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감동적인 장르적 배신 -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마지막을 보고

이미지: MBC

상상을 해보자.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고,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딸이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여기에 지금의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까지 한 엄마. 이런 극단적인 비극이 연속으로 벌어지는 소재인데, 다 보고 나서 찝찝하기 보다 뭉클한 눈물이 난다면, 믿어지는가?

얼마 전 종영된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마지막화에 대한 에디터의 소감이다. 시리즈를 다 보고 난 뒤 배신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장르가 아닐까 생각한다. 범죄 스릴러인 줄 알았는데, 이토록 감동적인 가족드라마였다니! 물론 이 배신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기분 좋고 훈훈하다. 10부작이라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서스펜스와 스릴러 그리고 뜻하지 않은 감동까지 있었던 드라마의 돋보이는 점을 몇 가지 키워드로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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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10부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이 질문을 아버지가 딸에게 조금만 일찍 했다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빈아, 네가 동생을 죽였니?"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존재한다.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태수 가족. 뜻하지 않은 사고로 아들이 실족사하자 곁에 있던 딸이 의심을 받는다. 평소에도 남들과 다른, 심상치 않은 행동을 일삼던 딸이 실은 동생을 죽인 것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을 마주할 수 없었던 두 부모는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새겨두고 딸을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몇 년 뒤 갑작스러운 엄마의 자살과 연이어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에 아버지는 세월 속에 묻어두었던 딸의 의심을 증명하기 위해 수사를 진행한다.

세상 모두가 외면해도 가족만큼은 믿어야 한다는 진리.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이것을 지키기에는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프로파일러 아빠 장태수(한석규)가 딸 장하빈(채원빈)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고군분투보다, 몇 년 전 아들 실족사 역시 딸이 죽였을지도 모를 의심을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느 가족스릴러와 다른 점. 하지만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수록 자신의 의심이 더 큰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생각에 후회, 그리고 참회의 회고록을 조금씩 적어 나간다. 믿을 수 없었던 현실, 밝혀지는 진실 앞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비극 앞에 과연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진솔하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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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중반부에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연기파 배우 유오성이 극중 살인사건에 연루된 아들 박준태(유의태) 아버지 정두철 역으로 출연한다. 아들과 아버지의 성이 다를 정도로, 정두철이 예전에 저질렀던 죄 때문에 두 사림의 인연은 오래전에 끊어졌다. 하지만 아들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아버지는 그의 죄를 해명하기 위해 어떠한 짓이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범죄일지라도. 정두철이 했던 대사가 인상적이다. "네(준태)가 무슨 짓을 저질렀어도 그건 살인이 아니다".

두 부자의 모습은 태수-하빈과 대비된다. 자식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며 끝까지 믿는 아버지, 자식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게 않다며 끝까지 믿지 않는 아버지. 물론 드라마는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다만 믿음의 바탕 속에 감춰진 진실을 찾아가는 길과 불신의 밑바닥에서 출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름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정두철의 태도를 보며 태수가 점점 변화되는 것도 작품의 또 다른 터닝 포인트. 불신과 의심으로 시작한 시리즈는 그럼에도 가족을 믿어야 하는 절박한 마음을 의미 있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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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을 의심해서 미안했던 것은 아버지 장태수만이 아니다. 10부작 동안 숨죽이며 극을 바라본 시청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사이코패스’라는 단어에 속았던 것은 아닐까?

많은 드라마에서 사이코패스는 씻을 수 없는 낙인 마크다. 그 자체가 인간성의 상실이며, 잠재적 범죄자이고, 유력한 용의자다. 반드시 단죄해야 할 절대 악이며, 피바람을 불게 할 필요조건으로 해석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하빈 역시 마찬가지다. 작중 내내 사이코패스의 기질을 드러내며 대부분 사람들은 그가 살인을 했을까, 아닐까에만 초점을 맞춘다. 설사 그가 아니라고 해도 천재적인 두뇌 솜씨로 주변을 철저하게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태수조차도 하빈을 믿는 것을 주저한다.

하지만 10화 마지막, 태수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건넨다. 아무리 진실을 말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 속 하빈은 혼자만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무슨 사건이 일어나면 당연하듯 그를 의심했다.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쉽게 단정할 수 없지만, 극중 모두 그리고 현실 속 우리 역시 사이코패스라는 하빈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외롭게 버티고 있었다.

<이토록 친밀한 살인자>는 '사이코패스' 하빈을 통해 편견의 무서움을 이야기한다. 많은 미디어에서 단정지었던 사이코패스라는 편견, 거기에 갇혀서 하빈을 의심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다. 10화가 다 되어서야 세상의 차가운 시선에 묵묵히 투쟁했던 하빈의 지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견을 조금만 일찍 지웠다면, 이 같은 비극은 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작품은 이런 과오를 현실에서 하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편견에서 빚어진 오해가 의심을 낳고, 그 시선이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다가옴을 시리즈는 똑똑하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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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용미, <이토록 친절한 배신자>의 마지막에 이보다 어울릴 단어는 없었다. 이건 반전이다. 가족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흥미로운 설정 속에 주인공 하빈을 용의자로만 바라봤던 시청자에게 묘한 울림을 전하기 때문이다. 불신의 서스펜스에서 출발했지만, 균열된 아버지와 딸의 화해를 감동적으로 그리며, 의심과 편견에서 벗어나 사람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할 시간을 만들어줬다.

마지막에 밝혀진 진범의 정체에 놀라기보다, 시종일관 무표정했지만 끝내 울음을 터트린 하빈에게 측은하고 미안한 마음이 더 들었던 것은 왜때문일까? 9화까지 많은 사람들은 하빈을 보지 못했고, 사건만 쫓아가고 있었다. 정작 그런 시선 속에 상처받았던 것은 바로 편견과 의심으로 얼룩진 하빈이었는데 말이다. 작품이 10화까지 차분하면서도 꾹꾹 눌러 담은 진정한 메시지가 기분 좋은 배신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스릴러를 기대하면서 정주행했다가 이토록 애절한 가족드라마를 만날 줄이야…. 태수와 하빈이 이제는 서로에 대한 단 하나의 의심과 불신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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