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 관객이 직접 고민할 여지를 좀 더 줬더라면
[박꽃의 영화뜰]
[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 주의 : '베테랑2'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 칸영화제에 초청되며 주목받았던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가 추석 연휴 국내 개봉하면서 초반 흥행몰이에 성공 중이다. 첫날 50만 명, 이튿날 75만 명, 셋째 날 82만 명, 넷째 날 76만 명을 끌어모으며 개봉 나흘 만에 280만 명을 돌파했다. 그런데 명절 연휴를 보내는 동안 즐길 만한 오락액션영화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우호적 평가 사이로 '기대보다 못하다'는 야박한 의견도 적지 않게 터져 나와 영화계의 눈길을 끄는 모양새다.
'베테랑'(2015)의 강점은 '슈퍼 갑'에 용감히 맞섰던 서민 경찰 서도철(황정민) 캐릭터의 명쾌함에 있었다. 관객은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었던' 주인공에게 1300만 명이라는 신화적 흥행을 허락할 만큼 큰 지지를 보냈는데, '월급쟁이 경찰'이 노동자에 갑질하는 젊은 재벌 조태오(유아인)를 기어코 체포했다는 설정이 평범한 관객들을 한껏 대리만족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관객이 '베테랑2'에 기대한 것 역시, 새로운 사건과 악당을 마주한 서도철이 어떤 방식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할지였을 것이다.
공교로운 건 '베테랑2'의 서도철은 관객이 감정을 이입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인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는 법의 솜방망이 처벌을 대신해 직접 범죄자를 응징하는 극 중 자경단 해치를 어느 정도 지지했다가, 나중에는 돌연 제압하려 드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처음에는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괘씸한 범죄자들을 나서서 처벌해 주니 속이 시원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정작 그 자경단 해치가 자신의 경찰 후배인 박선우(정해인)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는 '살인은 나쁜 짓'이라며 목숨 걸고 악행을 제압하려 든다.
주인공의 이런 태도 변화는 의도된 설정으로 보이긴 한다. 류 감독은 '베테랑2' 개봉 전 기자회견에서 “성공을 재탕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관객이 속 시원한 해답보다는 질문거리를 갖고 극장을 나섰으면 했다”고 말했다. 9년 전 개봉한 '베테랑'이 큰 흥행에도 불구하고 '마실 땐 시원하지만 건강에는 썩 좋지 않은 탄산음료와 같은 일시적 통쾌함만 남겼다'는 비판적 평가까지 함께 받은 만큼, '베테랑2'에서는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향한 뒤에도 곱씹어볼 만한 생각할 거리를 남기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만 그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됐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다. 서도철은 “좋은 살인 있고 나쁜 살인 있느냐”며 자경단 해치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지만, 이미 관객은 자경단 해치가 그리 단순한 대사 한마디로 정리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는 '심신미약'이나 '초범', '반성' 같은 명분으로 법의 단죄를 피해 간 가해자들을 향한 사회적 분노가 탄생시킨 시대적 괴물이고, 범죄로 인해 피눈물 흘린 약자 입장에서는 도덕적 당위를 넘어 생존과 인과응보의 영역에서 지지하게 되는 논쟁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독은 관객이 이처럼 복잡다단한 맥락 위에 선 악인을 마주하게 이야기를 설정해 뒀으면서도, 정작 관객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만한 영화적 여지를 남겨두지는 않는다. 도리어 서도철의 입을 통해 '아무튼 살인은 모두 나쁘다'는 도덕적인 정답을 단번에 제시하고는 자경단 해치를 잡아들이기 위한 액션 질주에 매진하는 쪽을 택했다. 관객이 과거 '어이가 없던' 악인 조태오를 체포하던 시점 느낀 저항 없는 쾌감과는 조금 다른, 애매한 물음표를 마음속에 남기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배우 정해인이 자경단 해치 역을 맡아 충분한 호연을 보여줌에도 후반부 들어 그 힘이 부쩍 약화하는 것 역시 이런 까닭 때문이다. 지지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지할 것인가. 관객에게 여러 고민거리를 안겨줄 법했던 악인은 마지막에는 단순히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라는 평면적 캐릭터로 전락해 서도철에게 응당 처단당한다. 오락성과 통쾌함으로 승부했던 '베테랑'의 색채를 넘어 모종의 질문까지 던지고 싶었다던 류 감독의 진화한 연출 의도를 고려하면, 관객이 스스로 고민할 여지를 좀 더 남겨뒀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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