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의 겨울은 이상하게도 시간이 조금 더 빨리 오는 듯하다. 도시에서는 아직 낙엽이 매달린 늦가을인데, 정선으로 발길을 돌리면 어느새 능선 끝마다 하얀 기운이 내려앉아 있다. 특히 가리왕산 주변은 첫눈이 내리는 순간부터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을 지나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하는 순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한다.
“아, 겨울이 벌써 여기까지 왔구나.”
정선군 북평면 중봉길에 자리한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이 계절을 가장 담백하게 보여주는 길잡이다. 원래 가리왕산은 보호를 위해 등산이 허용되지 않는 구간이 많아, 누구나 쉽게 정상부 근처까지 오를 수 있는 이 케이블카가 여행자들에게는 절묘한 대안이 된다. 걸음을 거의 쓰지 않고도 해발 1,500미터 가까운 산정까지 오르는 경험은 생각보다 더 색다르고, 또 겨울 여행을 처음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없다.
23분 동안 천천히 올라가는 길, 그 사이가 겨울의 하이라이트다

숙암역에서 곤돌라가 출발하면, 천천히 멀어지는 지상 풍경 사이로 정선의 산맥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동 시간이 약 23분이라 여유가 있고, 유리창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말보다 풍경이 더 많은 걸 들려주는 시간이다.
케이블카가 고도를 높일수록 산 능선의 결이 선명해지고, 나무 사이에 내려앉은 첫눈이 흐릿한 회색 숲에 하얀 점을 찍는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공기마저 바뀐다는 걸 온몸이 먼저 알아챈다.
상부역에 도착하면 시야는 한 번 더 환하게 열리는데, 이곳에 마련된 2,400㎡ 규모 데크로드는 가리왕산의 겨울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길이다.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 포토존, 카페 1561, VR 체험관, 기프트숍 같은 편의 시설이 이어져 있어 가족이나 연인 모두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한겨울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상부 전망대

전망대 3층에 마련된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능선은 마치 절벽 끝까지 이어지는 겨울의 파도 같다. 눈이 덮인 산줄기는 멀리 있어도 가까운 듯 손에 잡힐 만큼 깊고 또렷하다. 2층의 통유리 휴식 공간에서는 잠시 앉아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하얀 산의 결을 감상할 수 있는데, 많은 여행자가 이곳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다.
데크 위를 따라 나가면 백두대간의 능선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눈 쌓인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이 계절 특유의 고요함을 데려온다. 걸음 하나, 숨 한 번에도 겨울의 존재감이 더 뚜렷해지는 순간이다.
여행객들은 흔히 탑승 전에 받은 정선아리랑상품권을 들고 상부 카페에 들러 따뜻한 음료를 주문한 뒤, 산등성이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겨울빛이 유난히 맑아, 누구든 쉽게 건질 만한 사진이 나온다.
내려가는 길은 또 다른 한 장면, 빛이 바꾸는 정선의 색

하행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면 풍경은 같은 듯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햇빛의 방향이 달라지며 능선의 그림자가 깊어지고, 계곡 사이로 흩뿌려지는 빛이 색의 농도를 조절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케이블카 라인은 마치 겨울 산을 가르는 얇은 선처럼 보이고, 그 아래로 천천히 펼쳐지는 정선의 눈빛이 더 크게 다가온다.
가족 여행이라면 이 시간이 특히 오래 기억될 것이다. 말없이 풍경을 나누는 순간들이 모여,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떠올릴만한 겨울의 장면이 된다.
이용 안내 및 여행 팁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초보 겨울 여행자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 매표 마감: 오후 5시 50분
- 숙암역 탑승 마감: 오후 4시
- 휴일: 매주 월요일
- 요금(왕복): 대인 15,000원 / 소인 11,000원
- 주차: 약 1,000대 규모 넉넉한 공간
겨울철에는 기상에 따라 갑작스러운 운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반드시 정선군 공식 홈페이지 또는 SNS에서 실시간 운영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겨울을 가장 먼저 만나는 산, 가리왕산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쉽다’는 점이다. 오르막을 오래 걷지 않아도 되고, 특히 겨울 산행이 낯선 사람에게도 가리왕산의 설경을 온전히 만나게 해준다. 단순히 산 정상까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이 시작되는 순간의 분위기를 천천히 음미하는 여정을 만들어준다.
고요한 산 아래에서 긴 호흡을 놓쳤던 사람들에게,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겨울의 속도를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깊게 느끼게 해주는 여행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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