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를 삶으로 되돌리는 대동맥 명의가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생과 사의 기로에 선 환자를 만난다. 골든타임을 사수하기 위해 시간과의 전쟁을 치르지만, 하늘이 언제나 기적만을 선물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감당하기도 한다. 심장, 폐 등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장기를 다루는 ‘외과의 꽃’,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이야기다.
흉부외과 중에서도 대동맥 분야는 수술 난도가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은 찢어지거나 파열되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대동맥이 찢어지면 한 시간마다 사망률이 1% 증가하므로 진단 직후 신속한 치료가 필수다. 골든타임이 짧은 만큼 의료진의 숙련도와 집중력이 수술 결과를 좌우한다.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 송석원 교수는 평생 대동맥 외길을 걸어온 명의이자, 국내에서 대동맥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의사다. 2008년 대동맥 클리닉을 시작으로 2023년 국내 최초로 대동맥혈관병원을 출범시켰으며, 올해 8월에는 진료 개시 2년 만에 세계 최단 기간 대동맥수술 2000례를 달성하는 대기록을 썼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응급환자를 단 한 명도 거절하지 않고 수술을 진행하면서도 통상 20% 정도인 수술 후 사망률을 3%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동맥이 찢어지는 사고로 30여 분간 심장이 멈춘 환자,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을 전전하다 뒤늦게 수술실로 인계된 환자 등 밤낮없이 초응급환자를 만나며 비극적인 결과를 마주할 때도 있지만, 송석원 교수는 의료진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환자에게 반드시 삶의 기회가 다시 열린다고 믿는다. 연구실 한쪽 벽면에 빼곡하게 붙은 감사 편지가 환자에 대한 그의 신념을 대변한다. 생사의 기로에 서 있던 환자들이 기적처럼 생명을 되찾는 것만이 대동맥 의사로서의 고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그는 말한다.

어떤 계기로 흉부외과 의사의 길을 걷게 됐나?
인턴 때 진료과를 하나씩 돌아보고 전공을 결정하는데, 나는 모든 과가 다 흥미로워 마지막까지 고심했다. 그러던 중 흉부외과의 관상동맥우회술에 참여해 간단한 보조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수술이 끝난 뒤 교수님께서 “너무 잘했다”며 칭찬을 해주시더라. 돌이켜보면 당시 흉부외과 전공의가 부족해 ‘이 인턴을 흉부외과 의사로 키워야겠다’는 의도가 담긴 말씀이었던 것 같다.(웃음) 결국 그 말씀에 마음이 움직여 다른 과를 뒤로하고 흉부외과에 지원했다.
대동맥 분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스승이신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병원 유경종 교수님의 말씀이 계기가 됐다. 전공의 시절 응급수술로 생명을 구하는 일에 큰 매력을 느꼈는데, 유경종 교수님께서 손이 빠르고 응급수술을 선호하는 내 성향을 보시고 대동맥 분야를 권하셨다. 사실 그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대동맥 전문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당시 흉부외과 의사들은 심장판막수술이나 관상동맥우회술을 많이 선택했고, 대동맥 전문 의사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대동맥수술 건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스승님의 조언이니 고민 끝에 전공 분야로 선택했다.
수련 과정 중 어려움은 없었나?
수술 난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환자들의 사망률이 높다는 점이 심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대동맥수술은 다른 수술과 비교해 합병증을 얻거나 사망할 확률이 높다. 레지던트 때는 의사로서 그런 장면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다. ‘다른 분야를 택했다면 이런 괴로움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주로 어떤 질환을 진료하나?
대동맥 벽이 찢어지는 대동맥박리, 대동맥이 부풀거나 늘어나는 대동맥류 같은 대동맥질환 환자가 많다. 대동맥질환은 진단 즉시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방치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응급수술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대동맥판막이 잘 열리지 않는 판막협착증, 혈액이 역류하는 판막역류증, 말초혈관질환 등 다양한 환자를 본다.
대동맥질환은 발병하면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약물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관찰하다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도 하고, 수술이 아닌 시술로 치료가 가능한 환자도 있다. 대동맥박리를 예로 들면, 심장에서 머리 쪽으로 올라가는 상행 대동맥부터 온몸에서 박리가 일어난 경우 사망 위험이 크다. 발병하고 나서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사망률이 1%씩 올라가는데, 하루 동안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률이 25%, 이틀을 넘기면 50%로 치솟는다. 응급수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반면 하행 대동맥과 복부 대동맥에 박리가 일어나면 수술하지 않아도 혈액순환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혈압을 조절하고 맥박을 떨어뜨리는 약물을 투여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한다.
