월드시리즈 홈 어드밴티지를 확보한다.

흥미로운 건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는 홈 어드밴티지가 의미가 없었다. 와일드카드 팀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정규시즌 성적상 우위에 있던 팀들이 모두 탈락했다. 홈팀들의 성적이 도합 15승26패로, 승률 .366는 디비전시리즈가 도입된 199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번 포스트시즌도 홈 어드밴티지를 놓친 원정팀들이 선전할지 주목된다.

7. 신데렐라
이번 포스트시즌은 최정상급 선수들이 총출동했다. 올스타전 못지않은 별들의 잔치다.

양 리그 유력한 MVP 후보 오타니와 저지, 사이영상 후보 크리스 세일과 타릭 스쿠벌이 모두 포스트시즌에 나왔다(세일은 허리 통증으로 등판 여부는 미정). 이 선수들뿐만 아니라 바비 위트 주니어와 거너 헨더슨, 프란시스코 린도어, 브라이스 하퍼, 잭 윌러, 코빈 번스 등도 대거 올라왔다. 유력한 신인왕 후보 폴 스킨스는 빠졌지만, 잭슨 메릴을 비롯해 잭슨 츄리오와 콜튼 카우저, 루이스 힐도 가을야구 출정식을 가진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은 의외의 선수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선수가 등장한 팀이 우승에 다가갔다.

2021년 애틀랜타는 에디 로사리오와 호르헤 솔레어가 각각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2022년 휴스턴도 신예 제레미 페냐의 눈부신 활약이 있었다. 작년 텍사스도 아돌리스 가르시아의 한 방이 더해지면서 우승했다. 올해는 어떤 선수가 깜짝 스타로 탄생할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