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빈 대활약, 아시아탁구선수권 여자 탁구 단체 4강 진출!

한 번의 포효가 경기장을 바꿨습니다. 신유빈 선수가 첫판을 3대0으로 틀어쥐는 순간, 한국 여자탁구의 리듬이 살아났습니다. 11-6, 13-11, 14-12. 듀스에서 연달아 딴 두 세트가 특히 상징적이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손, 마음의 속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감각, 그게 에이스의 표정이었습니다. 인도 부바네스와르 칼링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탁구선수권 여자 단체 8강, 한국은 홍콩을 3-1로 꺾고 준결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문장 하나가 더 붙었습니다. 다음 상대는 세계 최강 중국입니다.

이번 대회는 조금 다릅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분리해 단체전만 치르는 첫 아시아선수권입니다. 일정은 15일까지 이어집니다. 지난해 아스타나 대회에서 한국 여자대표팀은 6위에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8강에서 인도에 막혔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이번 8강은 단순한 한 경기 이상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회복했는지, 새 얼굴들로 다시 올라설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문을 연 사람은 역시 신유빈 선수였습니다.

경기는 깔끔했습니다. 1매치에서 신유빈 선수가 쑤치둥을 3-0으로 눌렀습니다. 스코어를 보면 세트마다 결이 다릅니다. 첫 세트는 주도권으로 잡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접전 끝에 가져왔습니다. 듀스에서 연속 득점을 만들어낸 장면이 많았는데, 이럴 때 보통은 서브 리듬을 바꾸거나 리시브 코스를 바꿉니다. 신유빈은 백핸드 짧은 리시브로 길이를 숨기고, 한 박자 늦춘 드라이브로 상대 타점을 흔들었습니다. 세게만 치지 않고, 상대의 생각을 틀어버리는 선택이 좋았습니다.

2매치에서는 김나영 선수가 주청주를 3-1로 잡아 흐름을 이어 갔습니다. 스코어 11-4, 11-8으로 쉽게 앞서다 한 세트를 내주고 13-11로 정리했습니다. 여기서 보인 건 ‘초반 강한 압박, 중반 변주, 막판 집중’이라는 패턴입니다. 김나영은 상대의 길게 들어오는 서브를 과감히 끌어당기면서 초반부터 리드를 잡았습니다. 세 번째 세트를 잃은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 세트 초반에 다시 주도권을 가져왔습니다.

3매치에서는 이은혜 선수가 응윙람에게 0-3으로 졌습니다. 11-13, 4-11, 10-12. 첫 세트 듀스를 놓치고 두 번째 세트가 급격히 무너진 흐름이 아쉬웠습니다. 리시브 길이가 살짝 길게 서면서 상대에게 선제 공격을 허용한 장면이 많았습니다. 여기서 팀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매치 스코어 2-1, 상대가 따라붙는 분위기, 낯선 코트의 공기. 이럴 때 누군가가 점을 찍어야 합니다.

4매치에서 신유빈이 다시 나왔습니다. 주청주를 3-0, 스코어는 12-10, 11-4, 11-1. 첫 세트부터 승부수를 던져 듀스를 잡아낸 뒤, 두 번째와 세 번째 세트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장악했습니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서브 코스를 계속 바꾸며 상대 리시브를 묶었고, 세 번째 세트는 초반 5-0으로 출발했습니다. 묻고 따지지 않는 집중력이었습니다. ‘에이스가 왜 에이스인지’를 보여주는 경기 운영이었습니다.

팀의 변화도 분명합니다. 이번 대회는 서효원, 전지희가 은퇴한 뒤 신유빈, 김나영을 중심으로 시작한 첫 큰 대회입니다. 얼굴이 달라졌고, 경기 톤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긴 랠리와 끈끈한 수비로 시간을 벌었다면, 지금은 이기는 순간을 빨리 만든 뒤 그 이점을 관리하는 흐름입니다. 선수 구성상 더 공격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에이스의 첫판, 네 번째 판의 무게가 더 커졌습니다. 오늘 장면은 그 설계가 맞아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다음 걸음은 훨씬 가파릅니다. 준결승 상대는 중국입니다. 쑨잉샤, 왕만위, 첸싱통, 왕이디, 콰이만. 세계랭킹 1위부터 5위까지 그대로 나올 수 있는 라인업입니다. 중국은 지난해 일본에 일격을 맞은 뒤 올 시즌 내내 ‘실수 없는 선택’을 반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체급이 낮습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첫 경기를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신유빈이 1매치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하고, 2매치에서 김나영이 승부를 길게 끌고 가면서 한 세트씩 긁어 모아야 합니다. 0-2가 되면 중국 상대로는 사실상 답이 없습니다.