이전에는 가슴이나 배를 연 뒤 문제가 생긴 대동맥을 잘라내고 인조혈관으로 치환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했다면,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해 개흉·개복 없이도 시술이 가능하다. 사타구니 부위의 대퇴동맥을 통해 대동맥에 접근한 뒤, 스텐트로 된 인조혈관을 삽입하는 시술이 대표적이다. 이 시술은 2~3시간 이내에 끝난다.

응급수술은 얼마나 자주 하나?
대동맥질환은 주로 새벽에 증상이 나타난다. 대동맥질환 환자에게 갑작스럽게 가슴이나 등, 복부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나타나면 급성 대동맥박리나 대동맥류 파열일 확률이 크다. 이때 서둘러 병원을 찾지 않으면 사망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구급차로 후송 중 사망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 새벽이나 낮에 전원 문의를 받고 응급수술을 하는 건 한 달에 100건 정도다. 하루에 3~4건 수술을 진행한다고 보면 된다. 오늘은 인터뷰를 마친 뒤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오는 환자를 수술하고, 뒤이어 진주와 안산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의 응급수술이 예정되어 있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오전 5시쯤 기상한 뒤 7시까지 출근해 입원 환자 1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진을 하고, 8시 반부터 곧바로 수술을 시작한다. 끝나는 시간은 그날 하루 수술을 몇 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계획된 수술이 아닌 응급수술 일정이 잡히면 중간중간 그 수술도 진행한다. 퇴근 후에는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집에서 병원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보니 새벽에 응급환자가 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간다. 체력 관리를 위해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두 달 전부터는 아침 식사도 하고 있다.
휴식 시간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쉴 때는 무엇을 하나?
2008년부터 주치의로 대동맥수술을 시작해 17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돌이켜보면 짬이 날 때 의자에 앉아 잠깐 조는 것이 전부였지, 제대로 쉬거나 나를 위한 투자를 한 경험이 별로 없다. 올해부터는 짧게나마 나를 위한 시간을 마련하자는 생각에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주로 회복·희망·치유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데, 지금 네 번째 작업을 하고 있다.

2023년 6월부터 이대서울병원 대동맥혈관병원 초대 병원장으로서 대동맥질환 치료를 주도하고 있다. 센터가 아닌 병원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전에 근무하던 병원에서는 대동맥 클리닉과 대동맥 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센터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조직 형태가 병원인데, 사실 병원 내에 또 다른 특성화 병원을 만들기가 쉽지는 않다. 다른 과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은 상황에 따라 병상수를 조절할 수 있고, 응급실·원무팀·총무팀 등의 부서를 꾸릴 수 있다.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 인력으로 조직도를 구성할 수 있다 보니 더욱 신속하고 정확한 진료가 가능하다. 이런 이점 때문에 병원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큰 프로젝트의 선봉장인 셈이다. 부담감은 없었나?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대동맥혈관병원은 전례가 없다. 레퍼런스가 없다 보니 설립하기 쉽지 않았고,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유경하 이화여대의료원 원장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병원 설립을 위한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더불어 우수한 시설이나 장비는 물론 흉부외과·마취통증의학과·영상의학과 교수, 수술팀, 간호팀 등 전문 인력의 팀워크가 너무나 잘 갖춰져 있어 부담감보다는 환자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이대병원 대동맥혈관병원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패스트 트랙 진료 시스템인 ‘EXPRESS(Ewha Xtraordinary PREcision Safe AORTIC Surgery)’을 365일 24시간 가동한다. 응급환자가 우리 병원에 온다고 하면, 즉시 환자 발생 지역과 환자의 현재 상태 등이 담긴 메시지가 대동맥혈관병원의 전 인력에 발송된다. 그 내용을 토대로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수술 준비를 마치고, 환자가 도착하면 응급실을 경유하지 않고 전용 엘리베이터로 4분 만에 수술실로 옮긴다. 수술실 한 곳과 중환자실 일부 병상은 항상 비워 두고, 옥상에 헬리 패드가 있어 언제 어디서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즉시 수술과 입원이 가능하다.
