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누전차단기 갈아끼우기

이틀 전 끔찍한 기억 하나. 낮 12시,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감자, 양파를 볶고 있는데 갑자기 전등이 나가더니 에어컨, 선풍기도 꺼지고, 뜸들이던 밥솥도 스톱, 인덕션도 정지되어버렸다. 이 염천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불 맞은 멧돼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확인한 결과 낡은 누전차단기가 말썽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었다. 원인은 얼추 파악했지만 문제 해결은 녹록지 않다. 수소문한 전기기사는 약속을 잡을 수조차 없다. 잠시 헐레벌떡거렸다고 땀샘은 폭발하는데 냉장고 안의 음식을 생각하면 잠시도 머뭇거릴 수 없었다. 결국, 급한 대로 공구상에서 30A짜리 누전차단기를 구입해 난생처음 셀프 교체를 했다. 갈아 끼운 누전차단기 스위치를 올리고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살았다~"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과 몇 시간의 전기재난을 겪고 난 이후 드는 생각, 전국적인 블랙아웃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아마 아비규환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폭염이 시작되면서 전력예비율은 한 자리대로 떨어진 지 오래다. 처서가 지났어도 폭염의 기세는 수그러들 줄 모른다. 그마저도 올해 여름이 앞으로 나날에서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라 하니 이제는 기후위기가 아니라 기후재난 상황이다.

폭염은 덥다는 정도의 괴로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높아진 수온과 빨라진 적조에 남해안 연근해 양식어업이 줄초상 났다. 멍게는 바닷물 속에서 삶아져 95%가 폐사해버렸다. 내륙도 안전하지 않다. 폭염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주남저수지와 주천강 어귀로 녹조가 유례없이 창궐하더니 지금은 낙동강 대부분이 녹조라테로 변해가고 있다. 이 녹조라테로 부산·경남 수백만 시민들의 식수가 만들어지고 농업용수가 된다. 기후위기가 만든 독소를 다시 인간이 섭취하는 악순환이다.

점점 더 더워진다고 발전소를 자꾸만 지어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발전하느라 배출한 탄소가 작금의 기후위기를 불러온 주범인데 말이다. 더구나 한국은 태양광, 풍력 등 모두 합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10%가 안 된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절반을 넘었고, 중국과 일본도 10%를 넘겼는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제일 꼴찌 수준의 기후악당국이다. 문제가 이렇다면 재난극복을 위한 관건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비상행동을 정부가 선도하고 시민들이 실천하느냐에 달렸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은 1년에 1인당 12t가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한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1인당 5t 정도인데 말이다. 대중교통만 이용해도 2t 이상이 줄고 외국여행 한 번 안 가면 1~2t이 줄어든다. 채식 중심 식단을 짜도 1t 이상 줄어든다. 이 모든 것도 정부가 앞장서 제도적으로 이끌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후위기 외에도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소멸', 지역 불균형으로 말미암은 '지역소멸'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누전)를 한꺼번에 겪고 있다. 말 그대로 재난의 총체적 집결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엉뚱한 정책과 인사로 한증막 같은 더위는 나 몰라라 국민 가슴에 불만 지르고 있다. 사람들은 국가 누전 상황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용산의 누전차단기를 갈아 끼우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짜쓰까(어찌할꼬)? 진짜로 내가 충전 드릴 들고 올라가야 하나?

/최영 푸른내서주민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