세부 전술에서 보면, 중국을 상대로는 리시브 길이가 생명입니다. 반구가 살짝만 길어져도 바로 맞받아치기가 터집니다. 신유빈은 짧고 낮은 리시브로 초구를 억제하고, 세 번째 볼에서 백핸드 회전을 섞어 각도를 틀어야 합니다. 특히 쑨잉샤에게는 한쪽 코너로 몰아붙이기보다는 중간을 찌르는 볼이 효과적입니다. 포핸드와 백핸드 사이, 이른바 ‘포켓’을 겨냥하면 타점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타임아웃은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듀스에서 한 번의 호흡 정리가 세트를 바꿉니다. 오늘 홍콩전에서 듀스 두 번을 잡아낸 장면처럼요.

멘탈도 변수입니다. 중국은 득점 뒤 루틴이 빠르고 강합니다. 점수 두세 개가 연달아 나가면 공포감이 들어옵니다. 이때는 과감한 길들이 아니라 ‘확실한 한 공’이 먼저입니다. 서비스 미스, 리시브 미스가 연속으로 나오면 그대로 세트가 기울어집니다. 신유빈은 이런 국면에서 표정과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득점 후에 호흡 길이를 의도적으로 늘리고, 다음 공에서 단순한 코스로 흐름을 끊어냅니다. 오늘 4매치 12-10, 바로 그 감각입니다.

남자대표팀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 1-3으로 지며 8강에서 멈췄습니다. 2009년 이후 16년 만의 8강 탈락입니다. 장우진 선수가 목 부상으로 빠진 공백이 컸고, 2매치에서 조대성이 마쓰시마에게 풀게임 끝에 져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3매치 오준성이 3-0으로 반등한 것도 사실입니다. 스코어만 보면 아프지만, 시즌 첫 단체전이니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남자대표팀은 서비스-리턴 첫 두 공의 정확도를 다시 세팅하고, 매치 오더에서 에이스의 복귀 타이밍을 기다리면 됩니다. 무엇보다 오늘 여자대표팀이 보여준 것처럼 첫판의 에너지가 단체전 전체를 바꿉니다.

돌아와서, 오늘의 주인공은 분명 신유빈입니다. 두 번의 승리로 길을 열었고, 팀이 잠깐 흔들릴 때 다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점수표만 보면 ‘2승’ 네 글자이지만, 내용은 그 이상입니다. 초반 강약 조절, 듀스 처리, 서브 코스 변화, 랠리 길이 조절, 그리고 무엇보다 코트 안에서 동료들의 긴장을 낮추는 태도까지. “에이스가 팀의 공기를 바꿨다”는 말을 이보다 잘 설명하는 경기가 있을까요.

이제 중국전입니다. 객관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단체전은 가끔 이성으로 설명 안 되는 흐름이 찾아옵니다. 첫판 득점 두세 개, 한 번의 긴 랠리, 한 번의 환호. 그 순간이 길을 엽니다. 우리의 플랜은 단순합니다. 신유빈이 시작과 끝을 책임지고, 중간 판에서 한 번만 더 버텨내면 됩니다. 오늘처럼 듀스에서 지지 않고, 리시브 길이를 낮게 유지하고, 코스 예측 싸움에서 먼저 한 발 앞으로 내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승부가 됩니다. 설령 결승 길이 막힌다고 해도, 이 팀은 이미 지난해의 그 팀이 아닙니다. 표정이 달라졌고, 리듬이 달라졌습니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여기”의 감각입니다. 오늘 한국 여자탁구는 그 감각을 되찾았습니다. 신유빈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울림이 팀 전체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중국전에서 결과가 어떻든, 이 흐름을 잃지 않는다면 시즌은 길고 기회는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문장은 이것일지 모릅니다. 에이스는 혼자 이기지 않습니다. 다만 먼저 길을 냅니다. 오늘 신유빈이 그 길을 냈습니다. 이제 모두가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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