더불어 대동맥수술과 스텐트 삽입 시술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영상 진단 장비와 수술 장비를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 수술실도 마련돼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고, 시술로 치료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수술과 시술을 모두 해야 할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에서는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진료 개시 2년 만에 세계 최단기로 대동맥수술 2000례를 달성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2022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1년에 630례 수술을 했다. 그때 팀원들도 나도 너무 지쳐 다음 해에는 1년에 630례 수술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대동맥혈관병원을 열 때는 1년에 300~400례 수술을 목표로 잡았는데, 개원 첫해에만 800례를 달성하고, 2년 만에 2000례를 돌파했다.
2000이라는 숫자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말이 안 되는 숫자다. 1년에 1000명이상 수술했다는 건데, 그럼 평일과 주말 상관없이 하루에 세 건씩 수술했다는 뜻이다. 우리 병원 구성원 135명 전체가 한 명도 빠짐없이 환자를 살리겠다는 하나의 목표 아래 뭉쳤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앞으로도 모든 구성원이 하나 되어 더 많은 초응급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수술 후 사망률은 어느 정도인가?
이전에는 대동맥질환 수술 사망률이 20% 정도였는데, 우리 병원에서는 이런 수술 후 사망률을 3%까지 끌어내렸다. 의료부터 행정까지 모든 파트의 구성원이 오직 대동맥·혈관질환에만 집중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환자에게 문제가 발생해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수술을 매일같이 진행하기 때문에 의료진의 경험이 풍부하다. 수술 경험이 많으면 루틴이 생겨 합병증이 줄고, 환자의 생존율은 올라간다. 혹여 수술 후 합병증이 생기더라도 경험 많은 의료진이 포진해 있어 환자 상황에 맞게 대처가 가능하다.
대동맥수술 사망률 3%는 세계적으로 매우 놀라운 수치이다. 다시 말하면 여전히 수술받은 1000명 가운데 30명은 사망한다는 뜻이다. 1년에 30명이면 1~2주에 한 명은 사망한다는 말이다. 물론 사망률을 제로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상태가 정말 좋지 않은 환자는 우리가 수술해도 생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환자가 돌아가실 경우 그 사례를 리뷰해 원인을 분석하고, 다른 환자 치료 시 반드시 피드백을 한다.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다.

의사로서 환자의 사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환자가 사망하면 외과 의사들은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수술 과정에서 다른 방법을 택했으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다음 환자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런 마음까지도 잘 추스르는 과정을 거쳐야 외과의사로서 비로소 한 단계 성장한다.
평소 어떤 신념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나?
‘모든 환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진료를 한다’는 소신을 지키려고 한다. 의사와 보호자가 최선을 다하고, 환자 스스로 살려는 의지가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심폐소생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볼 때는 수술만이 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아니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도록 돕는 것이 맞는지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의사가 포기하지 않으면 환자에게는 반드시 삶의 기회가 생긴다고 믿는다.
대동맥 전문의로서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
환자가 아닐까? 내게는 생과 사의 기로에 있던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살아나는 것만이 역경을 극복하게 하는 유일한 요소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우리 팀이 협력해 살려냈을 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개인 블로그처럼 환자들과 소통 창구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인가?
환자들이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대동맥질환은 유병률이 낮아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본인이 진단을 받아도 어디에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블로그에 증상을 남기거나 치료를 받고 싶다고 남긴 환자 가운데 외래로 내원해 수술이나 시술을 받은 경우도 있고, 응급실을 방문해 수술을 받은 경우도 있다. 나 역시 환자와 소통하면서 많은 힘을 얻는다. 때로는 이러한 소통 창구가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나의 진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의사로서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그때도 대동맥 전문의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당연하다.(웃음) 물론 쉬운 길은 아니지만 의료 분야 중 대동맥만큼 흥미진진하고 다이내믹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의사로서 최종 목표가 궁금하다
나도 이제 나이가 5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환자에 대한 애정은 기본이고, 대동맥수술에 진심이어야만 대동맥 전문의가 될 수 있다. 그런 제자를 잘 키워낸 뒤에는 이들을 전국 각지로 보내 의료 평준화 시대를 만들고 싶다. 아직 다른 지역의 대동맥질환 응급환자가 우리 병원에 오다 사망하는 사례가 적잖다. 전문의를 양성해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9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사진 김동오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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