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 "무능한 정부에 자식 빼앗겨"…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22일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참사 발생 24일 만이다. 유족들은 진정한 사과와 책임규명을 요구하며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 유가족과 협의한 온전한 추모 등을 촉구했다.
유가족들이 모인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의실 곳곳에서는 기자회견 내내 오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족들은 공통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를 물으며 피해자들이 참여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이후 희생자를 위한 추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영정사진 대신 웃는 아들의 사진을 들고 온 희생자 이남훈 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보여주며 "사망일시도 추정, 사인도 미상이라고 적혀있다"라며 "병원 이송 중에 사망했는지, 심폐소생술이라도 받았는지는 알아야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여전히 아들의 "엄마 배고파요"라는 목소리가 맴도는 것 같다는 그는 정치권을 향해서 "제대로 된 수사, 제대로 된 사과를 포함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진상 및 책임 규명을 촉구했다. 또한 "무능한 정부에 아들을 빼앗겼지만 무능한 엄마가 되지는 않겠다"라며 "내 아들이 죽은 원인이 무엇인지 엄마와 우리 가족은 알아야겠다"라고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정부 총체적 불감증으로 자식 빼앗겨" 울분
희생자 송은지 씨의 아버지도 "참사는 위로부터 아래까지의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으로부터 비롯되었다며 정부 및 행정당국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구체적인 도움 요청이 있었지만 경찰들은 상황을 종료했다"라며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보고 받은 적 없다는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이임재 당시 용산경찰서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에게 (참사 당시) 뭐하고 있었냐고 묻고 싶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희생자 이민아 씨의 아버지 이종관 씨 또한 참사 이전과 이후 정부 대응을 비판했다. 이 씨는"비극의 시작은 인파 군중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며 "기동대를 투입하지 못했다는 말은 결국 경찰이 일반 시민들의 안전이 아니라 시위관리와 경호근무에 얼마나 매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관계기관의 대처를 지적했다.
이 씨는 또 "유족들을 '반정부 세력'처럼 취급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씨는 "유족들의 모임 구성,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도 없었고 피해자들에게 사고 발생 경과와 내용 수습 진행 상황과 피해자의 기본적인 권리 안내 등 기본적인 조치조차도 없었다"라며 "이를 차단한 것과 다름없는 정부의 대처는 비인도적"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유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정부가 마련해줘야 한다는 말은 민변을 비롯한 시민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오던 주장이다. 유족들은 참사 후 수일이 지나서야 서로를 만날 수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민변 '10.29 참사' 대응 TF 공동간사 오민애 변호사는 "두 차례 유족 간담회(15일, 19일)에서 확인된 것은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 조치를 정부가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밝힌 공무원 1대1 연결도 유족들 사이에선 체감이 엇갈렸다는 증언도 나왔다. 민변 서채완 변호사는 "어떤 유가족들은 장례 치르고 나서도 아무런 연락 못 받았다라고 말했다"라며 "담당 공무원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분도 계시고, 필요한 지원에 대한 조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호소도 나왔다"라고 전했다. 다만 한 유족은 "장례 이후 트라우마센터에서 연락이 와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억장 무너진다"…부모들, 정부에 6대 요구사항 발표
참사 이후 처음 언론 앞에 선 유족들은 저마다 희생자 혹은 정치권을 향한 편지를 써오기도 했다. 희생자 이상은 씨의 아버지는 참사 이후인 지난 7일 딸에게 작성한 편지를 읽었다. 그는 "이제는 별이 된 사랑하는 우리 딸, 먼저 보낸 미안함에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억장이 무너지는 원통함에 가슴을 친다"라며 "맞벌이하는 부모 걱정할까 봐 투정 한번 없던 우리 딸, 부르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다"라며 울음을 삼켰다.
또한 "미국 공인회계사 합격해서 '아빠 나 합격했다'는 통화 녹음을 들으며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라며 "너를 보내고 이튿날 너의 핸드폰으로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회사에서 좋은 소식 문자가 왔다"라고 딸과 관련된 이야기를 힘겹게 꺼내기도 했다.
이번 참사 희생자로 알려진 배우 이지한 씨의 어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편지를 읽었다. 그는 "'엄마' 하고 들어올 것 같고, '배고파요' 환청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받으려고 한다"라며 "지한이 아빠는 장례식 이후 자살 시도를 했고, 지한이 누나는 자기가 대신 죽어야 한다며 죄책감에 시달린다"라고 전했다.
또한 "이 참사는 초동대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로 인한 살인사건"이라고 말하며 윤 대통령에게 "158명의 아이들을 구할 수 없다면 5000만 명은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고 외쳤다. 이 씨의 모친은 이어 이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고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할 것을 촉구했다.
유족들과 민변은 △진정한 사과 △성역없는, 엄격한,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진상 및 책임규명 △참사 피해자의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등 적극적인 지원 △희생자들에 대한 온전한 기억과 추모를 위한 적극적 조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입장 표명과 구체적 대책의 마련 등 6가지 요구사항을 밝혔다.
"희생자 명단 공개 핵심 아니다"
특히 최근 일부 언론 매체의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에 대해서 유족 대리인 윤복남 변호사는 "명단 공개에 대한 유족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라면서도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진정으로 유가족 뜻이 제대로 반영되고, 추모를 하고 있는지가 핵심"라고 말했다.
민변에 따르면 현재 민변에는 참사 희생자 34명 이상의 유족이 연락을 취해왔다. 민변은 유족들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통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민변 윤복남 변호사는 "유족들 말씀을 들어보니 장례를 다 치렀고, 수사 진행 중이니 이제 마무리 된것처럼 진행되는 상황이라 유가족과 협의해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게 되었다"라며 "향후 손해배상 등 관련해서도 철저한 진상 및 책임 규명이 선행되지 않는 한 금전적인 배상만으로는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게 저희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상현 기자(shyun@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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