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 최상급 럭셔리,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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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프랑스어로 '높은 재봉'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단순한 옷 만들기를 넘어 패션 예술의 정점을 상징한다. 이 명칭을 사용하려면 꽤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바로 파리에 디자인 아틀리에가 있어야 하고, 최소 15명 이상의 장인을 고용해야 하며, 매 시즌 최소 25벌 이상의 핸드메이드 의상을 선보여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물리적 규칙보다 더 중요한 건, 오트 쿠튀르 덕분에 패션이 산업을 넘어 시대의 문화이자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 남자가 시작한 혁명
1858년, 파리에서 활동하는 영국 출신 재단사 찰스 프레데릭 워스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고객이 원하는 옷을 만드는 기존 방식 대신, 자신이 디자인한 컬렉션을 먼저 선보이고 고객이 선택하도록 한 것.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로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는 옷을 만드는 사람을 '장인'에서 '창조자'로, '재단사'에서 '디자이너'로 격상시켰고, 최초로 의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레이블을 달았으며 모델을 고용해 새로운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아는 패션쇼의 시작이었다.
워스의 혁신은 단순히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가 아니었다. 패션 디자이너를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의상을 시대정신을 담는 캔버스로 만들었다. 그의 아틀리에에서 탄생한 여러 가지 룩은 19세기 후반 여성 패션의 아이콘이 됐고 더 중요한 건, 이후 모든 패션 하우스가 그의 방식을 따르게 됐다는 점이다. 오트 쿠튀르는 이렇게 패션사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됐다.
샤넬이 말한 "쓸모없는 아름다움"

20세기 초, 코코 샤넬은 오트쿠튀르 문화를 비판하는 뉘앙스로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코르셋에서 여성을 해방시키며 실용성을 강조한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샤넬은 현재 오트쿠튀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하우스가 됐다. 샤넬의 트위드 재킷 한 벌은 300시간 이상의 수작업이 들어가는데, 실용적인 디자인도 오트쿠튀르의 손을 거치면 예술품으로 탄생함을 알 수 있다.

1947년, 크리스찬 디올은 허리는 극도로 가늘고 스커트는 풍성한 디자인의 '뉴 룩'으로 전쟁 후 침체된 파리 패션계를 되살렸다. 한 벌의 드레스에 25미터가 넘는 고가 원단이 사용되는 탓에 낭비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디올의 드레스는 되려 희망의 상징이 됐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우아함으로의 회귀. 오트쿠튀르는 단순히 옷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을 담은 선언문임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다.
예술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


냉정한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오트 쿠튀르는 사실 적자 사업이다. 럭셔리 그룹의 실질적 수익은 핸드백, 향수, 기성복에서 나오며 실제 한 벌에 수억 원을 호가하는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살 수 있는 고객은 전 세계적으로 4,000명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 시즌 당 단 몇 벌만 팔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이어가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서가 아닌, 사라져가는 기술을 보존하는 박물관이자 새로운 시도가 허용되는 실험실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트 쿠튀르 룩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보존하는 수많은 손기술은 단순한 공예가 아니라 수백 년간 축적된 패션 문화의 유산으로 쌓인다.
패션사를 쓴 오트 쿠튀르의 순간들


디올의 '뉴 룩'은 전쟁 후 여성성을 재정의했다. 극단적으로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스커트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암울했던 시대에 우아함과 희망을 되찾으려는 집단적 열망의 표현으로 작용했다.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역시 마찬가지다. 1966년 처음 선보인 여성용 턱시도는 남성복의 권위를 빌린 것이 아난 여성이 권력과 섹슈얼리티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음을 선언한 혁명이었다. 알렉산더 맥퀸의 아티스틱한 쇼들은 패션이 실현할 수 있는 서사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했다. 그의 런웨이는 옷을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라 인간의 취약함, 아름다움, 광기를 탐구하는 퍼포먼스 아트였으니까.


이 모든 순간은 오트 쿠튀르이기에 가능했다. 상업적 성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극단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창작 환경,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장인 기술까지. 오트 쿠튀르는 디자이너에게 꿈꿀 권리를 주고, 그 꿈이 패션사의 이정표가 되도록 만들었다.
느림의 가치가 빛나는 시대
우리는 패스트 패션 시대에 살고 있다. 몇 주 만에 트렌드가 바뀌고, 옷은 소모품처럼 취급된다. SNS를 스크롤하면 매일 새로운 스타일이 쏟아지고, 지난주 산 옷이 벌써 올드해 보인다. 이런 시대일수록 오트 쿠튀르의 정신은 더욱 중요해진다.


한 벌의 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장인이 수백 시간을 바느질하는 세계. 완벽한 주름을 위해 원단을 열 번도 넘게 다시 재단하는 세계. 그리고 이익보다 아름다움을 우선시하는 세계. 오트 쿠튀르는 속도와 효율로 잠식된 지금도 오롯이 '느림'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느림 속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완벽함, 디테일에 대한 집착 그리고 타협 없는 예술성을 증명하면서 말이다.

일 년에 두 번,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가 열릴 때마다, 전 세계는 파리를 주시한다. 그곳에서 선보이는 컬렉션은 단순한 쇼가 아닌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한이다. 패션이 단순히 입는 것을 넘어 꿈꾸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오트 쿠튀르. 이 증명이 계속되는 한, 패션은 영원히 무한한 예술로 남을 것이다. 마치 영원히 꿈을 꾸듯이.
이설희 기자 seherhe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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